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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Oct 27. 2022

이제야 마라탕을 먹어 보다

 언제부터였을까. 트렌드쫓아가기는커녕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 눈을 껌뻑이기 시작한 것이.


 아마 기점은 출산이었을 게다. 나의 언어활동은 아이의 수준에 맞춰졌다. 의태어와 의성어가 주였다가 최대한 쉬운 말을 골라 썼고 한자로 되어있는 말은 우리말로 풀어썼다. 사용하는 어휘의 수가 확 줄었다. 뽀로로와 핑크퐁, 타요를 시작했지만 텔레비전, 유튜브, 하다 못해 인터넷 게시판까지 '어른들의 대화'를 엿볼 수 있는 매체들과는 계속해서 멀어졌다.

 언어 퇴화기와 미디어 암흑기 와중에 복직을 하니 모르는 말이 급격하게 많아져 있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군대 말투를 쓰나 다. '태후를 안 봐? 하며 몇 마디의 말이 더 오고 간 후에야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를 알게 됐다. 함께 출장을 갔다 돌아오면서 '저분이 은근 츤데레예요'하던 직원에게는 말 배우는 어린이처럼 '근데 츤데레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이가 크고 이제는 나름 사회생활도 하고 미디어에도 노출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 투성이일까. 줄임말과 영어 단어는 대충 감으로 찍 그도 안되면 재빨리 검색하고 물으며 알아갔으나  '플렉스'럼 검색을 해도, 설명을 들어도 왜 그게 그 뜻이 된 거냐며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왜이다지도 많은가. 

 

 비단 신조어 국한된 것이 아니.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늘어갔. 그중 하나가 바로 음식. 언제 이렇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메뉴들이 지척에 널리게 된 거지. 하이볼은 예능인에게 배우고 오마카세는 드라마에서 처음 본다. 탕수육이 적하다 했더니 이건 꿔바로우란다. 훠궈는 뭐고 상궈는 뭔가. 양꿍까지는 들어봤는데 푸팟풍은 음 들어본다. 샌드위치와 반미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나 종류가 다양하고 새로운 것 많은지 문하기 앞서 센카이동은 뭐고 후토마끼는 무엇인가 검색이 필요하. 숨어있는 맛집인가 감탄했더니 알고 보니 프랜차이즈, 이런 식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늘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르다 보니 제한이 많았다. 돈가스 우동세트를 이제야 좀 벗어나나 했더니 느닷없이 아이의 편식이 시작됐다.

 처음은 '새우는 맛없어요'였. 새우튀김을 내게 주더니 짜장면에 들은 작은 새우까지 건져냈다. 나중엔 건새우를 넣어 육수를 낸 찌개를 해물 냄새가 난다고 지 않았다. 이제는 멸치육수조차 먹지 않는다.

 계란찜에 딱 반 티스푼 넣은 새우젓 맛을 귀신같이 알아채다시는 숟가락을 가져가지 않는다. 

 조개류와 오징어로 확장되더니 잘 먹던 미역까지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아이가 먹는 해물은 바짝 구운 생선과 김뿐이다.

  본인은 해물 알러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없다. 그러나 나를 보자마자 '엄마 배고파'가 나오는 날은 급식으로 해물이 나온 날이라는 것을 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칭찬 한번 받아보겠다고 용기 내어 작은 문어숙회에 도전했다가 모두 올려버리고 속상해하니 먹어보란 소리도 못한다. "너 나중에 크면 '옛날에는 바닷가에서 잡은 것들을 먹기도 했어' 그럴지도 몰라. '그렇게 맛있는 걸 내가 왜 안 먹었을까' 이럴걸?' 은근히 꼬드겨봐도 아이 귀에 들어갈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메뉴 선택권은 진즉에 아이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햄버거와 치킨을 거쳐 지금은 샤브샤브와 떡볶이 내가 제일 자주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런 날는구나. 아이가 마라탕이 먹고 싶단다. 아들끼리 모여서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왔단다. 호오. 초등학생들끼리 마라탕을 먹으러 간다고? 멋지기도 하지.


 마라탕, 듣기많이 들었다. 호불호가 갈린다더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는 마라탕 안 먹어요'가 꼭 한 명씩 있었다. 한번 빠지면 또 그렇게 중독된다던데 하는 궁금증만 있던 그 메뉴. 보통 해물이 들어가니 재료를 직접 골라 끓이는 곳으로 가잔다. 오. 그런데가 있어? 어느 순간 아이한테도 질문이 많다.


 마라탕 집에 들어가는 순간 콜록하게 하는 냄새가  마스크 속으로 훅 들어온다. 살짝 들뜬 아이는 그릇에 소시지와 고기 잔뜩 담고 있다. 제발 야채 담아.

 마침내 나온 마라탕. 일단 기름기가 많다. 국물을 먹으니 또 콜록하게 된다. 그다지 매운 건 모르겠는데 먹다 보니 혀가 얼얼하다. 뭐지. 것이 중독된다는 그 맛인 건가. 야채를 건져 먹으면서 점점 느끼해지고 자꾸 단무지와 음료수에 손이 간다. 기대에 차 있던 아이도 자꾸 고개를 갸우뚱갸우뚱거린다.

해물이 없어 이런 건가. 처음엔 분명 별로였는데 자꾸 생각이 나고 결국에는 상궈로 빠진다는 말도 있던데 나도 그러려나.



불현듯 떠오르며 훅 당기는 내가 알고 있는 맛을 시간을 놓치지 않고 먹었을 때 이게 뭐라고 참 좋다 했다. 첫 마라탕 도전은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로 끝났지만 그 외의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이름조차 낯설었던 음식들은 거의 맛있었다. 세상에는 맛있는 게 참으로 많구나 싶고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하며 촐싹댄 메뉴조차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자꾸만 늘어나지만 그만큼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많은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단조로워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게 눈이 번쩍 떠질 만큼 새로운 기쁨이 되어 줄 것들이 이다지도 많다는 것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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