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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Feb 23. 2023

이러고 온 거야?

 아주 오랜만에 번화가에 갈 일이 생겼다.


 뭘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잡한 장소에서 인파를 헤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조금씩 증발하는 기분을 느낀 지는 한참 됐다. 가능하면 사람이 없는 시간, 사람이 없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주 5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자가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같은 근무조건의 수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올 수 있는 바로 그 시간과 정확히 겹친다. 조금만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다 싶은 장소에는 이미 사람이 많다. 특별한 장소인 것도 아니다. 점심시간만 봐도 이 주변에 회사가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정도의 엄청난 인파에 매번 놀라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한번 키코모리인 와 다른 성향을 가졌기에 잘 어울려 지내는 그들과 만나기 위해 소위 핫플레이스에 간다. 늘 다니는 곳만 다니다새로운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느 곳에는 어떤 음식점이 요즘 핫한지 머릿속에 장소별 맛집 리스트가 차곡차곡 데이터화되어 있는 A의 진두지휘로 30대 초반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끊은 초번화가에서 모이기로 한다. 오랜만에 봐도 오랜만이라는 인사 대신 마치 어제 본 것 같은 일상적 대화가 바로 시작되는 그들. 지하철역 출구에 서있는 나를 보자마자  A"이러고 나왔어?" 한다. 이어서 나타난 B의 첫마디도 "이러고 온 거야?"다. "나 너무 동네 주민이야?"물으니 바로 수긍한다.


 언제나처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케이스를 다른 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갔다.

 손에 뭔가 들고 다니는 것이 이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전에는 신용카드 두장이 들어가는 아주 얇은 카드지갑 하나는 들고 다녔는데 페이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신용카드는 물론 교통카드까지 스마트폰으로 찍기 시작하고 나서는 정말 핸드폰에 이어폰만 달랑 들고 다닌다.


 아이와 외출할 때는 늘 챙겨 다닐 것이 많았다.

 기저귀파우치와 보온물병, 빨대컵, 아이가 볼 책, 물티슈, 거즈수건, 장난감, 이유식 등이 가득 담겨 있던 커다란 기저귀 가방 시작이었다. 아이가 커가며 가방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이제 대부분의 음식이 외부의 것들로 대체가 되나 했더니만 코로나가 터졌고 초반에는 제균티슈에 손정제, 마스크 여분을 들고 다니느라 작더라도 꼭 가방 필요했다. 이제 대부분 방문하는 곳마다 비치가 되어있으니 딱히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 다시 맨손으로 돌아갔다.

 가방 하나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많이 난다. 

 무거운 걸 들고 다니면 힘에 부치다 못해 화가 나고, 무겁지 않아도 갈수록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게 거추장스럽다. 중간중간 스마트폰으로 길도 찾아야 하고 버스가 언제 오나 조회도 해야 하며 검색할 것도 계속 생긴다. 뭐 굳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빈 손이 좋다. 손이 시리면 그냥 주머니에 넣으면 되는 것도 장점이다.


 게다가 가방을 일단 가지고 나가야겠다 싶으면 뭔가를 계속 집어넣게 된다. '어차피 가방 들어야 하는데'이러면서 물티슈도 넣고 마스크 여분도 또 넣고 잘 바르지도 않는 립글로스도 넣어보고 빗도 넣고 그런다. 아침에 한번 간단하게 화장한 후에는 수정화장이란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갖고 나간 김에 부러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챙겨 가놓고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기도 하며 무엇보다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어딜 가나 마치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하고 빈 손으로 나풀나풀 돌아다닌다.  손도 가볍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두고 가는 게 있나 챙길 것도 없고 참 개운하고 좋다.

 공간뿐 아니라 뭐든 비우면 이렇게 편하다.

 미니멀 라이프, 참 별 것 아니다.


 


전체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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