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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Nov 21. 2022

바람직한 불로소득

 바로 눈앞에서 뚝 떨어졌다.

 모과가 둥실둥실 가득 매달려 있는 걸 본 지는 꽤 됐다. 우리 으로 꺾는 지점에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 그 밑을 지나면 달달한 향이 나서 집으로 가는 을 더 만족스럽게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나무에서 노란 모과가 떨어지는 찰나를 목격한 것이다. 아이와 나는 동시에 엇! 하고 큰 소리를 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여러 번 봤지만 이렇게 큰 열매는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피해 주워 든 모과를 아이는 이리저리 본다. 여나 손자국이라도 날까 조심조심 돌려가며 어느 한 곳이 더 자주 붓에 닿지 않도록 골고루 칠한 것 마냥 샛노랗다. 기름하면서도 어디 하나 모난  없이 둥그스름한 것이 어쩌면 이렇게 흐뭇하게 생겼을까.


 나무에서 떨어진 건데 집에 가지고 가면 안 되냐며 한 표정으로 묻. 관대하게 허락한 듯했지만 내 마음속에 이 둥그런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이미 가득했다.


  참을 조물거리더니 끈적인다며 제 손바닥 냄새를 맡아본 아이 입에서 기쁜 탄성이 나온다. 포뇨 차 냄새가 난다.

벼랑위의 포뇨. 구글 이미지 검색

 반복해 보는 지브리의 '벼랑 위의 포뇨'에 폭우를 뚫고 들어온 포뇨와 소스케에게 소스케 엄마가 몸을 녹이기 위한 뜨끈하고 달달한 차를 타 주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영화를 볼 때는 꼭 팝콘을 달라는 아이는 포뇨를 볼 때만은 포뇨 차를 달라고 한다.


   안에 특수한 감지장치라도 있는지 몸에 좋다고 해서 부러 먹이고 싶어 하는 들은 잘 먹지 않는 아이. 유자차는 약간의 비린 향 때문인지 이상한 맛이라고 거부하고, 생강차는 콧속까지 매운 냄새가 난다고  안에 넣지도 않으며 도라지차는 아예 약이란다.


 그런데 포뇨를 처음 볼 때 자기도 저런 게 먹고 싶다고 해서 '포뇨 차'라며 내준 모과차는 한 잔을 싹 비웠다. 그 뒤로  춥게 놀았다 싶은 날에는 포뇨 차라면서 모과차 줬는데 이름을 이야기하지 았어도 향을 맡고 바로 알아챈다.


 포뇨 차가 이 모과로 만든 거라고 하니 뚝 떨어진 모과로 차를 만들자고 한다. 아주 잠깐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바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일전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사과를 한 봉지 사고 말았다. 생긴 건 사과인데...라는 혼잣말이 나올 정도였다. 저히 먹을 수는 없어 고민하다 기롭게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사과잼을 만들기로 한다. 검색해보니 뚝딱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탕과 계핏가루를 샀다.

 머릿속에 '사과잼 만들어야 되는데'를 숙제처럼 넣어두고 있었고 안 그래도 맛없던 사과 모양의 그것은 점점 쭈글거려지기 시작했다. 한 개씩 꺼내 반씩 잘라 냉장고와 자동차의 탈취용으로 소진했다. 그리고 그 설탕 한 봉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모과는 그대로 이블 위에 올려 둔. 걸 잘게 썰을 생각을 한 것조차 반성할 만큼 예쁘장했다.  개인데 거실에서 은은하게 모과향이 난다. 방향제나 설탕에서는 맡을 수 없는 과하게 달지 않은 향. 자꾸 코를 벌름벌름하게 된다. 작은 집의 좋은 점이 하나 추가된다.


 오늘 집에 들어서니 모과향부터 난다. 어제 없던 검은 점들이 생겼지만 마치 '나 집에서 이렇게 열심히 좋은 향을 만들고 있었어요' 하는 것처럼 그릇에 다소곳이 앉아있는데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늘에서 이런 기특한 것이 뚝 떨어질 수가. 값을 치르기는커녕 나무를 흔들흔들한 적도 없고 심지어 시간을 내 기다리고 있던 아닌데. 하나 노력 기울인 것 없이 이렇게 그윽한 향기 지닌 것을 얻게 되었다.

 

 이다지도 바람직한 불로소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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