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말랑이 장난감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 말랑말랑한 촉감, 그게 다다. 그런데 글자 그대로 '각양각색'으로 만들어져 서점과 문방구, 마트 여기저기서 아이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부모의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도대체가 왜 이걸 종류별로 사야 하는 건지 납득하지 못하는 나. 아이는 그러나 이미두 개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만두 모양 말랑이를 들여왔다.사실 이 만두는 일전에 한 번 사달라고 졸랐던 것을 사주지 않았는데 기어이 우리 집에 입성했다.
그런데 이것이 볼수록 귀엽단 말이다. 그릇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 만두라고 생각할 것 같다. 분명 아닌 줄 알면서 따듯할 것 같은 기분에 손을 대본다. 색깔도 모양도 어쩜 이렇게 둥글둥글 귀엽지. 슬쩍 만져보니 이제야 왜 장난감 이름이 말랑이인지 완전하게 이해된다. 손에 착 감기면서도 내가 누르는 대로 말랑말랑 들어가는 손의 감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수준이다. '아니 뭘 이런 걸 사 왔어...' 해놓고 아이 몰래 조물조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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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를 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약간 무리가 가는 기분이었다. 손흥민 선수가골을 찰 기회가 있었는데 패스가 나올 때도, 황의조 선수가골을 찼는데 골대 위로 날아갔을 때도, 발베르데의 볼이 정확하게 골대로 날아갈 때도, 그리고 천운으로 그것이 골대를 맞을 때도 너무 긴장이 돼서 이거 그만 봐야 되나 싶을 정도였다.
급하게 만두 말랑이를 조몰락조몰락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아. 이게 이런 용도가 있었다. 이제 위급한 순간마다 아이가 내 손에 만두를 쥐여준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를 보면서 만두가 필요하다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그래 놓고 나는 곧바로 가나전에도 만두가 필요하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랑이 장난감을 세게 쥐었더니 터졌단다. 아주 슬픈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위로를 해주려 했으나 '만두가 터졌다'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겨우 추슬렀다. 또다시 만두를 사겠다는 아이에게는 안 된대 놓고선 가나전을 시작으로 남은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경기를 어찌 보나 하고 있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만 예전에 치른 한 입사시험상식 과목에 2006년 월드컵 개최지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틀렸다. '점수 주려고 낸 문제'라고 했는데, 정말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축구선수는 2002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 외에는 정말 '레전드'라고 불리는 몇 명뿐이었다. 해트트릭은 상식 공부를 하면서 일부러 외웠고 오랜 기간 정말 심한 반칙을 하면 페널티킥, 약한 반칙을 하면 프리킥인 줄 알았다. 몹시 창피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E. CAVANI라는 유니폼의 글씨가 보이지 않아도 파리생제르망에 있다 발렌시아로 옮긴 에딘손 카바니를 알아보고 로드리게스를 이야기하면 하메스인지 제임스인지 궁금하다. 아이와 빙고게임으로 축구선수의 이름을 적을 때 우리나라 선수와 해외 선수를 나눠도 겹치는 선수가 너무 없어 현역과 아닌 선수까지 구분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거기서 뭐가 하나 빠졌는지는 계속 헷갈리고, 분명 공룡 이름을 엄청나게 많이 외우게 되었는데 아이의 관심이 공룡에서 멀어지자마자 언제 그걸 알았냐는 듯 싹 다 까먹었다.이상하게 어릴 때 알았던 것 말고 커서 새로 넣은 것들은 금방 사라진다. 개탄스럽다. 나는 빙고를 뜸하게 했다고 그새 축구선수들과 국적을 매칭 하는데 자꾸 틀려 아이의 지적을 받는다. 어느 팀에서 어느 팀으로 이적했는지도 영 입력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임은 확실하다.
축구는 한일전만 봤다. 그러나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며 내 평생 보았던 모든 운동경기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축구 경기를 보고 있다. 한 가지 단점은 예전에는 그저 맛있는 것 먹고 시원한 것 마시면서 즐겁게 경기를 관람했다면, 지금은 승점을 계산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중간에 심폐소생술 하듯 아이에게 말랑이를 받아 마음을 진정하며 봐야 할 만큼 긴장하며 본다는 거다. 일본이 승점 3점을 먼저 챙겼을 때는 심지어 우울한 마음으로 잠이 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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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코스타리카는 고맙고, 오늘은 가나전이다. 만두가 터졌다는 소리에는이를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늘 밤에는 만두를 쪄야겠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무조건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락모락 김 나는 진짜 만두를 고춧가루랑 식초 살짝만 넣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승리를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