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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Dec 03. 2022

사람이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 한다-16강 진출의 순간

심장 부여잡고 본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눈을 뜨니 아침 10시.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렇듯 카페인 부족으로 인한 두통과 소중한 토요일 하루의 앞부분을 내가 너무 갉아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찰나의 아쉬움이 스치는데, 오늘은 두통 와중에도 '오예, 16강!'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새벽 심장을 부여잡고 축구 경기를 봤다. 배성재 캐스터의 말처럼 체수분이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오밤중에 커피머신에 원두를 채워 넣기까지 했다. 카페인 향이라 절실했다. 커피 향이 엄청나게 올라오는 빈 커피 봉지를 종이봉투 대신 들이키며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가나전에서 두골을 먼저 먹히고, 그 두골을 다 만회했을 때 이제 됐다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어이없게 한골이 더 들어가고, 그 많은 코너킥 기회마다 막히는 것도 안타까운데 코너킥 바로 앞에서 경기 종료 휘슬을 불어서 분노하고 말았다. 그렇게 뛰고도 납득되지 않는 아쉬 종료를 맞이한 선수들의 표정과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는 감독의 모습에 심하게 감정 이입하며 분을 참지 못하겠다며 씩씩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경기 전부터 포르투갈인데, 호날두가 있는 포르투갈인데 어떡하나 걱정했다. 선치킨 후경기라며 저녁으로 치킨까지 먹어두었다. 경기 때 남은 치킨을 여유 있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너무 긴장이 되는 통에 치킨은커녕 미지근한 물만 몇 컵을 마셨다.


 호날두 결장한다더니 왜 나오냐고 불만이었, 분명 몇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갈수록 표정에서도 신경질이 묻어냐며 하지 말아야 할 외모 평까지 아이 앞에서 하고 있다.


 너무나 빨리 첫 골을 먹히자마자. 아... 포르투갈... 하면서 정적이 흘렀다. 이미 그때 식욕 상실. 동점골이 터졌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놓고 새벽이니까 조용히 하자며 솔선수범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있다. 호날두의 등 어시를 확인하며 좀 얄미울 수 있겠다만 같이 손바닥 짝짝거리면서 더더욱 좋아다.


 그리고 더 간절해진다. 이제 정말 한골이면 되는데 하는 그 마음에 경기를 보면서 '편안'이라는 것은 저 멀리로 날아간다. 손흥민이 수비들에 막혀 결국 골로 연결되지 못하고 공이 빠져나갈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포르투갈 공이 골대 근처만 가도 악 소리가 난다.


 황희찬이 들어올 준비를 할 때 너무나 설레어서 텔레비전 앞에 서서 '제발, 제발 들어와서 제발 한골만'이라고 중얼중얼거렸다. 들어오자마자 저돌적으로 뛰는 것을 보고 이길 것 같다는,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추가시간 6분을 준다. 왜 6분만 주냐며 또 화를 낸다. 축구장에서 욕하고 화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경기 보러 와서 저렇게까지 할까 했는데 조금은 알 것 같다.


손흥민이 엄청난 스피드로 뛸 때 황희찬이 더 빠른 스피드로 쫓아가는 것을 보고 그 새벽에 손 맞잡고 소리로 악악거린다. 큰 소리를 내지 못해도 비명을 지를 수 있는 거다. 골이 아름답게 들어가는데 눈물이 난다. 너무 좋아서 닭살이 올라왔다. 경고받을 줄 알면서 왜 꼭 옷을 벗는 거냐며 뭐라 했으나 황희찬이 옷을 벗을 때는 '아 몹시 그럴만하다' 이러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편파적이다.

https://naver.me/FM66ojmb


 골 넣자마자 왜 6분이 아직도 안 지났냐며 시계를 보며 전전긍긍한다. 그렇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한다. 까 골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냐는 가느다란 희망을 건 상대에게 어디서 감히! 이러면서 당연히 온사이드라고 확신하면서도 왜 긴장하는가. 어서 이 스코어 그대로 끝나야 되는데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때부터는 이미 아까부터 태블릿을 켜놓고 확인하고 있던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의 소리를 키운다. 우루과이가 혹시라도 한 골을 더 넣을까 봐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지나친 긴장 탓에 아랫배의 근육이 짧게 당기는 듯한 통증까지 온다. 그 새벽에 통증 완화를 위한 장요근 스트레을 하고 있다.


 가나를 응원하면서 제발 좀 버텨달라고 애원했다가  우리랑 할 때는 세 골이나 넣더니만  이번에는  한 골도 안 넣냐며 화를 낸다. 아 감정 기복 어쩔 것인가.

주심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코너킥도 잘라놓고 여기서는 추가시간은 왜 8분이나 준거냐며 또 만이다. 언제 봤다고 그 주심이 밉다.


 태블릿 앞에서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가나전을 들여다보면서 큰 소리조차 못 내고 긴장하고 있다. 마지막 우루과이의 프리킥 찬스에서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벤치의 수아레스가 제대로 경기를 보지 못하고 유니폼을 못살게 굴고 있을 때 나는 이불을 못살게 굴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뛰지 않는 남의 경기를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본 적이  있었을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닭살은 가라앉지 않으며 배는 계속 당기고 입은 마른다.


 드디어 종료 휘슬 울렸을 때 모두 울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새벽 2시라 아쉽다. 정말 뛰어다니면서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손흥민 패스와 황희찬 골 장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보고 그사이 붙은 광고 15초도 몇 번을 봤다.


16강 진출이라니. 그렇게 희박해 보이던 경우의 수들을 다 채워 16강 진출이라니. 장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뛴다.


2002년 온 국민이 하나가 된 것 같았고 평생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을까 싶었다는 그때, 한국에 없었다. 물론 거기서도 기뻤지만 그때의 흥분과 희열을 함께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아가고 있다. 어쩐지 그때의 기적을 바로 여기서 직접 볼 것 같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naver.me/xjLLxF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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