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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10. 2023

'나가기 귀찮으니까 배달시켜 먹자'라고 하지 말아 줘

 코로나 감염 시 격리 의무가 해제된단다.

 3년 4개월 만에 사실상의 코로나 종식선언인 셈이다.


코로나 초기 가족 중 혼자 감염된 아이를 방역차량에 태워 보내면서 눈물은 쏟아지는데 또 그 수많은 행정 절차들 앞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걸어왔던 지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선한데 격리조차 해제라니.

https://naver.me/xBhKBJzd

 퇴근 후에 가면 재고가 없을까 봐 점심도 굶고 정해진 요일에 맞춰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등본을 꼭 쥐고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받아왔던 마스크에 찍혀있는 유통기한. 참 길다고 생각했는데 날짜가 지난 걸 발견했다. 정말 3년이 지났다. 마스크 끈에 얼굴과 귀 경계의 피부에 염증이 나고 입 주변 뾰루지로 고생했던 초기 마스크. 사람이 적응한 것도 있지만 마스크 역시 혁혁하게 진화해서 요즘의 마스크는 귀도 아프지 않고 숨쉬기는 편하며 피부에 닿는 촉감도 나아졌다.


 마스크만도 이 정도인데.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뉴스에 나오는 무언가가 내 개인의 하루하루를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코로나 전에도 후에도 느끼지 못했다. 집 밖에 나가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상을 그리워했던 시기였다.


  이미 분위기는 바뀌었다.

 재택근무로 한산했던 점심시간 회사 주변 식당들에는 다시 줄이 생겼고 주말에는 어딜 가도 북적북적하다.


 배달앱을 지운 지는 한참 됐다.

 코로나 기간, 특히 나와 가족의 자가격리기간 얼마나 소중했던 배달앱인가. 몇 번 손가락만 움직이면 집 앞에 뜨끈뜨끈한 음식이 도착하는 데다 멀리 사는 가족에게 맛있는 한 끼를 배달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맛있게 먹어놓고 치우려면 한숨이 나는 거다.

 치킨과 피자 까지는 괜찮은데 다른 음식들, 특히 뜨끈한 국물이나 찌개를 시켰다 하면 밥, 국, 반찬 따로따로 해서 일회용 포장용기만 큰 봉지로 한가득이다.  분리수거도 할 수 없는 날이면 둘 곳조차 없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 음식 자국들. 용기를 헹구다 보면 거의 설거지와 다를 바 없고, 일회용기 대신 꺼냈던 숟가락 앞접시들도 이미 싱크대를 채웠. 집에서 밥하고 국 끓여서 먹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내가 양조절을 하는 것이 아닌지라 음식물 쓰레기는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는 이렇게 나와야 했는데 차라리 식당으로 나갈걸 하면서 불만이 가득 차는 게다. 

 음식 하는 공정만 사라진 셈인데 사실 집밥이 어려운 이유는 앞의 조리 부분이 아니라 뒤의 치우는 부분 때문이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빨리 와도 식당에서 막 조리해서 받은 것과는 그 온도도 맛도 다르고 각각 음식에 딱 어울리는 그릇에 담겨 식욕을 돋우었을 것과는 달리 다 똑같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으니 가서 먹는 것과 똑같을 수가 없다. 여기에 배달비까지 오르니 어지간하면 나가서 먹자 싶은 거다.

 감기로 꼼짝도 하기 힘들어 다시 앱을 깔아 배달시킨 날도 결국은 뒷정리를 하고 나서 바로 앱을 지웠던 이유다.


 런데 문제는 치우는 사람 한 명만 힘들지 나머지는 아주 편하다는 게다.

 집 안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배달음식이 도착하면 그대로 먹고 이어서 뒹굴거리면 되니 한번 맛본 편리 놓을 수가 없다.

 보통 배달을 원하는 사람은 '치우는 사람'이 아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다수가 편한 효율성을 따지려면 배달시켜 먹자고 한 사람이 치우는 룰이라도 만들어야겠지만 아쉽게도 이게 또 안될 때가 많다. 우리 집 역시 한참 재미있게 놀다가 밥 먹으러 나가기 귀찮은 아이가 주로 배달을 요청한다. 식당에 데리고 나가고 챙기는 게 더 힘든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배달만큼 고마운 것이 또 있겠냐만은 텔레비전 앞에서 요만큼도 움직이기 싫은 튼실한 청소년이 요청하면 '이 놈의 시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국 대 놓고 이야기한다. '나가기 귀찮으니까 배달시켜 먹자'는 소리는 하지 말자.

 독재자처럼 보여도 '밥 하기 싫으니까 배달시켜 먹자', 이것만 허용하고 싶다.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는 것이 루틴이 된 주부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요리를 내 앞에 차려주고 치워주는 고가 필요한 날이 있다.

 나와 같은 이에게  '외식'의 목적은 맛있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남이 차려준 밥상'이니까.



대문사진이미지출처: https://naver.me/GsO79y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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