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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15. 2023

캠핑, 뭐 하러 사서 고생하는 거니?

 나의 판단과 삶의 방식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합리화의 과정을 추가해 결국은 역시 그것만이 옳다는 결론을 낸다.


  편하게 살자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한밤 중 자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이 깼을 때 '그때 이렇게 하지 말았을 것을, 그 당시 이 길로 갈 것을'하는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들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에게는 스스로의 결정에 후회나 의심 없을 그들의 사고 회 본받고 싶을 때마저 있다.


  A와 B, 둘이 그랬다. 다행히도 A와 B는 죽이 잘 맞는 편이었는데 서로 의견이 갈릴 때는 뫼비우스의 띠마냥 결론이 없는 대화가 이어다.

  10년도 더 전의 어느 월요일 아침. 새로 바꾼 차로 출근했다는 A의 말이 캠핑 유용론으로 진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던 때는 아니었는데 A는 벌써 몇 년째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초기에 몇 번이나 가겠냐며 저렴한 장비로 시작했으나 막상 캠핑을 해보니 확실히 품질 차이가 난다며 하나하나 고가의 장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룻밤이지만 아무래도 가져가면 편한 캠핑용 물품들을 사 들이고 챙기다 보니 짐이 훅 늘어나 트렁크에 다 실리지 않았다. 결국 조금 더 탈 계획이었던 세단 자가용을 차박이 가능한 대형 SUV로 바꾸었단다. 지난 주말에 캠핑을 다녀왔는데 아침에 텐트 지퍼를 내리자 밤새 내린 하얀 눈이 쌓인 걸 보고 행복했단다.


 리액션봇이 되어 듣고 있는데 난데없이  B가 껴든다.

 "안 추워?"

 고성능 침낭과 텐트가 추위를 막아주고 전기장판과 난로까지 있어 춥지 않다는 상세한 설명에 B는 또 말한다.

"그걸 다 싸 짊어지고 가는 거야? 집에서 따듯하게 보일러 켜놓고 있으면 되잖아."

 눈 쌓인 풍경 이야기를 재차 다 풀기도 전에 B는 "집에서 창문 열어도 집 앞 공원에 눈 쌓인 거 보이는데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해. 그거 다 짐 싸서 차에 실어서 갔다가 다시 다 꺼내서 텐트 치고 장비 조립하고 다 하려면 한두 시간 걸릴 거 아냐? 거기서 해 먹고 또 치우고 이런 것도 불편하겠네. 그러고 잠깐 밤에 다가 아침에 또 텐트 걷고 다 분해해서 짐 싫어서 집에 오고. 어휴. 그럼 끝이야? 또 거기서 또 짐 정리하고 빨래하고... 어휴..."

 고개까지 도리도리 해가며 도대체 왜 사서 고생하냐는 문장을 서너 번 반복하는 B에게 아무리 고생을 해도 캠핑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게 있다며  집에서 보는 거랑 어떻게 같냐며 언성을 는 A. 한번 가보면 계속 갈 수밖에 없다며 일단 가봐야 한다고 설득을 시작한다.

이미지출처 unsplash

A는 캠핑에 가서 즐기면 되고 B는 따듯한 집에서 창문을 바라보면 되는데 왜 저렇게 끝없이 논쟁하는 것일까 싶었던 나. 

그전에도 후에도 '캠핑을 가면 참 좋을 것 같긴 한데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애매한 위 있었다. 몹시 자연친화적인 것도 사실 아니요,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도 아닌 데다 깨끗하고 안전한 것을 숙소 선택의 제1기준으로 삼으니 캠핑은 로망의 영역인 셈이다.


느닷없이 날로 캠핑을 다녀왔다.

주말에 캠핑을 간다는 사촌동생 이야기에 부럽다, 좋겠다, 나도 가고 싶다를 3초 만에 발사한 아이를 함께 데려가겠다는 고마운 동생 부부. 아이만 보내려던 애초의 계획과 달리 어쩌다 보니 나까지  게다.


 트렁크는 물론 차 지붕에 달아 놓은 거대한 가방에도 꽉꽉 짐을 실어 출발했다. 도착과 동시에 짐을 풀고 텐트를 치며 동은 시작되지만 같이 이야기하며 빈 바닥에 하나하나 펼치면 오롯한 주거 공간이 생기니 요술처럼 신기하다. 나도 모르게 옆 텐트를 깃거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짐 챙길 때는 언제나 '최소한'을 외치면서 캠핑 올 때 왜 장비가 점점 늘어나는지 급 이해가 된다. 이 캠핑 의자에 앉아 그라인더에 갈아 갓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시면 진짜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대화를 나누 있다.


'뛰지 마, 조용히 놀아' 잔소리 없이 마음껏 뛰고 해먹에도 매달려 놀던 아이들이 찌개가 끓기도 전에 테이블 앞애 기다리고 있다가 밥그릇에 머리 박고 먹는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땡볕에서 텐트 치고 아이들 성화 속에 밥 준비한다고 땀 흘리던 어른들은 맥주 한 모금이 빈 속차갑게 타고 내려가자 감탄의 '크' 소리가 절로 난다. 이 맥주가 진정 집에서 먹던 그 맥주와 같은 것인가.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그늘막으로 딱 맞게 얼굴까지 가린 햇볕은 내 바로 앞에 있는 진초록 위에 순한 연두색으로 난 잎사귀들 위에 반짝거리 작은 계곡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지기 전에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불이 쉽게 붙지 않자 모기향 상자를 집어넣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씨를 만들어본다고 애를 쓴다. 코펠 뚜껑으로 끈기 있게 손부채질을 하고 있다.  아주아주 어릴 때 시골 할머니집 아궁이 앞에 앉아 이런 것들을 불 속에  던지며 놀았는데. 몇십 년 만의 불장난도 역시나 재미지다.


 캠핑용 장작은 습기에도 불이 잘 붙게 제작을 했는지 나무 타는 소리도 냄새도 없지만 야생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는 타면서 타닥타닥하는 소리를 내고 오래전 아궁이 앞에서 맡았던 냄새를 풍긴다. 평소에 손에 흙 묻히기 싫어하는 40대는 점점 더 큰 나뭇가지들을 주워 나르며 부지런히 불장난을 한다. 나뭇잎은 타면서 향이 난다. 동생이 주워 온 딱 봐도 튼튼하게 생긴 커다란 나무는 소리도 크고 오랫동안 탄다. 너무 잘 발견했다며 호들갑을 떨며 칭찬을 하는데 생각해 보니 동생이 승진했을 때도 이만큼 격하게 칭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주변이 깜깜해지며 불빛 선명해진다. 새 장작을 던져 넣으니 아까부터 타 재가 된 것들이 불티가 되어 오른다. 불 옆에 모여 앉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다. 머릿속이 완전히 비어질 수가 있구나. 평소의 주량을 넘겼지만 움직여가며 웃고 이야기해 가며, 뭘 구워도 다 맛있는 신기한 불판 위의 것들을 먹어가며 마신 술은 취하지도 않는다.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고 겁은 조금씩 사라지며 점점 더 불 옆으로 가 앉는다. 커다랗게 차가운 공기 속에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불통 앞에 앉아 있으니 그저 만족스럽다. 잠이 안 올 때 듣던 '실내 장작 난로의 모닥불 소리' 음원은 타고 있나뭇결 사이 주황색으로 빛나며 타오르는 불빛 앞에서 열기를 느끼며 직접 듣는 나무 타는 소리에 비할 게 아니었다. 몇 시간이라도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내뱉는 탄성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북두칠성이 보인다. 하늘이 둥글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르는 것 하나가 아쉽다.

 아침이 되고 라면만 끓여 먹었는데 가야 할 시간이다. 어제 집이었고 가구였던 것들이 다시 접히고 말려서 차에 실리자 처음 그 빈 터다. 마치 집을 지어 하루를 살고 다시 허무는 것 같다.  


 정리할 것들이 잔뜩 눈에 보여 미안한 와중에도 참으로 흐뭇하다. 트레스를 비워 내고 그 공간에 다른 곳에서는 얻지 못하는 에너지를 가득 채워 온 기랄까.

 왜 사람들이 '사서 고생을 하며' 캠핑을 하는지 단박 알게 다.

 A의 말이 맞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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