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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Dec 12. 2022

김부각이 내 이름이 되었다

 내 스마트폰은 나의 이름을 김부각으로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름을 입력할 때 성(김)만 쓰면 자동완성 글자로 '김부각'이 탁 뜬다. 끝까지 쓸 필요도 없고 선택만 하면 자동으로 내 이름 '김부각'으로 채워 넣을 수 다.


 회원가입을 하라고 하면 려던 것도 포기할 만큼 귀찮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회원가입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성명란에 '김'을 치니 또 '김부각'이다.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아(아... 괴롭다, 비밀번호) 본인 인증을 받으려고 기계적으로 핸드폰 번호 넣고 생년월일 넣고 이름 넣으려니 또 '김부각'이 나온다.


 맨 처음 김부각이 짠 하고 나타났을 때는 빵 하고 터졌고 그 뒤로도 반가웠고 요즘은 익숙하고 가끔 자동완성이 안 되는 사이트인지 김부각이 안 보이면 허전하고 그렇다.


 어쩌다가 내 이름보다 김부각이 더 먼저 나오게 되었까.


  여행을 다녀온 마가 당에서 사 왔다며 김부각을 챙겨주었다. 솟아나는 물욕을 '우리 집에는 둘 데가 없다'는 이성으로 겨우 누르는 나와 달리 당장 필요한 것 외에 '어쩐지 갖고 싶다'라는 몹시도 당연한 감정을 잘 모르겠다는 진짜 미니멀리스트인 엄마는 여행을 가서 념품을 사 오는 일이 드물다. 엄마가 식당에서 사 왔을 정도면 일단 맛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는 소리다.  


 원래도 김부각을 좋아하는 나는  튀긴 날로부터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는 이 김부각을 먹으며 깨방정을 떨며 좋아했다. 숨도 안 쉬고 먹다 봉지가 싹 비어 있어서 '아니 이걸 내가 다 먹었어?' 다시 한번 확인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아삭아삭하고 짭짤한 것은 내 입맛에 딱이다.


 포장지를 보고 혹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지 검색해본다. 오호. 바로 뜬다. 가족들과 나눠먹겠다며 대량 주문한다. 앉은자리에서 혼자 한 봉지를 으니 넉넉히 야지. 음식이 부족한 건 싫다. 인터넷 주문을 하니 현지에서 샀을 때보다 많이 싼 것 같다. 나는 가족들에게 김부각을 친정으로 배송시켰으니 다음에 방문할 때 가져가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안 튀긴 김부각이 거대한 상자에 한가득 왔단다. 으응? 주문 내역을 확인해본다. 내가 시킨 건 그냥 김부각인데 튀긴 김부각은 따로 있었다. 이럴 수가. 이래서 저렴한 거였구나. 가족들에게도 안 튀긴 김부각이 왔다는 슬픈 소식을 전다.

 실물을 확인한다. 포장은 같은데 그 안에는 바삭거리게 한입에 딱 들어가는 김부각 대신 깡깡한 김부각 전장이 들어있다. 한두 개 먹자고 기름 끓이고 튀기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가. 저 많은 걸 언제 튀겨 먹는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히 유통기한은 길다.


 일단 튀겨보자. 튀기는 방법을 검색하고 비장하게 김부각 튀기기에 돌입한다.


  가장 작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따르고 기름이 끓었다 싶을 즈음 봉지 안에 떨어져 있는 찹쌀 부스러기 하나를 던져본다. 바로 떠오른다.  장을 넣자마자 찹쌀이 바로 하얗게 부풀어 오르면서 안으로 말린다. 얼마 만에 튀김 소리인가. 이것이 ASMR이다. 바로 뒤집어 주니 매끈거리고 반짝거리던 김이 눈으로만 봐도 바삭거리는 질감으로 변신한다. 다시 안으로 말리면서 김부각은 평평해지고 적당한 두께가 됐다.


  찹쌀 위로 기름이 지글거리고 있는 그 채로 건져 다.  안에 넣으니 감탄이 나온다. 아삭거린다거나 바삭거린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첫 입에 잘게 부서지면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 씹을수록 김과 찹쌀 사이 아직 따듯한 공기가 터지면서 와작 씹히는 식감. 분명히 짭짤한데 맨 입으로 먹어도 전혀 짜지 않은 정말 딱 맞는 맛. 기름에 튀겼는데 기름기 없이 보송린다. 갓 튀겨 먹는 김부각에서는 이런 감동적인 맛이 나는구나.


  이런 건 모여서 먹어야 한다. 어쩌다 보니 김부각 튀김의 장인이 된 나는 가족들이 친정에 모인 날 아주 능숙한 솜씨로 대량의 김부각을 튀겨다. 다시 일자로 펴지자마자 재빠르게 건져낸 김부각을 옆에서 날렵하게 잘라 접시에 담는다. 조리, 커팅, 서빙으로 착착 나뉘어 진행되는데 가내수공업의 아우라가 풍긴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있다가 접시가 차면 바로 집어 먹는 아이들 덕에 접시는 순식간에 빈다. 커팅 파트에서 아이들이 오기 전에 잽싸게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어준다. 그걸 또 뜨겁다며  방정치 못하게 몇 번 떨어뜨리다 먹는데 역시 맛있다. 무슨 할 말이 많은지 부엌은 수다와 웃음소리로 가득 차서 기름 소리는 이미 묻혔지만, 귀는 더 즐겁다.


 각자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 했으나 그날 먹은 게 반 이상이다. 집에서 튀겨 먹어도 그날의 맛을 따라갈 수 없다.

 김부각에 마력이 있다. 조금 느끼해지려고 할 때 절로 맥주 생각이 난다. 부각을 튀기며 열이 오른 얼굴로 불 앞에 선 채로 서빙 파트에서 앞까지 대령해 준 맥주 한 모금을 마시는데 이렇게 개운하고 시원할 수 없다. 바로바로 부각을 건져 내야 하는 그 바쁜 와중에 또 '짠~'을 하러 식탁에 다녀온다. 대낮에 가족들과 갓 튀긴 김부각을 안주로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하루가 보람차고 세상은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김부각이 됐다.

 그즈음 핸드폰으로 김부각을 많이 입력했던 게다. 김부각 판매처를 알아보고 튀기는 방법을 검색하고 중간중간 가족들에게 김부각을 샀다, 잘못 왔다, 와서 같이 먹어야 한다 등등. 단기간에 이렇게 한 단어를 많이 이야기한 것이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똑똑한 나의 핸드폰은 나를 김부각으로 알게 된 게다.


그때 김부각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갓 튀겨 나온 김부각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면서도  나는 결국 대기업에서 다 튀겨 놓은 김부각을 마트에서 사다 먹고 있다. 한 번 맥주에 맛을 들이니 김부각만 먹으면 맥주 생각이 나는 게 한 가지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래도 핸드폰이 내 이름을 김부각으로 띄워줄 때마다 나 가내수공업마냥 부엌에 모두 붙어 김부각을 튀겨 서로 입에 넣어주며 깔깔대던 그날의 부엌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내 전화기는 스마트폰이었다. 똑똑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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