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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an 04. 2023

아들이 열 달을 모아 사준 치킨

 자그마치 열 달을 모았다.

5점씩 10점씩 모아 1만 9천 점을 만드는 그 어려운 일을 아들 해냈다.


 아이는 그 흔한 학습지 한 장 해 본 적이 없다. 내 친구들은 모두 O 선생님이 집에 오신다며 자기도 시켜달라고 몇 번 이야기했다. 그런데 히키코모리 엄마는 주기적으로 선생님이 방문하시는 게 부담스러웠다. 분명 숙제를 미리 하라 닦달해야 할 것도 뻔했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O 끊기라는 말 들었다. 끊겠다고 전화했는데 홀리듯 다른 과목을 추가하게 된다는 간증생생했다. 리 그 상황까지 걱정하고 절대 성공하지 못하리라 확신하며 살살 달래 한 번도 시켜주지 않았다.


 년 초 아이에게는 학습용 패드를 가지고 온 사촌 형아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나 보다. 형아가 아주 진지하게 너 지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거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주는데도 부득부득 하겠단다. 어찌나 종류가 많던지 고르기도 힘들었다. 아이는 그저 '나만의 태블릿'을 가지고 싶은 거라 기준도 없다. 결국 아이가 좋아하는 파충 관련 영상이 들어있다는 것을 골랐는데 약정이 자그마치 2년이란다.


 내가 결심을 하더라도 어감 자체가 압박으로 다가오는 위약금 때문에 제약을 받는 게 싫다. 렌털 제품은 용하지 않고 약정이 있 계약 최대한 하지 않는다. 핸드폰도 비싸더라도 자급제 폰을 구입해 쓰는 쪽을 택하고 오래 쓰면 호구라는 말도 다지만 같은 인터넷상품을 약정 없이 4-5년째 사용한다.

 

 온 집안 물건에 약정 하나 없는 자유로운 상태였는데 오없으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물건에 내일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 앞으로 2년 약정을 하려니 시 하기 싫. 그런데 아이는 꾸준히 할 수 있다며 오래 졸랐다. 처음으로 자진해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에게 약정이 싫어서 못해주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에게도 학습용 패드가 생겼다. 아이는 꼬박꼬박 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도 열심히 출석을 해 전자 도서 같은 콘텐츠를 보았다. 한번 출석하거나 수업을 하나 들을 때 5점 10점 포인트가 쌓인다. 포인트를 모으면 편의점 1000원 상품권을 시작으로 최대 5만 원까지의 50여 개의 E쿠폰으로 교환을 할 수 있단다.


 중국집 쿠폰을 모아서 탕수육을 받아본 적도, 딱 한 곳의 치킨집에서만 수마리의 치킨을 먹고 감자튀김을 받아본 적도 없으며 그 쉽다는 온라인 출석체크도 버거운 엄마는 도대체 5점씩 10점씩 언제 모으겠나 했다. 겨우 천 점이 되었을 때는 날름 편의점 쿠폰으로 바꿀까 물으며 아이 앞에서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아이는 더 큰 걸 받겠다며 참으로 진득하게 모아 무려 1만 9천 점을 달성했다. 

 아들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엄마에게 갑자기 치킨을 쏘겠단다.

 렇게 어렵게 열 달 동안 은 귀한 포인트로 치킨과 콜라 세트로 교환할 수 있단다. 몹시 기특한데 너무나 비장하게 이야기하니 웃음이 난다. 오랫동안 열심히 모은 건데 마트나 편의점 쿠폰으로 바꿔서 원하는 거 사는 게 좋지 않겠 물어봤는데 결연 정으로 괜찮단다.


'교환' 버튼을 누르는 아이 손 끝에 긴장이 묻어난다. 한번 교환하면 취소할 수 없다며 재차 묻는 창에도 아이는 꺾이지 않는다. E쿠폰이 문자로 오고 배달비만 결제하니 치킨과 콜라, 통닭무가 집 앞으 도착했는데 배달 서비스라는 것을 처음 이용해 본 사람처럼 신기하고 설렌다.

 음식 먹기 전에 '사진 찍게 잠깐만!'이라는 말을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데 이건 남기고 기억해야 할 치킨이라며 몇 장이나 찍는다.  "내가 열심히 모아서 치킨을 사주니까 더 기뻐?"와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던지며 마음껏 생색을 내는 아이는 맛있는 것을 "쏘는" 뿌듯함과 기쁨을 다.


 예전 아파트 상가에는 치킨 집이 유난히 많아서 주로 매장에서 치킨을 먹었다. 갓 튀겨 나온 치킨의 맛을 알고 나니 배달 치킨은 늘 아쉬웠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가 열 달을 벌어 사 준 치킨은 어떻게 된 조화인지 주방에서 막 튀겨 홀에 서빙된 치킨마냥 튀김옷이 요만큼도 눅눅해지지 않고 뾰족하게 서 있는 바삭바삭한 상태로 왔다.

 하늘이 알아준 걸까 내 마음이 그런 걸까. 치킨이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단 말인가. 축구를 보며 먹었던 치킨도 이 맛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매장에서 먹었던 치킨들도 심지어 김 서린 컵에 막 따라져 위에 거품이 살아있던 생맥주와 함께 먹었던 치킨마저도 이렇게까지 맛있지 않았다. 


"내가 처음 사준 치킨은 더 맛있어?" 하는 질문에 지금까지 먹은 치킨 중에 제일 맛있다는 진실을 해준다.

 아들이 자그마치 열 달을 모아서 사준 치킨, 이다지도 비현실적으로 맛있을 수가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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