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대 중반에서 10평대 중반으로 20평을 줄이는 이사를 결심할 때까지. 마음을 먹은 후에도. 이사를 준비하고 또 실제 살면서까지도.
언제나 신경 쓰이는 건 아이다.
어른은 사실 집이 작아졌다고 해서 미친 듯이 불편하다거나 못 견디게 답답하다거나 왜 이리 집이 작은가 고민할 일이 없다. 참 쉽게 어질러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이 역시 조금만 파닥파닥 움직이면 금방 원상회복이 된다는 장점이 상쇄한다.
히키코모리인 덕에 소수정예의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한 명 이렇게 집이 작아서 어쩌겠냐는 날 선 소리를 하지 않는다.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빈 말도 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훅 줄어든 집 크기에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아니하고 하나같이 집을 어쩌면 이렇게 잘 정리했냐며 전혀 좁아 보이지 않는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물론 크다고는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 마지노선.
그러나 이렇게 상대의 감정을 배려한 언행은 경험상 중학생은 되어야 자연스러워진다.
예전 살던 집에 종종 놀러 올 때마다 이 집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살고 싶다 말하던 친구의 5살 딸은 이사 후 처음 작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본인의 짧은 보폭으로도 몇 번만 움직이니 집 처음부터 끝을 섭렵하게 되자 "왜 집이 쪼그라들었어요?"라는 더 이상 솔직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초등학생 조카들도 1/3로 줄어든 집 크기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했다.
그러나 같은 반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말에는 1.5룸 사진을 당당히 글쓰기 플랫폼에 올려대던 엄마도 당황하고 만다.
이사 전에는 참으로 친구를 자주 데려왔다.
그때도 우리 집보다도 넓은 집에 사는 친구들이었지만 너네 집은 너무 깨끗하고 좋다며 감탄들을 해 댔고, 배운 대로 "너희 집도 좋아"라는 예의 바른 답을 하던 아이 표정에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사 후에는 코로나 덕에 친구들과 왕래할 수 없음이 내심 고마웠고 친구들이 학원 스케줄로 바빠서 집에서 놀 수가 없다는 아이의 불만에도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근처에서 우리 집이 가장 작은 평수일 테다. 대형평수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아이는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당장 친구를 부른단다. 그것도 두 명이나.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했다.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달라서 사는 모습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남들보다 작은 집에 살지만 얼마나 쾌적하고 좋냐며 노래를 불러대던 어른은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떻게 꼬드겨도 자기도 놀러 갔다 왔으니 데리고 오겠단다. 엄마가 저번에 놀러 가기만 하고 초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되묻는다. 저번처럼 밖에서 놀다가 맛있는 걸 사주면 안 되냐고 이야기해도 이번에는 집에서 논단다.
병원 진료가 있어 휴가를 내놓고는 집안 청소에 매진한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청소한 적이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집이 요만큼이라도 더 넓어 보일까 싶어 조금이라도 밖으로 나온 것은 다 안으로 집어넣고 작은 먼지 한 톨까지 다 닦아낸다.
왜 내가 이렇게 두근거려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들이 방문했다.
말은 '안녕하세요' 하는데 눈은 나를 보지 않고 집을 본다. 간식을 내어주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크게 놀란 소리가 들린다.
" 야, 집이 너-무 작은데?"
아.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초등학생은 우리 집처럼 작은 집을 보면 깜짝 놀란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희들끼리 놀라며 방에 들어가 놓고 자꾸만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쫑긋하고 있는 소머즈귀가 밉다.
두 아이 모두 놀란 건 매한가지지만 한 명은 정말 놀랐나 보다. '어떻게 이렇게 집이 작냐, 그럼 목욕은 어디서 하냐, 너 방은 어디냐, 침대가 없는 거냐'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병원 갔다 온 것보다 청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어른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예상해 놓고 뭘 이렇게까지 온도가 올라가나 스스로가 못나 보인다.
"집이 왜 이렇게 작은 거야?"
결국 이 질문까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왜 갑자기 이렇게 작은 집에 살게 됐는지 아이에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엔 경제, 사회 전반을 시작으로 한국 부동산의 특수성, 가계부채의 위험까지 주절거릴 말이 너무나 많다.
그 많은 질문에 오락을 하면서도 또박또박 대답을 해가던 아이는 이 질문에 단박에 답한다.
"너네 집이랑 우리 집이랑 건물 크기는 똑같은데 너네는 한 층에 두 집이 들어있고 우리 집은 여섯 집이 들어있으니까 당연하지."
와. 이렇게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구나.
소머즈 귀를 팔랑이고 있던 어른의 얼굴은 이번에는 깊은 깨달음과 뭔지 모를 미안함과 고마움에 아까보다 더 뜨거워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