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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04. 2023

그렇게 내내 있는 척 다 해 놓고 왜 돈은 나보고 내래

그놈의 마흔.

불혹이라며.

흔들리지 않기는커녕 지혜로 승화되지 못한 채 어중간히 쌓인 경험들로 인해 그간 믿고 있던 것들에도 의심을 품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걸 생각하면 지금 마흔은 질풍노도의 시기일 테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서나 '나도 지금 방황하고 있다고!'를 외치며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 위치에서는 한참 벗어났고 그 불안을 애써 감춰가며 오래전부터 마흔이 넘은 자에게 기대되는 모든 측면의 의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여전히 흔들흔들한다 해도 지나온 40년이 또 그렇게 만만한 숫자는 아니다. 150년도 전에  링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얼굴의 표정과 눈빛은 물론 행동, 말투, 목소리 톤에서도 그 세월이 드러나는 시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약간의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크고 높았으며 위아래로 떨림이 심했다. 마흔은 훌쩍 넘었음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노의 크기는 컸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이가 중간중간 넣어주는 추임새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화는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 일행과 식사를 하고 나왔을 두 사람. 그중 한 명이 내내 돈자랑을 했나 보다.해외 어디를 갔다 왔느니,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얼마를 주고 샀느니 이제 OOO 같은 가방은 못 들고 다니겠다느니까지는 참았는데 사는 지역 이야기를 끄집어낸 거다. 그녀가 사는 OO구 전체를 싸잡아 '못 사는 동네'로 칭했단다. 스케일도 크지.


"지가 뭐 처음부터 거기 살았어? 지 집도 아니면서, 그 동네는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그 뒤에도 내내 이어졌을 자랑억지로 참았나 보다. 


 막판에 잘 먹었다며 은근슬쩍 자신에게 돈을 내라고 한 포인트에 이르자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있다면 전혀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내내 있는 척 다 해 놓고 왜 돈은 나보고 내래!!!" 하며 소리를 지른다.

 내내 있는 척했다고 그 사람이 내야 한다는 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종일관 '너는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돈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떠들어 놓고 계산을 미루화가 날 만도 하겠다.


 돈 자랑 한다고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많은데 너는 없고, 나는 부자인데 너는 가난하고, 너는 못 누리는 이런 것들을 나는 누릴 수 있고' 식은 안된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사람 앞에 앉혀두고 조곤 조곤 린치하는 거다.

 나보다 적게 가진 상대방과의 비교 우위를 통해야만 자부심과 긍지를 경험한다면 집에서 혼자 하면 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거기서 내가 기쁨을 느낀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제발, 혼자 하자.


 먼저 일어나 나오며 흘깃 얼굴만 훔쳐보니 쉰도 훨씬 넘어 보인다.

괜히 이 사람 편을 들고 싶다. 그녀의 뒷담화 안에서만 만난 그 자랑쟁이는 어쩐지 나쁜 사람 같다. 이렇게 한쪽 말만 듣고 편파적인 판단을 내리면 안 되는데.


 잠깐. 그런데 결국 돈은 누가 낸 거지?




이미지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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