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의 목표는 단 1cm 공간이라도 살린다는 것. 작은 집에버려지는 공간은 용납되지 않는다. 큰 틀을 정한다. 공기 단축과 예산 절감을 위해 구조는 유지하고, 혹시라도 누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수도 배관의 위치는 변경하지 않는다. 설명서 없이도 뚝딱뚝딱 조립하고 고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무언가 고장 나거나 하자가 발생하면 스트레스를 넘어 공포다.조금이라도 넓어 보이기 위해 흰색으로 전체 톤을 정한다. 이곳저곳 예쁜 색깔로 넣으면 작은집은 바로 무당집으로 변신할 테다.
큰 집을 잘 접어서 작은 집에 넣고 싶어 진다. 큰 공간의 물건을 작은 공간에 넣는다는 것,쉽지 않다. 최대한 밖에 나와 있는 게 없으려면 많은 수납공간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붙박이장을 너무 크게 만들면남은 공간은 통로밖에 되질 않는다.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제 업체에 요청할 내용들을 정리한다. 사용하기 쉽다는 도면 프로그램으로 가구를 입히려 해 본다. 안된다. 그림을 그려본다. 못 알아보겠다.결국 그동안 구상해 놓은 것들을 써놓은 엑셀 파일을 보기 좋게 정리만 해서 출력해 간다. 목공 작업을 담당하는 실장은 4장의 종이를 받고서 '아... 이게.. 말로 쭈우욱 되어있으니까... 감이 잘 안 와서....'당황해한다.하지만워낙 디테일하게 적혀 있어 중간에 변경이나 시행착오 없이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고 후에 이야기해주었다.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적고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공간별로 나누어적었다.붙박이장의 위치와 대략의 너비, 모양은 물론, 가져갈 물건의 크기를 재서 수납장 높이까지 정한다. '신발장 왼쪽 제일 아랫칸 -축구공 들어갈 수 있는 높이(25CM 이상)', 이런 식이다.가져갈 가구와 가전을 어디에 놓을지, 어디에 빌트인 가전을 넣을지 쓰고 빌트인 가전은 모델명과 가로세로 너비의 길이까지 기재했다. 배치에 맞게 콘센트 위치를 지정하고, 최대한 전선이 보이지 않기 하기 위해 컨센트의높이까지 표시해둔다. 며칠 뒤에 실장이 붙박이 가구 도면을 보내왔을 때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감탄이 나온다.
그 와중에도일상은 진행된다. 출퇴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 수납공간은 한 칸 한 칸 세세하게 고민했지만,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손잡이 하나까지 찾아 고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국산, 친환경, 깨끗해 보이고 청소가 쉬운' 이조건만 정하고 업체가 추천하는 한두 개의 보기 내에서 고른다. 같은 평형을공사한 경험을 믿는다.'바닥에이 색도 사용해 봤는데, 확실히 어두워 보였다. 이 마루가 가장 환하더라'하면 바로 결정이다. 바닥재, 벽지, 붙박이장 자재, 손잡이 등을 고르는 데는 30분이 걸리지 않았고, 도기 상점에 가서 주방과 욕실, 현관의 타일과 싱크볼, 세면대, 욕실 수납장 등을 한 시간 안에 고른다.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있다. 주방 펜던트등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도, 그 위에 먼지 쌓이는 것도 싫은 데다 식탁 자리를 옮길 수도 있으니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공간을 분할하지 않아야 넓어 보인다고읽었기에 붙박이장은 손잡이없는 푸시 도어로 한다.
나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는데도 공사 기간 내내 결정해야 할 것과 추가할 것, 뺄 것이계속나온다.'이건 이래서 안 돼요'하면 나는 바로 말을 듣는다. 냉장고 윗 공간에 수납장은 입구가 좁아가전을 못 넣을 거라는 대표의 말에 단박에 '아 그럼 뺄게요!' 이런다.내가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해서 결정해도, 전문 지식과 경험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을 거다.전문가의 의견을 따른다고 마음을 정해 놓으니 결정이 빠르다. 결과적으로도 그것이 옳았다.
업체에서 하라는 것을 안 한 것도 있다. 정말 작은 부엌을 ㄷ자로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싱크대 밑에는 보일러가 들어있다. '싱크대를 연결했는데 뜯어내야만 보일러 AS가 가능하다고 하니 어떻게 하냐'는 카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럼 아일랜드 식탁을 놓자고 했지만, 좁은 공간 한가운데 움직일 수 없는 가구가 있는 것은 싫다. 둘 다 하지 않는다.
업체에서 하지 말라는데 끝까지 우긴 것도 있다. 빌트인 식기세척기다. 국내 시판되는 세척기 중 너비가 가장 작은 것을 찾아냈는데도 안된다고 한다. 싱크대 자체가 워낙 작은 데다 하부 보일러 때문에 공간이 안 나온단다. 그래도 나는 미련을 못 버린다. 10년 동안 사용하던 식기세척기는 두 달 전쯤 고장이 났다. 일단 비우고 그때부터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견갑골 통증에 수시로 시달리는 나는 등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나에게 식기세척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다.
단 1cm라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창문과 장 사이에 2cm 이상의 불필요한 공간을 더 띄워 만든 단 하나 있던 붙박이장은, 그 2cm를 살리기 위해 철거하고 다시 만든다. 벽면 도배지를 뜯으니 단열재가 과하게 두껍게 붙어있단다. 단열재를 다 긁어내고 효율 높은 얇은 것으로 붙인다. 단열재를 긁어내서 거실 양쪽 폭을 단 2-3cm라도 넓힌다. 싱크대 옆 가스계량기가 들어있는 벽면을 뜯어내고 얇게 마감하면서 어렵게 식기세척기 공간을 마련한다.가스계량기와 보일러 배관을 가린 가벽 안의 빈 공간을 살리기 위해 인덕션을 넣고 가스 배관과 계량기를 함께 철거한 뒤 그공간을 활용해 부엌 수납장을 짠다.
정말 빠듯한 기간 안에 공사는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사 마감일에 맞춰 이사일을 정하고 이사업체와 입주청소 계약까지 끝났는데 임시 공휴일 계산을 못했다고 하루를 미뤄야 한다는 전화가 온다. 이 전화 한 통에 우리 집과, 우리 집으로 이사 올 집의 이사일자를 바꾸며 엮여 있는 각 업체까지 연락하고 나니 그날 하루가 지났다. 이 외에도 자잘한 문제들이발생했지만, 집 안을 다 뜯어고치는데 이 정도 문제는감수해야지 한다. 대부분 그랬듯이 나 역시 처음 견적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공정도 추가됐다. 이미 큰돈이 들어갔는데 작은 추가 금액 때문에 계속 아쉬운 부분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예산에 여유는 없었지만 '공임은 깎는 게 아니다'라는 친정 엄마의 짧은 조언은 업체와 비용 이야기도 매끄럽게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작은 집은 그렇게 단 몇 cm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 보람이 있게, 버려지는 공간 하나 없이 알차게 짜여 있다. 베란다우수관을 가리기 위해 짜넣은 수납장에는 여분의 두루마리 휴지와 청소기가 들어있고, 세탁기와 건조기, 냉장고 사이빈 공간에 짠 수납장에는 세제, 청소용품 등이 들어있다. 건조기 위의 공간도 버리지 않고 수납장을 짜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두었다. 덕분에 집은 작지만, 큰집에서와 같이 밖으로 나와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전혀 그 평수로 안 보인다' '너무 넓어 보인다'라며 놀란다('넓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참으로 솔직한 사람들이다)
겨우 설치할 수 있었던 식기세척기. 일자 싱크밖에 없지만 조리대 높이와 같은 수납장을 사서 커버를 덮어 조리대로 활용한다
청소도구와 휴지를 보관하는 우수관 가리개. 문 닫으면 벽 같다
그리고, 작은 집에서도 일하는 엄마에게 이모님은 필요하다! 로봇청소기는 돌아다닐 곳이 없으나, 마침내 식기세척기를 넣었고, 빨래 널 공간이 없으니 건조기를 넣었다. 이 작은 집에 두 명의 이모님을 모실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