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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5. 2022
작은 집, 조금 더 넓게 쓰기-가구 이야기
"엄마는 역시 미니멀 라이프야"
서울에 걸렸다. 두 번째다. 우대권은 이미 썼다. 호텔을 지어 놓은 파리를 넘기란다. 땅은 팔기 싫어서 수중에 있는 돈을 털어서 200만 원을 맞춰 주니 오천 원짜리, 천 원짜리 뿐이다. 내 앞을 보더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역시 미니멀 라이프야.' 요새 말로 빵 터진다. 부루마불에서도 의도치 않게 미니멀 라이프구나. 일단 일관성 있는 건 좋다.
관리할 돈이 없으니 편안하고 깔끔하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돈이 간소한 건 싫다!나에게 서울 통행료를 받은 아이의 돈은 주체가 안된다. 권종별로 가지런히 쌓아두고 시작했는데 수북하게 다 섞였다. 역시 너무 많으면 관리가 어렵다니까. 미니멀 라이프가 심오한 게 아니다. 정리할 물건 자체를 줄여 간소한 삶을 얻는다. 부루마불을 통해 미니멀 라이프를 고찰한다.
서울 두 번은 치명적이다. 결국 파산을 했다. 저녁을 먹으려면 보드게임을 치워야 한다. 하나의 테이블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글도 쓰고, 보드게임도 하고, 텔레비전도 본다. 손님이 와서 커피를 마실 때도 함께 앉을 곳은 오로지 여기다.
20평을 줄인 이사는 불필요한 것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함에도 가지고 올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눕는 것과 앉는 것의 중간 자세로 널브러져 쉴 수 있던 큰 소파의 가로길이는 작은 집 거실 너비를 넘긴다. 오래 사용해 반질거렸던 나무 식탁은 들일 수는 있지만 의자를 빼면 지나다닐 공간이 없다. 작은집에서 단 10cm는 동선이 나오냐 안 나오냐를 결정짓는다.
부피를 적게 차지해서 작은 집에서 많이 활용한다는 심플한 원형 식탁을 찾아본다. 이것을 놓고, 작은 소파를 놓아볼까 한다. 허리가 좋지 않으니 좌식 생활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넓은 상판이 필요하다. 많이 차려 놓고 먹지도 않는데 4인용 식탁도 넓지 않다. 컴퓨터 옆에 책, 자료, 필기구, 컵 하나, 이렇게만 둬도 자리는 부족하다. 코로나에는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가 겹칠 것도 대비해야 한다. 결국 식탁과 테이블, 큰 책상의 역할을 같이 할 가구를 놓는다. 높이는 더 낮고, 앉는 면적은 넓어서 편하다는 의자는 소파의 역할을 분담한다. 집에서 보내는 대다수의 시간이 이곳에서 지난다. 많은 기능을 훌륭하게 해낸다. 물론, 의자는 소파보다는 안 편하다. 테이블은 식탁이나 책상보다 낮아서 오래 작업하기 힘들다. 한 가지 기능에 충실한 가구들보다 더 좋은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요대로 하나씩 두었다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거다.
소파와 테이블과 식탁과 책상의 역할을 겸한다. 동시에 노트북과 태블릿, 물티슈와 티슈상자를 보관하는 역할까지 맡는다작은 부엌에는 조리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인덕션과 개수대 사이 거리는 딱 3.5L 용량 에어프라이어 하나만큼이다. 싱크대와 높이가 같은 부엌 수납장을 구해 상판에는 유리 대용 커버를 놓고 조리대로 사용한다. ㄷ자 주방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아일랜드 식탁을 기웃거리다가 최근 수납장 방향을 돌린다. ㄷ자가 아니고 등호(=) 모양이고 크기도 참 작지만, 확실히 거실 쪽을 바라보니 좋다. 내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가구 하나로 넓은 주방 안 부럽다.
도대체 차이가 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구를 이만큼만 돌리니 ㄷ자 주방에 대한 로망이 이루어졌다작은 집에서는 공간을 얻기 위해 가구와 가전도 겹쳐 둔다. 텔레비전 뒤에는 두 대의 오락기가, 거기 딸린 컨트롤러와 케이블은 서랍에 모두 들어가 있다. 단품으로 텔레비전 수납장으로 쓰는 작은 가구는 책상 밑 빈 공간에 넣고 오디오와 공유기를 둔다. CD장은 벽에 붙여 부피를 줄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복잡하지만, 모든 미디어 생활을 책임진다.
가구를 겹쳐두고, 그만큼의 빈 벽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