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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n 01. 2023

똑같은 옷을 두벌씩 사는 미니멀 라이프


 스티브잡스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 옷장은 비슷비슷한 색깔과 디자인의 옷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바지는 언뜻 보면 다 똑같은 옷들인가 싶지만 재질과 두께가 다르다. 어떤 상의에 받쳐 입어도 무난한 색상의 바지 중 그날의 날씨에 맞는 걸  골라 입으면 끝이다. 상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5분의 파장이 그 어떤 시간대보다 큰 아침 출근 준비 시간에 뭘 입고 갈까 고민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특히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다 결국 처음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허둥지둥 뛰쳐나가는 건 진즉 그만뒀다.

 중요한 것은 내면을 채우는 것일 뿐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는 것을 마음속 저 깊은 곳부터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겨서 그렇다고 하면 보다 가오가 나겠지만 그저 에너지가 부족해 그렇다.


 나의 에너지의 총량은 나이가 들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고 마흔을 기점으로 현저히 작아졌다. 기력은 쇠하는데 해야 할 일은 그렇지 않으니 한정된 에너지를 몹시도 많은 곳에 나누어 쓰면서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외모는 후순위로 밀렸다. 엇을 입을지를 포함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나의 모양에 들일 수 있는 에너지의 할당량이 훅 어들며 화장품의 개수가 줄고 화장하는 시간이 사라졌듯 옷을 골라 입는데 예전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게 되었고 옷을 사고 정리하는 데 이는 노력의 양은 소소해졌다.

 

 

 "이건 딱 손님 옷이네, 다른 분들은 입고 싶어도 못 입어요."라며 칭찬하는 매니저 옆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옷 태 구석구석을 뜯어보며 "허리가 없어 보인다" 직언을 날리며 올바른 선택을 만드는 친한 이들과의 쇼핑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이 디자인은 우리 집 밖에 없어요. 이거 딱 한벌 남아서 지금 안 사시면 주문해야 해." 하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발언에도 '비슷하지만 더 예쁜 옷은 반드시 있다'며 내 손을 잡아끌며 옳은 쇼핑의 길로 인도하던 그들이었다.

 내 옷 사러 가는데 자기 옷만 입어 보는 사람과는 쇼핑을 가면 안 된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서로 다른 날 입자며 둘 다 옷을 살지언정 내 옷을 입을 때는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쏟는 우리였다.

 바지를 사러 나갔으나 바지와 함께 입을 블라우스를 사놓고서는 이렇게 세트로 사야 결국 잘 입게  충동구매를 합리화하는 과정마저 즐거웠다.

 기력을 보충하고 나서는 밥을 먹으면서도 눈앞에 아른거렸던, 마음에 딱 들었지만 가격에 놀라 "한번 보고 올게요."하고 두고 나왔던 그 옷을 다시 찾아가며 '다음 달에 아껴 쓰자, 이렇게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할 때 사야 된다, 비싸긴 하지만 정가는 더 비싼데 할인율이 좋다' 부추기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축지법을 쓰듯 빠르게 걷지 않았던가.

 백화점에서 시작해  연결된 지하상가까지 다양한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경하고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오면 하루가 뿌듯하후들거리는 리에도 운은 샘솟아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옷들을 입어보기까지 했다.


 그랬던 나인데.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들어서는 순간 내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듯하다. 다른 손님도 있는데 내게 다가와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시면 부담스럽다. 옷을 입어봐야 하는데 기껏 입고 나간 옷을 벗어 잘 걸리지도 않는 옷걸이에 대충 걸어두고 사라진 균형감각으로 뒤뚱뒤뚱 거리며 새 옷을 입어보고 다시 또 벗어 원래 내 옷을 입는 그 공정이 만만치 않다. 겨우 한벌 입어봤는데 벌써 힘들다.

 오프라인 쇼핑은 큰 마음먹고 해야 할 과업이 되었고 대부분의 옷은 온라인으로 산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다르니 내 몸에 맞는 사이즈의 브랜드를 발견하면 그다음부터는 고민하기 귀찮으니 그곳의 옷을 주문한다.


 문제는 바지다.

 디자인과 사이즈만 확인하고 사면 어지간하면 맞는 상의와 달리 하의는 비슷비슷한 모양과 색이지만 단 몇 cm차이로  걸을 때 발목이 드러나는지 살짝 신발 등을 덮는지갈린다. 심지어  같은 사이즈의 옷이 골반에 걸려 다 올라가지도 않기도 한다. 사진은 다 똑같았는데 막상 입으면  골반 라인이 딱 떨어지거나 벙벙하게 뜨는  차이가 있고, 허리부터 밑에까지 쭉 뻗어 내려오는지 아니면 다리 모양이 휘어 보이는지가 결정된다. 둘 다 부들거리는데 입자마자 맨 피부가 가려운 니트가 있는 반면 따스하게 착 감기는 것이 있다.

 이뿐인가. 앉았다 일어나려면 무릎이 쓸리는 것처럼 불편한 옷이 있는 반면에 안 입은 것처럼 편한 바지도 있다.

 


 바지 고르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 딱 맞는 바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그런 바지를 찾기 위한 에너지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후부터는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발견하면 가장 마음에 드는 두 가지 색으로 두벌 산다.  벌을 고르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로 두벌을 얻는 합리적인 구매다. 두벌이면 24 절기로 나뉜다는 옷의 계절 중 한 절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


  불편해도 예쁘니까, 혹은 예전에는 잘 입었지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바지는 과감하게 비운다. 매일 편하고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된다. 이상한 옷을 입어도 되는 날은 없다.

 매일 내 체형에 적합하고 움직일 때 저항감이 없으면서도 디자인도 재질도 내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입어야 하루 종일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지금, 같은 옷을 두벌씩 사며 내게 필요한 그만큼의 미니멀라이프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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