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20년을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내가 깔끔하다거나 깨끗하다거나 청소를 잘한다, 정리정돈에 능하다와 같은 말은 넌 사람이지, 너는 여자야, 너에게는 눈코입이 있어와 같은 몹시도 당연한 보편적 진리인 셈이다.
그래도 20평을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 온 직후에는 그 많은 것을 밖에 나온 것 하나 없이 정리하다니 엄청나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으나 어느새 2년을 바라보는 지금, 작은 집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역시 그들에게는 당연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낯선 이들에게 주기적으로 칭찬을 받는 여자가 여기 있다.
수리나 점검 등의 이유로 작은 집에 방문하는 낯선 이들.
같은 단지 안, 같은 평형의 수많은 다른 집들을 보아온 이들이라 이 좁은 곳을 이렇게 넓고 깨끗하게 쓰는 집은 처음이라며 칭찬을 해주신다. 심지어 2년 만에 오신 어떤 분은 본인이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냐고 오히려 내게 물으며 너무 깔끔해서 기억이 난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어봤다.
전에 살던 아파트의 임대인이 집을 내놓았다며 번거롭겠지만 집을 보러 자주 방문할 수 있으니 협조를 잘해달라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았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처음 집을 본 사람이 그날 바로 집을 사겠다고 했단다.
전세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매매계약서에 써달라 해서 부동산에 방문했는데 현 집주인과집을 사는 사람과부동산 아저씨까지 어쩌면 집을 그렇게 깨끗하게 썼냐며 난리시다.
"제가 이 단지 안에 얼마나 많은 집을 가 봤겠어요. 이 집 같이 깨끗하게 쓴 집 없어요.'라고 단언하시는 부동산 아저씨.
이제 이 아파트도 수리하고 들어올 때가 돼서 보통 그 비용을 감안해서 매매가 되는데 그 집은 새집과 같이 수리할 데가 없어서 당시 신고가로 계약을 했단다. 집주인이 참 복도 많다며 갭투자에 성공한 현재의 집주인의 팔자까지 칭찬해 주는 아주 화기애애한 부동산 풍경이 퍼뜩 스친다.
작은 집에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을 때는 아파트 정기소독일.
매번 바뀌긴 하지만 소독을 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자분들. 본인들도 오래 살림을 해서 그런지 작은 집 살림에 아주 관심이 많다.
싱크대 상판은 뭘로 닦냐, 인덕션은 전용세제를 쓴 거냐, 붙박이를 다 재서 넣은 거냐, 빨래는 어디 너냐 몇 가지 질문도 해 가며 쉴 새 없이 칭찬을 해 주신다.
일전에 오셨던 한분은 한 달 치 칭찬을 쏟아내고 가셨다.
신발도 채 벗기 전에 '어머 이 집은 공사를 너무 잘했네!!' 하며 들어오시더니 몹시도 꼼꼼하게 집안을 훑어보신다. 본인의 딸도 같은 단지에 살고 있다며 '우리 딸내미는 00동에 살아서 평수는 훨씬 큰데, 짐을 얼마나 쌓아두고 사는지 바닥이 안 보여. 바닥은 이 집이 더 많네.' 하시며 순식간에 딸내미와 사위의 직업, 가족 구성원까지 소개하신다.
어찌나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지 중간에 목이 마르다고 물을 좀 달라하시는데 언제 또 냉장고 안까지 보셨는지 '어쩌면 이렇게 냉장고가 텅 비었어. 세상에. 밥을 안 해 먹고사나?' 하시는데 감탄이 나오는 눈썰미다.
방으로 변한 베란다를 보시며 '이거 잘했네. 그래. 요새 뭐 베란다 필요해?'라시며 공사 전반에 대한 감수와 긍정적 평가를 이어 가신다.
소독약을 뿌릴 곳이라고는 화장실과 우수관 달랑 두 군데인데 하수구도 없는 방 구경까지 마치니 상당한 시간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신 그분. 나가시는 길에도 야무지게 또 집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더니
"그래, 이렇게 뭐가 없이 살아야 해. 그래야 깨끗해."
하며 혼잣말인지 아니면 내게 하는 말인지, 대답이 필요한 건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되는 말을 내뱉고 가신다.
내게도 당연해졌던 작은집을 그때 그분처럼 천천히 돌아본다.
이사 후 밤늦게까지 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며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보이는 작지만 참으로 단정한 공간을 보며 느꼈던 편안함과 뿌듯함을 기억해 낸다.
이 아늑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