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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06. 2023

작은 집에 별 걸 다 놓고 산다

 신데렐라의 계모놀러 나가면서 신데렐한테 집안일을 잔뜩 시켰다.

 집이 더러운 건 개의치 않으니 쉬겠다거나 그게 아니면 몸이 힘들어도 청소를 해 쾌적함을 누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놀면서 다른 이를 무임금으로 부려서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욕을 먹는 거다.


 신데렐라의 계모도 아 외출하면서 꼭 그렇게 일을 다.

 몸단장에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짧다. 머리를 말린 후 청소기를 돌려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만든다. 애벌 설거지를 해 식기세척기 안에 넣어둔다. 샤워하고 사용한 수건까지 모두 세탁해 외출 직전에 딱 맞춰 끝난 빨래를 건조기 안에 옮긴다. 집을 나서기 직전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시작 버튼을 누른다. 전기주전자와 로봇청소기까지 작동시킬 때도 있다.


 작은 집에 별 걸 다 놓고 산다.

 돌아다닐 곳도 딱히 없는 집에 로봇청소기까지 있다니 말 다했다.


 나의 노동력과 시간, 에너지를 대신해 주는 가전은 공간이 작아도 비워낼 수 없다. 전기밥솥은 압력밥솥에 비해 공정이 확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비울 수 있었다.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 주는 가전 역시 내가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면 없어도 괜찮다.


 그러나 가전제품의 기능을 오롯이 나의 노동력으로 채워야 한다면 그건 안 되는 거다.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면 그건 내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퇴근하고 밥 해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때 로봇청소기는 설거지 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기를 시작으로 구석구석 조용히 다니며 장마철에도 고슬거리는 바닥을 유지한다.


 슬림한 청소기는 드라이 직후 출동해 머리카락을 치운다. 부직포를 끼워 넣고 다시 뺄 이만큼의 시간도 부족한 출근 직전에도 순식간에 일을 처리한다.  빵 부스러기도 지우개 가루도 늘 골골한 상태의 허리를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으로 모으는 대신 바로 밀어 버린다.  


 튀기면 신발까지 맛있다지만 기름을 데우고 뜨거운 기름 앞에 서서 하나하나 튀겨 낼 정성은 부족하니 바스켓 안에 다 몰아 담고 원하는 온도만 세팅해 놓으면 완성품을 내어 놓는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고 그 사이 새 밥을 짓고 상을 차리기까지 한다.


 애벌작업만 해서 집어넣으면 고온으로 세척하고 살균까지 해 반짝거리는 컵과 그릇을 내놓는 식기 세척기도, 빨래를 널어놓을 장소도, 널고 있을 시간도 부족한 나를 대신해 젖은 빨래를 고슬 거리게 만들어 놓는 건조기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든 집안일에 투입되는 에너지 총량을 줄여보고자 하는 한결같은 의지에서였다.


 집에 돌아와 세척을 마치고 물기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그릇들을 보면 보람차다. 두 시간가량을 돌려야 하는 건조기가 내가 없는 사이 젖은 빨래를 고슬고슬 만들어 놓은 걸 보면 그래 니들이 고생 많이 했다 싶다. 알맞게 식은 물을 냉장고에 넣으며 맨발에 느껴지는 나무 바닥의 기분 좋은 촉감을 즐긴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 있는 사진 속 그대로의 단정한 집을 만나는 게 좋다. 겉옷을 벗기도 전에 뭐부터 치워야 되나 하는 상태는 싫다. 1박 이상의 여행이라도 갈 때는 집에 돌아와 최선을 다해 쉬고 싶을 나를 위해 쓰레기봉투까지 싹 비우고 나간다. 어디를 갔다 와도 우리 집 문을 열었을 때 "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쾌적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자기 전에 집안을 정리해 두고 자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돈된 집안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가 더욱 평안함을 안다.


 안타깝게도 착착 말을 잘 듣는 신데렐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줄 요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출하기 전 미뤄봤자 돌아온 내가 해야 하고, 오늘 저녁에 미뤄봤자 내일 아침의 내가 해야 한다.

 이러니 가전제품을 부릴 수밖에.

 

작은 집 가전들은 주인이 없어도 일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 가전도 있다.  커피머신은 주인이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작해 최소 두세 번을 일한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몹시 분주하다. 그나마 5시가 넘으면 퇴근이다. 물과 차와 커피를 끊임없이 마시는 작은 집의 전기 주전자는 기상 직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글자 그대로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사람을 이렇게 부렸다면 나는 악덕업주로 잡혀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다. 사람이라면 분명 '이것만 하고'. '좀만 쉬었다가', '좀 이따 할게' 이랬을 거다. 이거 해라 시켜놓고 진짜로 할 때까지 그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움직였을 테고 마음속에는 화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을 테다. 그 화는 내게 그리고 가족에게 갔을 것이 틀림없다.


 가전은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원하는 그 순간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움직인다.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작업을 시켜도, 방금 다 했는데 또 시켜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그만큼의 노동에 상응하는 보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가전제품이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신데렐라도 요정도 부러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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