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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ug 18. 2023

처제는 쓰레빠만 있구나

 근로소득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이 버는 것보다 적게 쓰는 것이 빠르다.

 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히키코모리가 적성임에도 장기근속 중이지만 주문처럼 외는 문장들은 찰나에 뇌를 스쳐 가고 좀처럼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다. 


 친구 회사 동기가 비트코인으로 '더 이상 일해도 되지 않을 만큼의 돈'을 벌고 사표를 냈다는 말을 듣고는 '와, 좋겠다, 좋겠다정말 좋겠다' 랩을 하고 말았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 다 털고 나올 때 시작한 주식은 계좌 개설과 동시에 마이너스를 맞이한 나와는 상관없는 외계의 일이니 듣지도 말자 하다가도 또 이렇게 몇 다리 건너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확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다.


 입사 초기.

 전날 급하게 휴가를 내고 나갔던 선임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리바리한 우리를 앉혀두고 어제 만난 '진짜 부자' 얘기를 해준다. 

 한꺼번에 급매가 쏟아져 나온 오피스텔이 있으니 어서 계약하고 오라는 남편 전화에 돈을 찾아 분양 사무실에 가서는 몇 호를 할까 들여다보고 있는데 집에서 막 나온듯한 홈 원피스와 슬리퍼 차림의 아주머니가 커다란 루이뷔통 가죽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3호 라인 고층부터 순서대로 다섯 개를 달라'며 순식간에 계약서를 쓰고 가방에서 현금 다발을 뭉탱이로 꺼내 놓고 마트에서 물건 사듯 후루룩 가더란다.

 "계속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하니까 결국 3호 라인이 제일 조망이 좋라고. 알짜는 그 아줌마가 다 가져가고 나는 괜히 고민하다 겨우 저층 하나 잡아 왔어"라고 아쉬워하던 그녀.

이미지출처 롯데온 판매 사진. 3초마다 보인다는 루이비통인데 나는 그 사이 2초에 해당한다


한참 뒤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 부동산 이야기가 나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며 그날 들은 '진짜 부자' 얘기를 하니 형부가 "그래도 뭐, 처제도 루이뷔통 가방은 있잖아요." 한다.  괜히 욱해서 "저 루이비통도 없어요!" 하니 형부 왈


"아, 처제는 쓰레빠만 있구나"

 

 3초마다 보여 '3초 백'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는 루이비통인데 나는 그 사이 2초에 해당하는구나. 

 루이비통만 없는가. 학부모총회를 위해 모셔두었던 명품백을 꺼낸다는데 모셔둔 샤넬도 구찌도 없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핸드폰만 손에 쥐고 잘 다녀왔다.


 엄청난 내공과 멘탈을 지녀 다른 사람 눈 따위 개의치 않는 경지에 올라서냐면 물론 아니다. 아주 소신이 있어 명품 가방 따위 절대 사지 않겠다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에 무언가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을 따름이다.

 그래도 전에는 신용카드 두장이 들어가는 아주 얇은 카드지갑 하나는 들고 다녔는데 페이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결제와 교통카드까지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고 나서는 폰과 이어폰만 달랑 들고 다닌다. 텀블러를 넣고 다니느라 들고 다니는 출근용 가방도 한 가지로 고정한 지 오래다. 그날의 옷차림에 따라 가방을 바꿔 들었던 소싯적의 나는 어쩜 그렇게 부지런했을까. 


 샤넬, 구찌, 루이뷔통, 에르메스 정도는 나는 안 가지고 있더라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이름도 너무나 많다. 이제는 이름을 들어도 실물을 보아도 명품인지 아닌지 알아챌 수도 없다. 

@pixabay

 물론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반면 가방 하나가 있고 없고는 확연히 다르다.


 무거운 걸 들고 다니면 힘에 부치다 못해 화가 나고 손에 뭘 들고 챙겨야 하는 것이 몹시도 거추장스럽다. 중간중간 스마트폰 사용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그게 아니라도 그냥 빈 손이 좋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어딜 가나 마치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하고 빈 손으로 나풀나풀 돌아다닌다.

 "이러고 나왔어?",  "이러고 온 거야?" 하는 질문도 익숙하다. 

 손도 가볍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두고 가는 게 있나 챙길 것도 없고 참 개운하고 좋다.


쓰레빠만 있으면 됐다.


 


전체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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