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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11. 2023

통통한 어린이는 배울 수 없는 것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windgirl98/222671706619

 생김행동도 하나같이 동글동글 귀엽고 순한 조카는 미취학 시절 달력의 30일과 31일을 손등을 이용해 확인하는 방법가르치는 엄마 앞에서 자기는 배울 수 없는 거냐울음을 터트렸다. 주먹을 쥐면 생기는 홈으로 구분을 해야 하는데 주먹이 요철 하나 없이 그저 둥그랬기 때문이다.

둥근 만두를 빚고 있는 조카의 손. 요철이 없다

 딱히 간식을 많이 지도 않는데 포동포동했던 조카와 달리 당시 내 아이는 이것저것 많이 먹는데 살이 찌지 않. 그러나 그 둘을 함께 데리고 다니내 아이는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먼저 해놓고는 조금 먹다 말고 어디선가 뛰어다고 있 조카 진득하니 앉아 참으로 복스럽게 음식을 비우곤 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많이 먹는데도 살이 지 않아 걱정이라는 이들을 관찰해 보면 대개 먹는 양이 적다. 음식의 종류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거 몇 숟가락 뜨다 관두고 또 저거 살짝 깨작거리다 만다. 맛을 보는 건가 싶은 을 먹고 이제 시작했는데 금세 배가 찼단다. 반대로 물밖에 안 먹었는데 살이 찐다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처럼 먹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내 아이 역시  조금 먹고 과일 먹고, 또 다른 주전부리를 찾고 했지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지 않았던 게다. 그러면서 몇 시간씩 뛰어다니니 마를 수밖에.

이제 내 아이도 손등의 홈으로 30과 31을 구분할 수 없다

  살이 너무 안 붙어 고민하며 젤리 영양제까지 먹이던 아이 모습이 '이제 보기 좋다' 싶었던 것은 아주 잠깐. 곧이어 주변에서 우려의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슴도치 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귀엽다는 말보다 아이돌처럼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던 또렷하던 이목구비가 살에 묻혀 두루뭉술해진 것을 알았을 때도 아이돌 외모와 멀어지면 어떤가 했다. 제 사촌동생처럼 30과 31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주먹을 가지게 됐을 때 그저 신기하고 귀여웠. 이제 손등의 홈 없이도 30과 31이 있는 달 척척 구분할 수 있다며 둥근 손등이 기분 좋아 문질문질하고 있었다. 록 튀어나온 아이의 토실토실한 뒤태를 보고 흐뭇했고 아저씨마냥 뚝배기를 비스듬히 걸쳐 세워놓고 찌개의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먹는 모습에도 웃음나왔다. 이건 다 근육이지 살이 아니라며, 넌 통통한 거지 절대 뚱뚱하지 않다며 야식과 간식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어이.

 아이 입에서 '엄마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된 거야'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건 드라마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자아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방문을 쾅 닫으며 내지르는 대사인데.

 깡 말랐던 시절 뾰족한 턱선과 얄상한 라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둥그런 사춘기의 날카로운 말에 갱년기도 움찔한다.

@pixabay

 사실 갱년기도 위기의식은 느꼈다. 임신 때 보고 보지 못했던 몸무게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허얼'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주 약간 식사량을 줄였다고 바로 이명이 들리자 건강이 더 소중하다며 날름 핑곗거리를 포착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는 것을 지양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은 소식을 지향한다는데 소식의 즐거움은 영 모르겠고 좋은 사람과 넉넉하게 맛있는 걸 나누는 즐거움이 몹시도 크다. 역시나 미니멀리스트는 글렀다.

@pixabay

 춘기결국 다이어트를 선언한다.

 다이어트의 최대 적은 '진짜 안 먹을 거야?' 이러며 애써 누르고 있는 식욕을 자극하며 먹는 옆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갱년기는 전폭 지지하는 차원에서 동참하기로 한다. 식사량을 확 줄이는 파이팅 넘치는 다이어트의 실패사례를 익히 잘 알고 있기에 무리한 계획은 짜지 않는다. 특히 성장기 사춘기를 위해 야식과 라면, 간식과 음료수 정도만 줄이고 과식만은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한다.

 매일매일 몸무게를 재서 벽에 붙이겠다며 사춘기가 의지를 불태운 첫 날짜는 06.02. 이미 세 달이 지났는데 사춘기의 몸무게는 증가했고 갱년기의 몸무게는 그대로다. 초반에 아주 잠깐 줄어들긴 했으나 빠르게 원상회복.


 다이어트를 위해 샐러드를 먹겠다는 사춘기는 치킨만 다 골라 먹고 야채를 남긴다.

 끼니때는 라면을 끊겠다며 밥을 먹어놓고, 자꾸만 밤중에 '라면 딱 한 개만 딱 한 개만'을 주문처럼 왼다.

 각자 나름의 운동을 했다며 뿌듯해하면서 분식집에서 1인당 2개씩의 메뉴를 시키고 있다. 운동 직후 활성화된 몸은 당분을 즉각적으로 흡수한다.

 식사 대용으로 먹겠다고 새로 구입한 미숫가루는 자꾸 후식으로 먹는다.

 날씨가 더워 입맛이 없다는 건 집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상황에만 국한되는 말인가 보다. 입맛이 없으니 나가 먹을까 하고 남이 해 주는 음식을 마주하면 식욕이 샘솟는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부터 다이어트할게' 소리가 나온다.

 

 몸무게는 같은데 매 끼니가 몹시도 맛있어지는 확연한 변화를 경험한다.

 의기투합해 다이어트를 하겠다던 갱년기와 사춘기는 메뉴 선정을 놓고 기싸움까지 하며 식탐을 발산한다. 단출한 집밥도 새삼스레 맛있다. 역시 새 밥이라며 한 그릇 더 달라면 몹시 흐뭇해 벌떡 일어나 밥을 푸고 있다.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안 먹겠다고 다짐하고서 한밤 중 먹는 라면은 얼마나 맛있으며, 그 옆에서 오늘 딱 한 캔만 마시고 내일은 안 마시겠다며 김부각 한봉 뜯어놓고 마시는 맥주는 또 얼마나 시원한가. 오늘이 마지막 야식이라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한껏 즐기는 그 순간 하루가 보람차고 이 맛에 산다 하며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pixabay

 사춘기와 갱년기의 다이어트 계획은 내 앞에 놓인 음식에 감사하며 매번 마치 이것이 마지막 만찬인 듯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자는 다짐이었나 보다. 


 지키지 못할 헛된 계획을 함께하며 사춘기와 갱년기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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