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Aug 08. 2023

도시락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맨밥만 먹은 이유

 피자가 햄버거보다 몇 레벨은 높았던 고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에 피자 뷔페가 생겼다. 친구들과 뽕을 뽑자며 호기롭게 출동했으나 느끼함에 피자보다 음료수를 더 많이 먹고 돌아왔다. 이래서 뷔페를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거다.


 그런데 한 달 뒤쯤 가게 'OO고등학교 학생 출입금지' 종이가 붙었다. 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후문이 들다. 남동생이 다니던 인근의 남자 고등학교였다. 남자 형제가 없는 친구들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이러냐며 분개했지만 나는 음식점 주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동생이 고등학생이 되며 우리 집은  단위로 고기를 샀다. 동생은 식구들이 앉아 기다리기 지쳐 먼저 자리를 떠도 끝나지 않을 듯한 기세로 꿋꿋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턱관절이 아프다며 일어났다. 또래의 남자 사촌과 셋이 모이면 '이걸 다 먹을 수 있어?' 했던 것도 부족해 추가로 고기를 와가며 어마어마한 양을 해치웠다. 남자 고등학생사람이 이렇게까지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시 동생의 도시락 통은 거대했다. 앙증맞은 밥통 칸막이로 나뉜 아기자기한 반찬통이 세트인 평범한 것은 택도 없었다. 시장 그릇가게까지 찾아가 구한 커다란 밀폐용기를 통으로 가정집 찬통들을 반찬통으로 몇 개씩 들고 다녔다. 그마저도 밥을 설렁설렁 담으면 양이 부족해 엄마는 밥알의 형태가 가까스로 유지될 정도로 꾹꾹 눌러서 담았다.


 어느 날 엄마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부른다.

 어남동생이 싸준 반찬을 손도 대지 않고 맨밥만 먹고 왔다며 이번 주에 너무 똑같은 반찬만 싸그런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을 하신다.


 얘가 맨밥이라니. 보통 일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말 못 할 고민이 있나. 힘든 일이 생긴 걸까. 가능성 있는 몹시도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나의 상상력과 결합하갈수록 걱정의 규모와 크기는 커진다.

 pixabay

 과하게 상냥하고 어색한 말투로 묻는 내게 동생은 한다.

 수업시간 배가 겁나 고 참을 수가 없더란다. 반찬을 먹으면 냄새 때문에 바로 걸리니까 뒷자리에맨밥 몰래 퍼먹 점심시간엔 매점에 갔단다.

  

 몇 시간 동안 아주 쓸데없는 걱정을 해 댔다. 그저 배가 고팠던, 멀쩡하게 학교 생활 잘하고 있던 동생을 순식간에 성적 부진부터 학교 폭력까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3으로 재창조했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예측 가능한 상황들에 대비하라 배웠지만 돌아보니 옳지 않다.

 아주 피곤한 일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한다. 덧붙여 그 상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까지 궁리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다. 걱정한다고 생길 일이 안 생길 것도 아니오 가상의 대비책이 쓸모 있었던 적도 그닥 없다. 이 얼마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행위인가.

 

 반면 부작용은 확연하다.

 앞서 하는 고민 탓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소화는 되지 않는다. 자려고 누워도 잡생각에 시달린다. 꿈속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학교를 가는데 버스를 잘못 타고 분명 계속 다니던 길인데 자꾸 길을 헤맨다. 겨우 갔는데 설상가상으로 시험이란다. 무슨 말인지 모를 시험지를 받아 들고 막막해한다. 내 나이가 몇 개고 졸업한 지가 도대체 언젠데 이따위 꿈을 꾸는가. 현실의 내가 사서 앞일을 걱정한 덕에 꿈속의 어리바리한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세상이 이제 끝나버린 것만 같은 절망과 두려 허우적댄다.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인생을 계획한다-말은 좋다.

 하지만 내일, 아니 오늘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쓰잘데기 없이 몇 달 뒤, 몇 년 뒤 고민을 끌어와 하고 있다가도 멀기도 먼 그때의 일을 걱정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우스웠구나 싶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당장의 사건에 맞부닥치는 게 인생이다.


 그냥 그때그때 제일 마음 편한 선택을 하며 살면 된다.

 안 그래도 살기 쉽지 않은 세상에 앞 날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내가 창조한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그만 두자.


 나도 모르게 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 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신중하게 재고를 파악하자. 이것들로 어떤 맛있는 것을 해 먹을지를 성껏 자.

것이 백만 배 쓸모 있다.



이전 13화 팔자에 걱정 하나 없는 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