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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26. 2023

다단계 업체에 감금되었다

 시험 끝나고 할 일은 늘 시험 전에 궁리한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대학 첫 방학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고 있는데 수미에게 전화가 온다.


 옷가게를 개업한 친한 언니를 돕던 그녀는 장사가 잘되면 분점을 맡기로 했다며 잠자는 시간만 빼고 일을 했다. 두 달 전쯤 수미는 초반에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막상 자리를 잡자 쫓겨났다고 그 언니가 그럴 줄은 몰랐다면서 전화에 대고 '인생'과 '배신'이란 단어를 여러 번 썼다.


 그녀가 새로 시작한 공연 기획사 일은 나의 로망이었다

 평소 기획 업무를 보조하고 주말에는 콘서트 현장 무대 바로 앞에서 흥분한 팬들을 막는 가드로 일한단다. 나는 '부럽다'를 연발했다. 저번에는 OO밴드 전국 투어 중에 지방에서 전화를 거는 거라며 '사실 음악은 네가 좋아하는데 아쉽다' 했었다.  


 방학 때 같이 일 할 생각이 있냐고 그녀가 묻는다. 

 돈은 그렇게 많이 안 주지만 콘서트 티켓 가격 생각하면 괜찮지 않냐며 기획 쪽은 자리가 귀하니 빨리 결정해야 한단다. 이번에 이쪽에 발 들이고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취업도 될 거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콘서트 일정 때문에 한 달 정도를 지방까지 이동하 지내야 한다는 것. 그것 때문에 안 되겠다 하니 서울에서 하는 콘서트로 배정받으면 되니 일단 도전을 하라며 북돋아 준. 그녀의 응원에 용기를 다. 

@pixabay

 출발 전 미는 회의 공연장에서 전화를 꺼놔야 되 연락 안 되어도 걱정하지 말라 미리 가족들한테 일러놓으란.

 몇 번을 다시 풀었다 싼 가방을 메고 지하철 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버스로 갈아타서도 꽤 간다. 긴장 나에게 다들 취향이 비슷해 편할 거라며 안심을 시킨다. 그런데 장난은 좀 많이 친단다. 자기는 첫날 신입생 환영회라고 술 왕창 먹고 게임하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핸드폰이랑 지갑이랑 싹 다 숨겨놨더라며 지금 주머니에 있는 돈이랑 핸드폰을 가방에 다 넣으라고 코치해 준다.

@pixabay

 비슷하게 생긴 빌라로 가득 여기도 저기도 다 똑같아 보이는 골목을 한참 걷다  빌라 지하로 내려다. 들어서자마자 오리엔테이션 있으니 케비넷에 넣어준다며 가방을 가져간다. 바로 왼쪽 '교육실'이라고 써 붙은 방 문을 열었는데 그때 '아. 여기 잘못 왔구나' 했다.


 빽빽이 놓인 책상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앉아있고 정면에 선 여자는 칠판에 커다란 세모를 그려놓고 연신 아래에서 위로 화살표를 그려대고 있다. 나가려고 하니 쉬는 시간에만 된다며 앉으란다. 여자는 여기서 뭐를 하면 이 등급이 되고 거기서 또 이 등급이 되고 하며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 이름들을 들먹이며 떠든다. 이건 내가 돈을 벌고 싶지 않아도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란다. 시간이 지나면 손하나 까딱 안 해도 그냥 통장에 돈이 찍힌단다. 속에서 욕이 나온다.


 쉬는 시간 수미가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 내 발로 걸어 들어왔던 문 앞에 나가겠다는 많은 사람과 못 나가게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엉켜있다. 보석 이름이 붙어있는 들에 한 명은 소리 지르고 한 명은 설득다. 


 수미는 보석 방 하나로 나를 데리고 간다. 자기도 처음에 그랬단다. 정말 화가 났는데 그냥 친구만 믿고 교육을 받아보니 지금은 이 길을 알려준 그 친구가 고맙단다. 자기는 나한테 고마운 게 많아서 보답을 하고 싶단다. 지금 자기를 믿고 평생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란다.

 어디를 봐도 시계가 없다.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네가 어떻게 이러냐고 화도 낸다. 우리 가족들이 찾으면 어떡할 거냐며 눈물을 흩뿌리니 '연락 잘 안된다고 이야기해 놨잖아.' 한.


그제야 그녀가 왜 가방 안에 모든 걸 집어넣으라 했는지, 왜 연락 안 된다는 말을 해놓으라 했는지 깨닫는다. 에겐 아무것도 없다또 수업이다. 오늘 여기서 수업을 듣고 근처에서 합숙하며 본격적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배운단다. 뒷말이 안 들어온다. 숙소에 들어가면 끝이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수미가 계속 붙잡고 있다. 거짓말한 건 미안하지만 를 위한 거란다계단과 연결된 문 앞을 남자들이 막아서 있고 나가려던 사람들은 저지당한다. 내 앞에 체격이 아주 큰 남자마저 몇 번 끌려오더니 "씨발, 나는 너를 믿었다고!" 하고  성대가 아닌 몸 안쪽에서 나온 듯한 포효의 소리를 내며 남자들을 밀쳐내  문을 열었다.


 글자 그대로 그 '찰나'를 틈타  문 밖으로 나왔다. 

반지하에서 땅으로 난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벅지에 쥐가 난다. 계단을 밟고는 있는 건지 감각이 없다. 꿈속에서 도망가려 해도 땅에 다리가 붙어 움직이지 않는 바로 그 느낌이다. 

 빌라 문을 나서자마자 연결된 골목길에서 앞에 가던 남자가 차에 치일 뻔했다. 무조건 뛴다. 하필 앞이 작은 공원 같은 한적한 곳이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고 금세 나도, 그 남자도내 뒤로 나왔을 다른 한 명도 잡혔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남자 '믿었다' 사람과 앉아 이야기를 한다. 수미가 언제 또 와서는 나를 앉힌다. 그곳에 도망 나온 세명과 잡으러 나온 세 명이 짝지어 앉아 있다. 여긴 버스도 없고 택시도 안 다니니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단다. 지갑도 없이 리퍼 신고 어디 갈 거냐며 같이 가서 가방을 가지고 나오자 한다. 

 옆에 사람이 지나간다.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도움을 청려 했는데 저 사람도 한 패 같다. 도와준다고 하며 데리고 갈 것 같다. 야기를 듣던 한 명이 반쯤 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손이 덜덜 떨린다.


 너무나도 선명한 그 지점까지와 달리 그 뒤 기억은 흐릿하다.

 아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던 내 뒤를 쫓아오는 수미와 남자, 그들이 갑자기 나를 끌고 갈까 하는 두려움에 온몸에 피가 말라가던 느낌, 제발 큰길이 나오길 빌며 갈색 슬리퍼를 신고 계속 걷던 장면겨우 택시를 잡아 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 택시 뒤에서 울었던 장면만 조각조각 기억난다. 

@pixabay

 사기는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일수록 크게 당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를 잘 아는 그 사람은 내가 혹할 수밖에 없는 거짓말을 딱 믿을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낸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고 했으면 나는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의 성과 취향과 내 이상까지 잘 조합하여 그녀는 나만을 위한 맞춤형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내 손으로 지갑과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그녀에게 건네게 했고 한 달간 그곳에 갇혀 있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 말하게 했다.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도 나는 수미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다

 이후 내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연락해 온 그녀를 보며 이렇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안쓰러웠고 그 방법을 꼭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 그랬다는 게 짠했다. 무엇보다도 사람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딱 끊어낼 수 있단 생각 자체를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그녀와 나의 관계는 서서히 정리됐다. 그녀를 만나 할 말이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요즘 겪는 상황과 고민하는 것들은 그녀의 그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나 역시 방청객 같은 소리는 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도 공감되지 않았다. 

 

 함께 나눌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는 것. 

 그것은 관계가 정리되는 데에 다단계 업체에 끌려갔던 경험보다도 더 강력한 이유가 됐다.


 의도치 않게 많은 물건 비웠듯 그녀를 포함 많은 관계들이 비워졌다합리적인 판단으로 손절하려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여유 시간 자체가 줄었고 기회가 생길 때 꼭 만나고 싶은 사람만을 만났으며 다만 그 수가 적었던 것뿐이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혼자 쌓아두던 비슷한 관심사의 고민 나누고 공감하며 소리 내 웃다가 눈물도 글썽했다 하며 끝없 화가 이어지 사람. 우리가 만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냐 로 아쉬워하는 사람. 만남 후에는 그동안 쌓던 게 뻥 뚫린 것 같으면서 '아 오늘 신났다. 앞으로 또 몇 주 힘을 더 낼 수 있겠다' 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내 여유는 빠듯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니 내 주변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언제 볼까 이야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몹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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