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Aug 16. 2023

그거 못 한다고 사는 데 지장 없다

 자식인가.

 분명 내 팔다리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양다리를 최대한 벌려 서랄 때부터 이미 이가 진다. 비슷비슷한 선에 머문 다른 이들의 머리 높이와 달리 나 혼자 저 위에 있다. 거기에서 팔을 쫙 펴기만 해도 몸은 흔들흔들 거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팔을 다리 안쪽으로 말아 넣으란다. '응? 어떻게 하라고?' 어리바리한 찰나 사람들의 몸은 낮고 둥그렇게 말리고 거울 속 나는 우뚝 서 있다.

 

 요가를 처음 시도했던 십수 년 전에도 이랬지. 이렇게나 일관적일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이변이란 것은 흔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규칙적인 운동을 한 적은 손에 꼽는다.

 지금은 기라도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어떻게든 안 움직여 보려고 를 썼다. 숨쉬기 운동 충분히 하고 있다며 다이어트 용도가 아니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했 참으로 무모한 시절.


 대학교 4학년 때 집 앞 헬스장에서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

 가만히 손잡이만 잡고 서있으면 바닥이 빠르게 흔들리며 근육을 이완시켜 준다는 운동기구와 벨트 마사지, 이 두 개가 제일 좋았다. 둘 다 이용자가 있으면 헬스장에 달린 작은 찜질방에 들어앉아 있다 코치에게 발견되어 어디서 야매로 땀을 빼냐는 구박을 받았다.


 운동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된다던데 도대체 그게 언제인 걸까 했다. 억지로 근력운동을 할 때면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 약이 바짝 오르 내가 왜 힘들게 고생을 사서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화가 났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복근이 생겼다. 어이쿠 이런 놀랄 일이. 방송에서 보던 식스팩과 달리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아챌 수 있는 미미한 것이었지만 명칭은 똑같이 복근이다. 체질적으로 근육이 쉽게 붙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게 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 붙은 근육은 또 쉽게 사라진단다. 그때 나를 스쳐갔던 복근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pixabay

 그 뒤로 여러 이유와 핑계로 요가 한 달과 스트레칭 몇 개월 한 것이 운동의 전부.

 극적으로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이유는 없애고 핑계는 대지 않기로 한다. 한 번의 연장도 힘들 것 같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며 일단 등록부터 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쓸데없는 잡생각과 미리 하는 걱정 말고 무조건 시작하는 거다. 없는 시간을 쥐어짜고 가족의 시간표를 이리저리 짜 맞춰 현재까지 반년 넘게 연장 중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나의 에너지 잔량은 0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아침 기온이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 온도와 같은 영하 18도가 무슨 말이냐며 출근하기 싫다고 난리 난리를 쳤던 그날에도 나는 그 추위를 뚫고 요가를 갔다. 집 안에 들어서마자 의자에 털썩 앉아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 했던 날에도, 오늘은 저녁 사 먹고 일찍 자자고 꼬드기는 나 자신과의 힘겨운 전투를 벌인 날에도 기어이 갔다.


 이런 갸륵한 정성에도 그러나 나의 몸은 아직도 여전히 뻣뻣하기 그지없다.

 다리를 쭉 펴고 발끝을 잡으라는데 아무리 팔을 뻗어봐도 발가락에 닿지 않는다. 앞에 거울을 보니 다들 다리와 상체가 찰싹 붙어 납작하게들 있는데 내 등만 둥그렇게 높다. 유연성을 요하는 자세마다 거울에 비친 사람 중 가장 높은 사람은 늘 나다. 내 팔과 어깨는 나의 체중을 감당하기 버겁고 한쪽 발만 살짝 바닥에서 떼는 그 순간 몸의 균형은 무너진다.  


 '와완 튜우 뜨리~ ' 하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 무릎 뒤가 몹시 찌릿거린다. 힘들게 버티고 이제 일으키려고 하는데 바로 이어 '뜨리 튜우 와완~'. 원망스럽다. 아아아. 앓는 소리가 나온다. '


 몸을 숙였다 세웠다 하라는데 숙이나 세우나 딱히 높이 차이가 나지 않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의 몸은 납작했다 길어졌다 한다. 납작해야 할 때 나 혼자 높이 서 있는데 저 앞에서 나와 비슷한 높이의 사람을 발견한다. 나 혼자 동지의식을 느끼며 안도감이 들었으나 아차, 저분은 박자를 잘 못 맞추어 몸을 세운 거였다.


  이런 순간들이 비일비재하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숙제도 잘해 오는데 성적이 안 오르는 학생을 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럴까.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난감한 그 감정을 아마도 요가 강사는 나를 보며 느낄 테다.

@pixabay

 그날도 그랬다.

 사람 몸으로 저 동작이 가능한 것인가.

 강사는 숙련자니까 그렇다 치자. 어찌하여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있는가.

 

 두 팔로 내 몸을 겨우 겨우 지탱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 팔을 떼고 살짝 디뎌 놓은 무릎까지 들라고 한다. 여기서 무릎을 들 수 있다고? 힘을 주어 보지만 역시나 요가매트에 찰싹 붙어 있는 내 무릎은 미동도 없다. 팔을 떼어 볼까 하지만 이미 내 몸은 흔들리는 상태. 다른 사람들은 곧잘 따라 하고 있다. 아.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저게 될까. 그런데 거기서 더 발전을 한다. 무릎을 떼더니 다리를 뒤로 올리고 팔은 앞으로 쭉 뻗는다. 팔다리가 후들거린 나는 그냥 매트에 엉덩이를 대고 앉고 말았다.


 "안되시는 분은 무리하지 마세요. 이 자세 못한다고 사는 데 지장 없어요."

  강사의 말에 갑자기 눈이 뜨끈해진다. 이놈의 갱년기. 날뛰는 호르몬 때문에 난데없이 감정이 복받친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저 동작 못한다고 사는데 손톱 끝만큼의 지장도 없다. 요가 매트 밖에서, 세상을 살며 내가 그 동작을 할 일이 있겠는가. 아니, 하면 안 된다. 했다가는 당장 유튜브에 올라갈 수도 있다.


 해내고자 기를 쓰고 덤비는 수많은 것들 중 하지 못한다고 사는데 지장을 주는 것이 몇 개나 있을까.

 항상 위만 바라보고 더 높은 곳에 있지 못한 나를 보며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를 들여놨다 또 애를 써 내놓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애초에 목 아프게 위 그만 쳐다보고 앞과 옆을 보며 휘적거리며 즐기면 되는데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잠을 깬 걸까 잠을 깨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걸까 했던 밤,

 이사 후 밤늦게까지 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며 창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보이는 작지만 참으로 단정한 공간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뿌듯함을 기억해 낸다.


 이 평온작은 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마음에 새긴다. 회사 다니고 아이 키우 살림하며 공간을 가꾸스스로를 대견히 여긴다.


 잠깐. 그 와중에 귀찮음을 견뎌 내고 요가도 다니지 않는가.

 와우. 뭘 얼마나 더 잘할라고.



 



 




이전 17화 낮술, 귀한 낮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