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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Sep 01. 2023

같은 옷이 두 벌 있고 계절별 정리는 없는 옷장

어플과 연결해 놓은 우리 집 체중계는 사람별로 구분해 자의 몸무게 추이를 기록한다.

야식의 재미를 깨달은 후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가니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란다. 급격히 증가한 몸무게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규로 인식한 거다.


 의도치 않게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더니 바지가 사방으로 작아졌다. 살이 찌면 바지 길이 짧아지는 거였다. 이 나이에 이렇게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계 몰랐어도 좋을 뻔했는데 말이다. 밑으로 내려가야 할 천들이 옆으로 간다. 아래로 다 내려가도 간당간당했던 길이인데 이렇게 사이좋게 가로세로 나눠 입으니 발목이 휑하니 드러난다. 그뿐인가. 우연히라도 누군가 내 엉덩이를 볼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살이 빠질까 잠시 기대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


 훅 작아진 바지를 비운다.

 좀 불편해도 예쁜, 혹은 예전에는 잘 입었지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옷은 과감하게 비운다. 개수는 적어도 매일 편하고 잘 어울리는 옷만 입는다. 이상한 옷을 입어도 되는 날은 없다.

 스티브잡스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 옷장은 언뜻 보면 다 똑같은 옷들인가 싶은 비슷비슷한 디자인과 검정, 베이지, 흰색의 옷들로 채워져 있다. 어떤 상하의에 받쳐 입어도 무난한 색상의 옷들 중 그날의 날씨에 딱 맞는 재질과 두께의 옷을 골라 입으면 끝이다. 5분의 파장이 그 어떤 시간대보다 큰 아침 출근 준비 시간에 뭘 입고 갈까 고민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특히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다 결국 처음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허둥지둥 뛰쳐나가는 건 진즉 그만뒀다.

https://blog.naver.com/jongro_pr/221293778980

 중요한 것은 내면을 채우는 것일 뿐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는 것을 마음속 저 깊은 곳부터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겨서 그렇다고 하면 보다 가오가 나겠지만 그저 에너지가 부족해 그렇다.


 나의 에너지의 총량은 나이가 들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고 마흔을 기점으로 현저히 작아졌다. 기력은 쇠하는데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으니 한정된 에너지를 몹시도 많은 곳에 나누어 쓰며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외모는 후순위로 밀렸다. 엇을 입을지를 포함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나의 모양에 들일 수 있는 에너지의 할당량이 훅 어들며 화장품의 개수가 줄고 화장하는 시간이 사라졌듯 옷을 골라 입는데 예전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게 되었고 옷을 사고 정리하는 데 이는 노력의 양은 소소해졌다.

@pixabay

 어느 순간 오프라인 쇼핑은 큰 마음먹고 해야 할 과업이 되었고 대부분의 옷은 온라인으로 산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다르니 내 몸에 맞는 사이즈의 브랜드를 발견하면 그다음부터는 고민하기 귀찮으니 그곳의 옷을 주문한다.


 문제는 바지.

 디자인과 사이즈만 확인하고 사면 어지간하면 맞는 상의와 달리 체형에 민감한 하의는 똑같아 보여도 단 몇 cm차이로  걸을 때 발목이 드러나는지 살짝 신발 등을 덮는지갈린다. 심지어 같은 사이즈인데 골반에 걸려 다 올라가지도 않기도 한다. 사진과 달리 막상 입으면  골반 라인이 딱 떨어지거나 벙벙하게 뜨는 차이가 있 허리부터 발목선까지 쭉 뻗어 내려오는지 아니면 다리 모양이 휘어 보이는지가 결정된다. 둘 다 부들거리는데 입자마자 맨 피부가 가려운 니트가 있는 반면 따스하게 착 감기는 것이 있다. 이뿐인가. 앉았다 일어나려면 무릎이 쓸리는 것처럼 불편한 옷이 있는 반면에 안 입은 것처럼 편한 바지도 있다.


 바지 고르기가 내게는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다.

 내게 딱 맞는 바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그런 바지를 찾기 위한 에너지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후로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발견하면 른 색으로 두벌 산다.  벌을 고르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로 두벌을 얻는 합리적인 구매다. 두벌이면 24 절기로 나뉜다는 옷의 계절 중 한 절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


 사계절 바지는 13벌. 신발을 포함해 가진 옷의 개수는 109. 소유한 옷을 100벌에 맞추는 프로젝트도 있었다지만 일부러 줄인 건 아니다. 그저 이전 집의 20%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옷을 넣다 보니 생긴 결과다.

 공간이 부족하다고 압축 백까지 이용해 철 지난 옷을 리빙박스에 보관했다가 계절이 바뀌면 하루 날 잡아 대대적으로 그 안의 옷을 꺼내고 밖의 옷을 다시 넣는 옷장 정리는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집안일이 늘어나는 것은 단호하게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온 힘을 주어 양쪽으로 벌려야 겨우 옷을 꺼낼 수 있을 만큼 빼곡하게 옷이 걸려 폭신해야 할 패딩이 납작해 있는 것은 싫다. 한 올 한 올 잔 털이 살아 있어야 할 코트가 숨을 쉬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다림질이 귀찮아 잘 털어 말린 주름이 잘 가는 여름 셔츠가 구겨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옷의 개수를 줄여 사계절 옷을 다 꺼내 놓고 입고, 계절이 바뀐다고 따로 옷 정리가 필요 없는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사용한다.

  계절별 옷 정리 없이 그 계절에 맞는 옷을 바로바로 찾아 입을 수 있는 팁. 옷을 거는 방법에 있다.

 오늘 입은 , 세탁한 옷을 걸 때 제일 오른쪽에 건다. 내일도 역시 제일 오른쪽에 건다. 그게 끝다.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계절이 지난 옷들은 점점 왼쪽으로, 지금 입는 옷들은 차곡차곡 오른쪽으로 쌓인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는 가장 왼쪽에서 옷을 꺼내 입고 오른쪽에 걸게 된다. 날 잡아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계절별로 옷이 구분되고 철에 맞는 입을 옷을 찾기 위해 옷장 전체를 헤집을 필요 없이 양쪽 끝에서만 옷을 골라 입으면 된다.

 사진을 찍었던 11월 당시 한창 입는 약간 두꺼운 바지가 가장 오른쪽에, 그 왼쪽에 늦여과 초가을에 입었던 옷이 있으며 여름 바지는 왼쪽으로 많이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 아직 입지 않은 한겨울 바지가 있다. 더 추워지면 이제 가장 왼쪽은 한여름 바지가 된다.


 만약 이 루틴 두세 번 반복된 와중에 늘 왼쪽 구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옷이 있다면, 그 옷은 계속해서 입지 않았다는 거다. 손이 안 가는 옷은 다 이유가 있다. '언제 안 입는 옷 한번 싹 정리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의 짐을 가지고 무엇을 비울까 시간 내 발굴하지 말고 그 옷들을 비우면 된다.


 개수가 많은 상의와 아우터도 같은 방식으로 돌아간다. 옷걸이에 걸어두지 않고 서랍에 넣어 입는 옷들도 똑같이 정해진 한쪽으로만 넣으면 된다.


 옷장에 있던 옷들을 싹 다 꺼내서 다시 넣는 선행작업은 필요 없다. 시작은 옷 정리였으나 패션쇼로 빠지기 쉽다. 비울 옷을 솎아낸다고 시작했으나 이 옷과 함께 입을 다른 옷을 사야겠다는 결론을 내고 만다. 어지간한 의지로는 어려운 일이다. 바로 오늘부터,  지금 옷장 그 상태에서부터 하나씩 상의와 하의만 구분하며 오른쪽으로 걸기 시작하면 된다.


 늘 한쪽 끝으로 옷을 수납하는 한 가지 방법만으로도 '갑자기 추워졌는데 언제 옷 뒤집지?' 하는 고민도, 겨우 쉴 수 있는 주말 하루 반납하고 먼지 마셔 가며 옷 정리를 하는 공정도 필요 없다.


계절별 옷정리가 귀찮아 옷의 개수는 줄이면서 똑같은 바지는 두벌씩 산다. 내게 딱 맞는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서 몸과 마음이 편한 계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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