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약한 건지 언제나 증상은 목부터 시작한다. 이번에도 목이 갈라질 것 같다 하자마자 곧바로 침을 삼킬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코는 꽉 막히고 귀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꾸욱 찌르고 있는 듯한 고통이 시작됐다.
코로나 이후에는 이런 증상만 나타나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전형적인 코로나 증상이에요.' 라며 뇌까지 쑤셔지는 듯한 고통을 참고 검사를 해도 매번 음성이 나오면 화가 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일 수 있고 독감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한숨부터 나온다. 이러나저러나 아픈 건 똑같고 그저 단 1분 1초라도 어서 집에 가서 누워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처방받은 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가니 전에 없이 약 욕심까지 부리고 있다. 목에 뿌리는 약, 코에 뿌리는 약, 사탕처럼 입에 물고 있으면 목 통증이 가라앉는다는 약, 으슬으슬한 몸살기를 달래준다는 쌍화탕 등을 나도 모르게 주섬 주섬 챙기고 있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집 안에서 약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전염병이 아니냐는 직원 말에 바짝 말라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을 살짝 가로로 펴 보기는 했지만 사실 이게 심한 감기인지,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일본 전염병인지 알게 뭐냐 했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밥을 차릴 기운은 없고 치울 기력은 더욱 없으니 밖에서 간단하게 사 먹고 집에 가서 약 먹고 쉬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음식점에 걸어가 주문하고 먹는 것 역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냉동실에 들어있던 밥을 대충 데워 입에 욱여넣고 약을 먹고 기절했다.
자다 일어나 머리맡을 보니 계속해서 코를 풀고 그대로 올려 둔 휴지뭉치들, 목 통증에 깨면 무의식적으로 뿌리는 약, 코막힘 개선을 위한 약, 바짝 마른 입을 위한 물컵, 무음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주르르 놓여있다. 이 유쾌하지 못한 조합은 장장 며칠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통 비운 티슈 각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배달 용기 치우고 헹구고 분리수거하는 것이 나가는 것보다 더 귀찮다며 배달시킬 거면 차라리 나가서 먹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무색하게 나갈 힘이 없다며 죽을 시작으로 몇 차례나 배달을 시켜 먹으며 나와 가족에게 일용한 양식을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고마운 배달 서비스라며 칭송을 해 댔다. 무언가 밖에 나와 있으면 안 그래도 작은 집이 더 작아 보인다며 가능하면 안으로 수납하라 해놓고는 내 손을 들었을 때 가능하면 빠르게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뭐라도 간단하게 먹기 위해 후숙 중이던 망고 옆으로 고구마가 놓였다. 그 와중에 손가락만 움직여 가장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있는 두유류를 가족 취향에 맞게 골고루 주문해 놓고 수납장 안에 차곡차곡 쌓을 힘이 없다며 냉장고 문을 열면 살짝 닿을 것 같은 곳에 줄줄이 늘어놓았다.
수건만 한 장 떨어져 있어도 훅 좁아 보이는 작은 집은 정리와 청소를 멈추자 순식간에 물건으로 차올랐다. 방 안의 이불은 며칠째 개지 못한 채 방바닥의 대부분을 잠식했고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춥다며 소파 위에도 항상 담요가 놓여 있었으며 싱크대 위에는 이미 차버린 싱크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컵들이 한 개 두 개 늘어만 갔다. 이틀 만에 빨래를 해 아침에 돌린 건조기 안의 옷과 수건은 저녁이 되어도 꾸깃꾸깃 들어있었고 늘 가지런한 수건들이 놓여있던 욕실 안 수건 보관함에는 수건이 없었다. 언제나 네 개씩 차곡차곡 들어있던 화장지 역시 텅 비어있어 급박한 순간에 휴지를 챙겨가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는 단박에 엄마가 아프니까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구나 했고 이부자리와 소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늘낙지처럼 누워 집안이 물건으로 덮이는 것을 보고 있다가도 다시 끼루룩 잠이 들던 나는 '청소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던 날 내가 그래도 회복했음을 깨달았다.
미니멀 라이프는 고사하고 정리정돈, 아니 청소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 역시 내 몸이 그걸 해낼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건강상태가 유지될 때만 가능한 거다. 내가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힘든데 정리정돈이 대수인가. 여기서 미니멀 라이프 어쩌고 하면 '뭣이 중헌데?!' 소리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동안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 사진을 올려대며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가 건강해서 가능했었던 일이었다. 집이 어질러지기 전에 파닥파닥 정리하며 깔끔한 집안을 유지한 것 역시 '파닥파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건강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진다.
미니멀 라이프는 내게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간결하게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 꼭 필요한 것의 기준은 그 라이프를 꾸리는 개개인이 정한다. 사람에 따라 다른 거고 또 상황에 따라 다르며 시시각각 변할 수도 있는 거다. 어제까지는 이게 필요 없었지만 갑자기 오늘 당장 필요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다. 주야장천 일회용 빨대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며 사용하지 말라고 외치다가도 오늘 누운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어 빨대를 꽂아 겨우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수도 있는 게 인생, 곧 라이프다. 미니멀이 라이프를 앞설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