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금액에 0 하나를 더 붙였다
작은 집에서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을 먹고 나름 슬기로운 경제생활을 하겠다며 사용하는 모바일 지역상품권으로 결제를 하면서 0 하나를 더 붙였다. 아차 하고 '뒤로' 버튼을 눌렀는데 이미 승인이 됐다. 이건 신용카드와 달리 사장님이 앱에서 취소해야 한다는데 방금 나가셨단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앱에서 에러가 난다. 그러고 일주일째인데 아직 완전히 해결은 안 됐다. 손가락 한번 잘못 까딱했는데 여파가 오래간다. 손가락이 밉다.
일전에는 7시로 미용실에 모바일 예약을 하고 도착해서 예약 화면을 보여주는데, 얼라, 예약이 취소되어있다. 그것도 어제 날짜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며칠 전 예약을 하며 날짜를 수정한다 해놓고 취소까지만 하고 다시 예약을 안 했다. 그래 놓고 오늘 7시에 딱 맞춰 왔다. 자신과의 약속이냐.
지난달엔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기 구이를 파는 트럭에서 통닭을 사고 계좌 이체하고 왔는데, 맥주까지 마시며 이제 더 본격적으로 쉴까 하고 핸드폰을 들었더니 은행 오류 화면이다. 사장님한테 예금주 확인도 했는데 그러고 나서 이체를 안 눌렀나 보다.
이 정도면 거의 치매 간증의 장이다.
딱 부러지고 빠릿빠릿했던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요새 이렇게 실수를 한다. 딸에게도 참으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직언을 하시는 친정 엄마 표현으로는 총기를 잃었단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다른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이러나. 내 총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총기가 언제쯤 사라진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수를 많이 하지 않았던 건 총기 덕이 아니고 그만큼 늘 긴장을 하고 있어서였다. 실수를 한다는 자체도 싫지만,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 화가 나서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사소한 실수에도 책망했다. 다른 사람 실수엔 괜찮다 하면서 유독 스스로에게는 관대하지 않았다. 실수가 잦은 요즘, 나는 '작은 집에서 나의 마음이 더 편해졌구나' 하며 오히려 안심을 한다.
실수 좀 해 보니, 한 번 실수한다고 엄청난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다. 귀찮긴 해도 어지간하면 다 수습이 된다. 무전취식할 뻔한 위기도 운 좋게 그날 발견했다. 일주일 뒤 다시 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릴 뻔했다. 코로나 시국의 겨울이라 롱 패딩에 마스크만 끼고 가니 못 견딜 정도로 귀찮지도 않았다. 사장님은 이렇게 다시 오신 분은 없다며 고맙다고까지 해주신다. 자신과의 약속으로 간 미용실에서는 마침 손님이 없다며 마음에 쏙 들게 머리카락을 잘라주셨다. 0 하나 더 붙인 음식점에서는 본인 계좌로 돈을 받았다며 밥값 빼고 내 계좌로 보내주신다 하니, 오랜만에 월급 말고 '입금' 내역을 볼 수 있게 됐다. 순기능이다.
솔직히, 아직도 실수하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실수 안 하겠다고 피곤하게 나를 닦달하는 건 더 나쁘다.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을 0 하나 더 눌렀다고 미워하면 안 된다. 하루에 셀 수 없게, 동시에도 몇 개씩 일을 척척 해내고 있는데, 실수 몇 번 한다고 나를 미워하면 안 된다. 관대하게 넘어가면 된다. 별 일 아니다.
편하게 살자.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의 신년 계획은 편하게 살자다. 나는 계속 실수를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년 계획을 잘 지키고 있는 거다. 대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