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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24. 2022

아니 근데, 잠은 어디서 자?

작은 집으로 이사 가도 큰 일 안 난다. 미니멀리스트도 안된다.

 집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나와 있는 게 없어?', '어디다가 다 집어넣은 거야?', '너무 깨끗하다, 생각보다 너무 넓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같다.

"아니 근데, 잠은 어디서 자?"


 방하나에 거실 하나. 그리고 거실과 연결된 부엌.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가 있는 옛 베란다 공간, 작은 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방에는 붙박이 장과 책장, 책상이 있고, 거실에 텔레비전과 오디오, CD장과 다용도의 테이블이 있다. 그게 끝이다. 집집마다 있는 '침실'이 우리 집에는 없다.


 거실 붙박이장 아래 세 칸에 매트리스와 이불이 들어있다. 밤마다 깔고, 아침마다 갠다. 물론 귀찮다. 허리가 배기니 라텍스 매트리스를 쓴다. 무겁다. 아침에  넣을 때마다 버리고 싶다. 그런데 밤에 누울 때는 '역시 폭신하다' 이런다. 원숭이인가. 그냥 깔아놓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매트리스가 깔려 있으면 붙박이장 문이 안 열린다. 이게 작은 집이다.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누워 있기를 10년 넘게 했던 나인데, 알람 음성을 '일어나서 이불 개야 회사 간다'로 바꿔 놓았더니 한 방에 바로 일어난다. 이 정도면 미라클 모닝이다.


 이사 업체가 떠난 후 바닥에는 물건이 가득 담겨 있는 수납 상자들이 놓여있다. 수납장 구석구석으로 겨우 다 집어넣으니 밖으로 나와있는 건 없지만, 수납공간은 꽉 찼다. 여분의 물건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제 진짜 미니멀 라이프 해야겠는데?' 하는 혼잣말이 나온다.


 물론 이전에도 알고야 있었다. '1+1이라고, 할인한다고 미리 사서 쟁여두지 말 것, 필요할 때 바로 살 수 있으니 재고를 우리 집에 보관하지 말 것. 그런데 그렇게 필요할 때마다 산다는 게 보통 부지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한번 나가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아이 데리고 나가면 참새 방앗간마냥 문방구와 분식집까지 들르니 최소 한 시간이다. 그래서 거의 온라인을 이용하는데 미니멀리스트처럼 하려니 주문을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한다. 다 쓰고 사려니 지금 주문하면 모레 배송된단다. 저번에 50% 할인하는 걸 지나쳤거늘, 똑 떨어졌는데 할인 안 한다. 초연할 수 없다. 6개 들이 두루마리 휴지를 사니까 매번 휴지 있나 신경을 쓰고 있다. 언제 다 쓸지 계산하는 에너지를 아끼고 집에 재고를 두는 걸 택한다. 어느 순간 예전과 같은 패턴으로 장을 보게 된다.


 신기한 건  꽉꽉 채워서 넣었는데 또 넣을 공간이 생긴다는 거다. 다 써서 나가는 것도 있고 버리는 것도 있다. 신발장 다섯 칸을 채웠던 마스크는 어느 순간 두 칸만 남아있다. 대용량으로 쓰던 것들을 작은 걸로 사니 공간이 생긴다. 다 비우고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왔다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버리는 것도 있다. 소파 무빙 테이블은 도가 비슷한 사이드 테이블 하나로 충분해 언니 집으로 간다. 거실 수납장 제일 위칸을 채웠던 큰 여행용 캐리어는 자동차 트렁크 정리함으로 사용한다. 큰 게 빠지니 엄청난 공간이 확보된다. 건 하나 빠진 자리도 작은 집에서는 크다.


 '위기다' 싶을 때도 있다. 책을 물려받기로 했는데 책장에 자리는 없다. 아이가 안 보는데 어쩐지 나는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온 전집. 역시나 와서도 안 본다. 전집 권수를 책 가지고 올 날까지로 나누니 7. 하루에 7권씩 같이 읽고 바로바로 버린 후 새책을 꽂는다. 자리만 차지하고 안 봤을 것을 다 보게 된다. 위기 극복.


 1cm까지 다 재서 배치를 했는데 추가한 것도 있다. 부엌 상부장에 아이 간식을 넣어두니 사다리를 대고 올라간다. 전자레인지도 안 사려했는데, 유일하게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게 전자레인지 팝콘이니 결국 들인다. 전자레인지 올려 두고 간식 창고로 쓸 수납장을 구입한다. 창문을 가구로 가리면 절대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부엌이 통일성 있어 보인다. 자기 간식 창고라중하게 정리한다.

창문을 가린다고 갑자기 집이 엄청 좁아 보인다거나  암흑 천지로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몇 개 없는 가구의  위치도 가끔씩 바꿔준다. 사이드 테이블은 작아서 자주 옮겨 다니는데, 마침 며칠 전 화분이 하나 생겨서 지금은 창가에 있다. 우리 집의 봄맞이 인테리어다.


 어느 순간 보니 나의 생활은 전과 비슷하다. 몇 달 만에 마치 여기서 몇 년 동안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하다. 당연히 달라진 건 있다. 하지만 그건 '이사를 와서'이지,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와서는 아니다. '예전 아파트는 매일 분리수거가 됐는데 여기는 요일이 정해져 있어서 아쉽다' 이런 거지, '예전 집은 커서 좋았는데 지금 집은 작아서 불편하다'는 아니다. 이전 집에서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집이 커서가 아닌,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였듯, 지금 작은 집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또 행복하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한 공간에서 여러 일을 하니 수시로  정리해야 한다. 가전들 크기가 작으니 한 번 돌릴 것을 두 번 돌려야 한다. 하지만 집이 작으니 확실히 투입되는 에너지의 총량이 작다. 몇 년 전 하루에 만보를 꼭 채우겠다며 잘 때만 빼고 워치를 차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집안에서 이렇게 많이 걷는구나 하며 놀랐다. 주로 거실에서 생활면서 물건 가지러, 정리하러 이방 저 방 돌아다녔다. 걸레질 한번 다 하려 땀이 났다. 매일 치워도 주말마다 화장실 두 개와 베란다를 치워야 했다. 하지만 작은 집에서는 자주자주 치우긴 해도 금방 끝난다. 청소기 밀고 갈 곳이 별로 없다. 워낙 작은 화장실은 샤워하면서 대충 치우고 나오면 따로 치울 없다. 예전엔 다 치우고 나면 씻고 잘 시간이었는데, 작은 집에 와서는 약간씩 여유가 생긴다. 급기야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지 않았는가!


 여전히 작은 집을 예찬하거나 권하지는 못하겠다. 아침마다 이불 개기 귀찮다. 그렇다고 '작은 집은 절대 안 돼요!'라고 말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작은 집에서도 편안하고, 흡족하다. 여기서도 내가 비우고 싶은 물건은 비우고, 나에게 꼭 필요하다 싶으면 가진다. 마음이 쓰이는 날에는 공간을 이리저리 바꿔도 보고, 내가 가진 에너지 안에서 나의 마음 편한 만큼만 미니멀하게 살고 있다. 작은 집에 온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미니멀리스트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 꼭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심신이 편하게 지내면 된다


생각해보니 30개들이 두루마리 휴지 1+1까지는 안 되겠다. 이 정도는 몹시 참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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