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Mar 08. 2022

재능기부-'신박한 정리' 수준으로 자매님 아파트 뒤집기

2박 3일간의 자발적 감금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언가 싶은 자매님 정리정돈이 어렵다. 청소도 했고 지저분한  아닌데 무언가 어수선하다. 자매님 집에 가면 말로는 깨끗하다고 하면서 내 몸은 쉬지 않고 나와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런 자매님의 집 상태를 보고 가까운 사람이 독설을 날렸단다. 나는 어릴 때 “누가 우리 언니 울렸어?”하며 뛰쳐나처럼 욱해서 자매님의 집을 완전히 뒤집기로 했다. 재능기부다. 마침 연휴니 토요일  불사르고 이틀 쉬면 된다. 자매님에게 미리 현관부터 방, 베란다, 화장실, 다용도실, 장롱, 붙박이장 안 모습까지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고 며칠간 사진을 매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가구 배치를 한다. 종량제 봉투 100리터 2개, 50리터 4개 사놓으라는 문자에 자매님은 ‘이 정도까지 버릴 건 없지만 쓰지 않은 건 환불이 된다네. 일단 사놓을게' 했다.


사진은 실제보다 더 지저분 해 보인다. 수납장을 열어놓아 그렇지 자매님 집이 유난히 지저분하거나 청소가 안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집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큰 애 방에는 큰 애 물건만, 작은 애 방에는 작은 애 물건만, 안방에는 부부 물건만, 거실엔 공용 물건, 부엌은 식사에 관련된 것만. 그리고 쉽게 들리지만 참 어려운 그것, '비슷한 용도의 물건은 한 곳에'. 그러려면 온 집안 물건을 다 꺼내서 다시 자리를 정해줘야 한다.  


 그날이 왔다. 최우선 작업은 거실과 안방에 있는 책장을 아이들 방에 하나씩 옮겨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며 하나씩 늘어난 책장은 거실 전면 책장과 큰 책장으로 부족해 결국 안방과 부엌까지 놓였다. 안방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아이들은 방에서 공부하다 책을 찾으러 부엌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장에 꽂힌 책을 다 빼기 시작다. 쉴 새 없이 '버려, 필요 없어. 버려'를 반복다. 녹음해 놓고 틀어도 눈치 못 챌 것 같다. 애들 책은 각자 방 책장에만, 거실 책장엔 같이 보는 책과 어른들 책을 두는 걸로 정하고, 그 세 개에 안 들어가는 건 무조건 버리기로 한다. 위로 쌓는 거, 없다. 책더미 속에서 버릴 책을 추리고 있는 부부에게 꽂을 것을 추리라 다. 아무리 말해도 바닥에서 다시 주워오더니 아이들 책 꽂을 자리가 없자 과감하게 버리기 시작다. ‘청소력’만 두 권이 나왔다.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네. 두 권 다 버린다. 이것이 진정한 학행 일치.    


 방이 작아서 책장이 들어가면 답답해 보일까 했던 우려와는 달리 침대와 책상 자리를 바꾸고 벽면에 책장을 붙이자 방이 짜임새 있어 보인다. 큰 책장이 빠져나간 거실과 안방, 생뚱맞게 끼어 있던 책장이 빠진 부엌은, 바닥이 발 디딜 틈이 없는 지경인데도 확연히 훤해졌다. 그런데, 밖은 어두워졌다. 제본 책들 스프링을 빼느라 시간이 너무 걸렸다. 아 이런. 책은 거의 했으니, 나머지는 금방 하겠지.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책장을 넣고 오히려 짜임새가 있어진 아이들의 방

 발적으로 매님 집에서 이튿날을 맞았다. 구석구석 수납공간이 많아 좋다 했는데 거기서 물건들이 쏟아져 나다. 이사 온 날 넣고 처음 꺼내는 것들부터, 쓰려고 찾으면 안 보여서 매번 새 걸 뜯은 쓰다만 옷 먼지 제거 롤 네 개,  물티슈는 여섯 개가 나왔다.


 최대 난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추억이 담긴 아이들 물건이다. 거기에 사진이라도 박혀있으면, 나도 어다. 하지만 추억을 보관하는 것보다는, 지금 아이들에게 깨끗하 정리된 공간을 선물해주는 걸 택다. 심혈을 기울여 몇 만 추다. 그 어려운 작업을 마치 이제 나머지 물건들은 고민할 거리가 되지 않다. 버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나오는 족족 종량제 봉투와 분리수거장으로 직행다. 50리터 봉투를 더 사 왔다. 봉투가 채워지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만큼 분리수거장과 집을 왕복한 끝에 나가야 할 물건은 거의 다 나갔다. 책장이 빠진 자리에 식탁을 붙이고, 잡다한 것들이 놓여있던 나무 수납장은 고급 장식 본연의 모습을 찾다. 가구마다 덮여있던 물건들을 걷어내니 자매님 취향의 클래식한 가구들의 진가가 보인다.

아이들 방에 딸린 베란다도 모두 정리한다. 거실 수납장은 종류별로 모아 분류한다. 현관 앞을 비워 물건을 올려놓을 기회를 차단한다

 체력은 둘 다 완전히 바닥났다. 하지만 집은 너무나 크게 변해 있다. 우리가 손을 댄 곳들엔 빈 공간이 생겼고 표면이 보이며 정리가 됐다. 바닥에 아직 쓰레기들이 쌓여있는데도 이미 집은 더 커져있다. 정말 거의 다 했다. 이왕 시작한 거 부엌까지 하면 진짜 완벽한 집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저녁이다. '부엌을 손대면 오늘도 집에 못 가는데' 하면서 상부장을 열었다.


 부엌은 마법의 공간이었다. 싱크대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 이사 와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그릇, 물병, 플라스틱 용기들이 저 구석에서 나다. 분리수거장은 더 안 가도 될 줄 알았는데 또 간다. 그곳에 쌓인 물건 3분의 1 이상이 자매님 집에서 나다. 주방 정리를 마치니 갈색이 된 스텐 냄비들이 거슬린다. 자고로 스텐은 반짝반짝 윤이 나야 맛이지. 물 끓여 과탄산 부어서 스탠들 떼를 벗겨내고선 냄비에서 광난다고 둘이 짝짝거리며 좋아한다. 새벽 한 시 반이다.     


 3일째 아침, 청소 마무리하고 쓸고 밀고, 닦고 하니 자매님 집이 이렇게 넓었나 싶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바닥에 들어온 햇볕 위잠깐 누웠는데 둘 다 허리가 잘 안 펴진다. 내 인생에서 이 정도 강도의 신체 노동은 처음이다. 정리 업체에서도 수명이 수일간 작업해야 할 양이었을 거다. 

책장을 비우고, 피아노 커버 등 겉으로 나와 있는 모든 것을 치우니 비슷한 색으로 통일한 집 가구들이 빛난다



책장의 책은 높이를 맞춰 꽂는다. 집 안에 한 군데, 빈 벽을 만들어 둔다. 부엌에서 책장을 빼내니, 훨씬 넓다

 그렇게 2박 3일 만에 자매님 집에서 나왔다. 노동 후 성과가 이렇게 혁혁한 적이 또 있었을까. 자매님과 둘이 구부정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뿌듯하고 기쁜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서 우리는 아무리 씻어도 까매진 손으로 눈가를 계속 질렀다.  


 그리고 자매님은 나와 같은 버릇을 갖게 되었다. 밤에 집안을 배회하며 이곳저곳 열어 보면서 뭐 버릴게 더 없나 찾는 밤 버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