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Jun 10. 2022

고스톱 치다 컴퓨터 사러 나간 이유

내 성격이 이리 급했나

 외국인이나 교포가 우리나라에서 깜짝 놀라는 것 중 하나 택배가 도착하는 속도다. 오늘 시키면 내일 오고, 심지어 아침에 주문하면 오늘 밤에 온다. 미국 쇼핑몰의 물건을 현지에서 주문해서 받는 시간보다 우리나라에서 주문해서 받는 시간이 더 짧단다. 리나라 항구에 물류창고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단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낀 세대인 나는 온라인 쇼핑 역시 그 시작과 과도기를 경험했다. 지금은 장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보지만 처음 온라인 쇼핑이 나왔을 때 물건을 보지 않고 택배로 받는다 것이 미덥지가 않아 직접 가서 보고 샀고 가의 가전제품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오프라인 쇼핑을 고집했다.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었을 때도 유독 온라인 쇼핑을 하지 못하던 지인이 있다.

 이유는 한 가지.

 주문하고 물건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참을 수가 없어서다.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그 순간 당장 물건을 사러 가야 하고, 직접 물건을 손에  들고 와야 한단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물건이 도착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란 점이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오고, 실제  물건을 사러 갈 수 있는 것도 내일이라 해도, 영업시간 맞춰 아침 일찍 다른 지역까지 나가 사 들고 온다.

 신기해하는 우리들에게 그 친구는 "내가 원래 성격이 급해. 근데 우리 아부지는 더 심해" 한다.


 어느 날 집에 가니 아침에만 해도 책상에 놓여 있던 조립 피씨가 S사의 신제품 데스크톱으로 바뀌어 있더란다. 갑자기 어찌 된 일이냐 했더니 아버지 하시는 말씀.

"고스톱을 치는데 패가 늦게 나가잖. 얼른 가서 사 왔다" 

이미지출처 pixabay

  일을 미루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스스로 성격이 아주 급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는데 지난주, 두 달 며칠간 글 써놓고 성과가 없다며 우울해했다. 고스톱 치다가 패가 늦게 나간다고 컴퓨터 사러 나가신 친구 아버님은 양반이셨다. 브런치가 밉다며 징징 글을 올린 날, 아이가 왜 아까 계속 한숨 쉬었냐고 묻는다.


나: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

아이: 얼마나 됐지?

나: 세 달 안됐지?

아이: 5년이 돼야 슬럼프가 오는 거 아니야?

나: 왜?

아이: 원래 5년이 돼야 슬럼프가 오는 거야.


 알고 있는 운동선수가 5년 만에 슬럼프가 왔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후에 다시 와서 이야기한다.


아이: 엄마가 지금 슬럼프라고 하는 거는 1학년 입학하고 세 달 있다가 '난 공부를 못하는 거 같아'랑 똑같은 거야.


 이런 명쾌하고 현명한 비유를 찾아내다니. 내가 천재를 낳은 것인가!


: 와. 그거 진짜 명언인데?!

아이: 잉. 나 죽기 싫은데?

나: 그건 유언이고. 하하.


그래, 너무 천재는 부담스러워. 지금이 딱 좋다.

딱 좋아.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yanamsaying/222050221363

매거진의 이전글 나 아는 사람 그 아파트 살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