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 쓰리?"-정리를 못하는 사람은 티가 나는 이유
힘든 포인트까지 다 같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
가족끼리 첫 해외여행을 갔다. '에메랄드 빛 바다'라는 것을 처음 실감한 태국 파타야의 섬에 바나나보트 체험이 있다. 우리도 한번 타보자며 보트 운전사의 설명을 듣는데 그분의 언어 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기본은 영어다. 단어 단어만 연결해서 쓰고 be동사 이런 건 없다. 중간중간 한국어도 있다. 두 개 언어의 연결이 아주 매끄럽고, 정말 잘 알아듣겠다. 신기하다. '마지막에 한번 보트를 세게 꺾을 텐데 물에 빠져도 놀라지 말라'는 내용까지 완벽하게 전달이 된다.
맨 앞에 운전석이 있고, 네 명이 뒤에 앉았다. 나는 제일 뒷자리다. 보트를 타고 출발하자마자 생각보다 엄청 빠른 속도에 바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바람에 몸이 뒤로 밀리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한데 또 신난다. 빠르게 달리던 보트가 휙 커브를 도는데, 손잡이를 놓치고 날아가 물속으로 훅 들어갔다가 올라왔다. 내가 탔던 보트는 보이지도 않고 주변에 다른 보트도 없다. 일부러 사람들을 빠트리는 그 지점이 아니라 그냥 커브를 돈 건데 거기서 나 혼자 떨어진 거다. 지나가던 다른 배에 겨우 구조(?)되어 해변으로 오니 나를 보고 안심을 한 가족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확 커브를 꺾어 사람들을 떨어뜨린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고는 네 명이 있어야 하는데 세명만 있으니까 당황해서는 "와이 쓰리?"이랬다는 거다.
어느 날 회사에서 '와이 쓰리'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듣고 있던 과장이 '근데 넌 왜 거기서 떨어진 건데?'라고 묻는다. 오호라. 신기한 관점이다.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나는 왜 거기서 떨어졌는가에 대해 처음 고민해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악력은 좋은데 팔에 근력이 없다. 그래서 그랬나? 그러다 갑자기 내가 왜 원인을 찾고 있나 싶은 거다. 남들 떨어질 때 같이 안 떨어지고 혼자 다른 데서 떨어진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 커브가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지막 커브처럼 힘들었던 포인트였던거다. 힘든 포인트까지 다 같을 수는 없다. 남들 보기 다 쉬워도 내가 어려우면, 나에게는 그게 어려운 거다. '너는 여기서 떨어져야 해, 그 앞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거야' 하거나 남들 떨어지는 지점이 아닌 곳에서 떨어졌다고 왜 거기서 떨어진 거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거다.( 혹시 누가 그렇게 물어도 고민하면 안 된다. 그 사람과 놀지 말자.)
살림도 사람마다 분야가 다르다. 딱히 닮았다고 하긴 어려운데 어딘가 묘하게 비슷해서 약간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면 서로 '이게 나인가?' 하는 자매님은 요리에 능하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던 재료들을 꺼내서 아주 짧은 시간에 네다섯 개의 메뉴(나로서는 어쩌다 한 번 큰 마음먹고 한 가지씩 할 수 있는)를 계량스푼 한 번 안 쓰고 조미료통 째로 탈탈 뿌려가며 만드는데 대단히 맛있다. 조카들이 부럽다. 반면 나의 요리 실력은, 참으로 우직하게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내가 과일이라도 깎기 시작하면 반응은 한결같다. '줘봐, 내가 할게.'
그런 자매님에게는 정리가 어렵다. 강의도 듣고 책도 보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된단다. 내 주변을 보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정리가 조금 빠지고, 정리를 잘한다 싶으면 요리가 좀 쳐진다. 신기한 건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난 요리를 못해서 그냥 사 먹는 게 편해' 이러고 말고, 요리를 잘해야겠다며 엄청 노력한다거나 '요리 못하는 내가 밉다' 이러지 않는다. 그런데 정리를 못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왜 정리가 안되냐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리를 해본다고 수납 바구니를 잔뜩 사봤다가, 책에서 배운 대로 물건을 싹 다 꺼냈다가 끝을 못 내고 그대로 돌돌 말아 집어넣는 등 계속 노력한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지인 집에 가면 다 차리기도 전에 애들보다 먼저 젓가락 들고 앉아서 좋-다고 기다리는데,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아 우리 집도 이래야 되는데, 아 우리 집은 언제 치우나, 이러면서 걱정을 시작한다.
하필 '정리'라는 건 가시적으로 확 드러난다는 게 문제다. 칼질만 시작 안 하면 숨길 수 있는 나의 요리 실력과 달리 '정리'는 그 사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있다. 남이면 집에 안 부르면 되는데, 가족들에게는 그것도 안된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리면 15분도 채 안돼서 다 먹는데, 요리하느라 어질러진 싱크대는 치울 때까지 보인다. 정리는 대체도 힘들다. 매식은 배달까지 되는데,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 거는 계속 눈에 밟힌 채 결국은 나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있다. '정리도 외주를 주면 되지-'라고 할 수 있지만 가끔 외식하는 것과 사람 이모님을 쓰는 것이 같은가? 쉽지 않다. 정리 업체 비용은 더더욱 만만치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 자신이, 혹은 다른 누군가가 정리가 어렵거나 잘 못한다고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거다.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하는가? 그냥 어려운 포인트가 다른 거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다면 괜찮지만, 정리를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너는 왜 정리가 안 되냐', '집이 왜 이모양이냐' 이렇게 툭툭 던지는 말은 상처가 된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스스로 '나는 왜 이렇게 정리가 안될까'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눈앞에 나와있는 거 싹 걷어서 장롱 안에 몰아넣고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문 닫아 놓자.
평수를 줄여 이사를 가게 되어 걱정만 하고 있다거나, 작은 집에서 조금만 더 넓게 살고 싶은데 그게 안되네-한다면, 그건 당연한 거다. 나처럼 잘하는 분야가 정리인 사람에게도 그건 힘들다. 마음 잡고 요리 한번 해보겠다고 레시피를 열었는데 소금 '약간', 설탕 '적당량' 이러면 '아니 도대체 그게 얼만큼이냐고! 그걸 알면 내가 뭐하러 레시피를 찾아보냐고!'하고 내가 욱하듯, 하긴 해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답답할 때, 이사를 앞두고 내가 했던 걱정과, 정리와 이사 과정에서 하나씩 체득했던 방법들이, 정확한 량이 나온 레시피처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뿐이다.
정리가 힘든 사람이 있다. 버리기가 유독 어려운 사람이 있다. 전부 다 미니멀 라이프 할 필요도 없고, 작은 집으로 이사 간다고 애장하는 물건까지 다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 문장마다 '나의 경우에는'을 붙여 쓰지 않고 생략한 것뿐이다. 내가 편한, 내게 맞는 것만 취하면 되고, 아니면 그냥 남의 집 사진만 구경해도 되는 거다.
이 글을 보면서 '나는 정리도 안되고, 요리도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는 것 자체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요리에 능한 자매님 집을 2박 3일간 뒤집은 이야기는 책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으로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