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정리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옷 정리를 한다더니 어느 순간 이것저것 입어보며 코디를 하고 있고, 책을 버린다면서엄청난 집중력으로 독서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억의 물건비우기는 최대 난코스다. 물건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정리정돈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도 추억의 물건은 가장 마지막으로 비우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게 어려운 건 맞나 보다.
하지만 작은 집은 지금 필요한 물건을 넣기도 부족하다. 추억의 물건도망설임 없이 비워낸다. 초등학교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 왔던 일기장과, 다이어리, 졸업앨범 등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바로 버려졌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나오기도 훨씬 전부터 단계적으로 버렸던 편지들도 모두 비운다.가장 처음 버렸던 건 고등학교 때 '쓰잘데기 없이' 많이도 썼던 펜팔과의 편지들이었다. '펜팔이 뭐예요?'라고 묻는 젊은이이고 싶지만, 나는 펜팔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학교에 해외 펜팔이 매우 부흥했는데, 그 책임이 내게 약간 있다. 내 남동생 반 친구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줬는데 그 소문이 확 퍼진 거다.일본 학생과 펜팔을 하던 남동생 친구는 '김'을 좋아한다는 일본 친구의 말에 '양반김'을 소포로 보내줬다. 일본 사람들이 김을 아주 좋아하지만, 일본에는 우리의 조미 김 같은 아삭하고 짭짤한 김이 아닌 주먹밥용 김을 주로 먹는다 했다. 그 일본 친구는 '살짝살짝 두 번 구운 양반김'의 맛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김이 있냐며 '파나소닉 시디플레이어'를 보답의 선물로 보내왔다. 쇠도끼를 빠트려 금도끼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양반김을 보내 파나소닉 씨디피를 받다니!그 이야기에 많은 아이들이 해외 펜팔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런 훈훈한 '금도끼' 일화는 더 없었다. 대부분 '너무 고맙다. 너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이다', 아니면 '우리 우정 영원하다' 이런 식의 답장이었고, 일본식 부침개 오코노미야키 가루를 받은 아이가 그나마 나았다.
우리 반의 유나는 남아공의 아주 잘생긴 부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우리가 '남아공 왕자'라고 부른 남자아이와 일 년 가까이 펜팔을 했다. 말은 일 년이지만 왔다 갔다를 우편으로 하다 보니 횟수는 많지 않았는데, 편지를 기다리는 그 기간이 유나에게는 환상을 가공하는 시간이 되어, 유나의 상상 속 남아공 왕자는 영화배우급으로 진화했다. 어느 날그 남아공 왕자가 보내온 사진에는 남자'아이'라고 부르기 멈칫해지는 중후한 분이 목, 팔목, 발목까지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계셨다. 유나는 사진을 보고는 펜팔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는데, 자신의 부를 자랑하며 유나에게도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남아공 왕자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며, 장난 삼아 예나 지금이나 예쁜 김희선 씨의 사진을 보내주었다.그리고 남아공 왕자는 '소 아홉 마리 줄 테니 결혼해 주세요'라는 아주 빠른 답장을 보내왔다.
가장 친한 친구의 편지와 가족들의 편지는 오히려 수가 적었는데, 특별히 아주 감동적인 사연이나 멘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잘 쓰지 않는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던 그 시기가 내가 힘들거나 타지에서 문득문득 외로웠을 그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위로대신 아주 일상적이고, 심지어 재미있는 일화까지 곁들인 그 편지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힘을 냈던 것 같다. 하지만, 편지가 없더라도 나는 그때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으니,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모두 비웠다.
지금 아이 발가락 세개도 잘 들어가지 않는 삑삑이 신발. 이것을 가져오기 위해 구두 하나가 나갔다
작은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추억의 물건도 잘도 버린 나이지만, 아이의 배냇저고리와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처음 신었던 삑삑이 신발은 비우지 못했다. 대신 나의 신발을 더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