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진화시킨 이유, '움직임'에 대하여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 S사의 피트니스 센터는 묘한 공기가 흐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두뇌들입니다.
하루 종일 복잡한 수식과 코드, 혁신적인 기술과 씨름하던 그들이
출근 전, 퇴근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이곳 피트니스 센터입니다.
단순히 배가 나와서, 혹은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의 땀방울에서 조금 다른 본능을 봅니다.
바로 '살아남기 위한 뇌의 몸부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S사에서 연구원들의 몸과 움직임을 관리하고 있는 건강운동관리사 김정호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운동을 통해 뇌를 깨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멍게'의 일생을 아시나요?
멍게는 유충 시절에는 바닷속을 헤엄쳐 다닙니다.
이때는 아주 작지만 뇌와 신경계가 존재합니다. 움직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성체가 된 후, 적당한 바위에 붙어 정착하게 되면, 멍게는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순간, 멍게는 충격적인 일을 벌입니다.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스스로 소화시켜 버립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니,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라는 기관이 사치품이 되어버린 탓이죠.
이 이야기는 신경과학자 다니엘 월퍼트(Daniel Wolpert)가 주창한 아주 유명한 이론입니다.
"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움직이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뇌가 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뇌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을 정교하게 움직이려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생각, 감정, 기억은 그 움직임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한 부가적인 기능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하루를 떠올려보세요.
아침에 일어나 차에 앉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8시간 넘게 근무합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앉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눕습니다.
고연봉의 지식 노동자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몸은 '바위에 붙은 멍게'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됩니다.
뇌는 맹렬하게 회전하며 기획안을 쓰고 코드를 짜지만, 몸은 멈춰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입력값(감각 정보)과 출력값(움직임)의 불일치.
뇌는 움직임을 위해 설계되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뇌는 혼란에 빠집니다.
신경계는 점점 무뎌지고, 뇌로 가는 혈류량은 줄어듭니다.
우리가 느끼는 만성 피로, 브레인 포그(Brain Fog),
그리고 이유 모를 무기력함은 단순한 체력 저하가 아닙니다.
"제발 움직여서 나를 깨워달라"는 뇌의 구조 신호일 수 있습니다.
상위 1% S사 직원들이 본능적으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는 이유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땀을 흘리고 근육을 수축시킬 때 비로소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겠죠.
저는 회원님들에게 "근육을 찢으세요", "한 개 더!"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엉뚱한 제안을 하곤 합니다.
"오늘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텝을 밟아볼 겁니다. 뇌가 깜짝 놀라게 말이죠."
매일 똑같은 무게, 똑같은 궤적으로 반복하는 벤치프레스는 근육을 키울지는 몰라도, 뇌를 지루하게 만듭니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익숙함'은 곧 '절전 모드'를 의미하니까요.
우리가 출근길을 기억하지 못해도 회사에 도착해 있는 것처럼, 몸에 밴 동작은 뇌를 거치지 않고 수행됩니다.
이때 뇌는 다시 잠듭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뇌과학적 트레이닝의 핵심은 '새로운 움직임 학습(Motor Learning)'입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뗄 때를 떠올려보세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뇌는 폭발적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성인이 된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눈을 감고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아보거나,
평소 쓰지 않던 방향으로 관절을 회전시키거나,
복잡한 패턴의 움직임을 놀이처럼 즐겁게 퀘스트 깨듯 수행하는 과정.
동작이 어설퍼도 괜찮습니다. 아니, 어설플수록 좋습니다.
새로운 움직임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몸이 휘청거리고 뇌가 당황하는 그 순간,
당신의 전두엽과 소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맹렬하게 깨어납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운동은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보디빌딩만이 아닙니다.
굳어버린 뇌를 깨우는 것은 '낯설고 복잡한 움직임' 역시 중요합니다.
운동은 노동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가장 즐거운 '학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따로 노는 부품이 아니라, 뇌라는 중앙관제센터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이 연결을 무시하고 무작정 무거운 것을 든다고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장 난 센서'를 켜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더 큰 부상을 초래할 뿐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이 글들을 통해 저는 여러분께 식스팩을 만드는 법이나,
3대 운동 중량을 늘리는 법을 알려드리는 글은 없습니다.
대신 좌식생활에 지친 당신의 뇌를 깨우고,
굳어버린 신경을 다시 연결하는 정교한 움직임 설계를 제안하려 합니다.
여러 상위 1% 직장인, 기업인, 연예인 등을 케어하며 얻은 현장의 데이터,
그리고 대학원에서 깊이 파고든 이론을 바탕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직장인의 생존 운동법'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하루, 의자에서 잠시 일어나 기지개를 켜보세요.
그 사소한 움직임이 당신의 뇌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신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