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나의 숲

작은 공터

by 박소민


아파트 2층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면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치된 듯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던 그곳은 나에게 휴식과 여유의 공간이었다. 풀이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작은 숲. 짙은 초록의 숨결 속으로 이따금 반가운 소들도 한가로이 들러주고, 거리를 떠돌던 개들도 꼬리를 흔들며 찾아와 발걸음을 남겨 주곤 했다. 부드럽고 파란 하늘 사이로 새들도 날아와 고요 속에서 깊은 여유를 전해주기도 했던 세상에 숨겨진 작은 낙원 같은 곳이었다. 마치 세상은 멀리 있고, 오직 이 숲만이 나를 품어주는 듯 고요하고 소중한 공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커피를 가지고 창가에 앉아 필사도 하고 책도 읽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창을 다시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거대한 굴착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뿌리 깊은 풀들을 거칠게 움켜쥐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바람에 살랑이던 풀잎들이, 이제는 차가운 쇠의 손끝에 끌려가 모조리 뽑혀 나갔다. 이곳을 지키려 애쓰던 나의 마음도 굴착기의 날카로운 이빨 아래 깨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순식간이었다. 소식을 들은 새들이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 듯 커다란 원을 그리며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금빛 햇살 아래 드러난 황톳빛 흙도 마지막 남은 따스함을 전하려 애쓰는 듯하다. 바람이 지나가도 귀를 간지럽히듯 속삭이던 풀들의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풀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엔 적막이 내려앉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도 슬퍼하는 엄마를 걱정해 주며 “엄마 이제 커피 못 마시겠네요”라고 한다. “괜찮아, 그래도 노을이 지는 예쁜 하늘은 계속 볼 수 있어, 하늘을 누가 괴롭히지는 않으니까” 애써 웃음 지으니 아이들도 다시 밝아졌다.



바람 속 춤추던 풀,


차가운 쇠에 뽑혀 나가고,


고요함은 깨어졌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지만,


속삭임은 더 이상 없다.


텅 빈 땅에 홀로 남아,


사라진 숲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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