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만난 나의 달콤하고 짭짤한 크리스마스 미식기

파네토네와 뚜론 그리고 하몽이야기

by 여행하는 삶

거리마다 반짝이는 조명이 켜지고 기분 좋게 서늘한 밤공기 속에 설렘이 감도는 이곳 라스팔마스의 12월 도시 곳곳이 거대한 축제장이다. 광장의 마켓도 좋지만, 미식가들에게 진정한 보물창고는 백화점 식품관이다.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간식들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유럽의 크리스마스 맛이 궁금해 시작된 나의 '미식 장바구니'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무슨 맛일까?


1. 파네토네(Panettone)를 향한 호기심

​처음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새로이 진열된 백화점 식품관을 가득 채운 화려한 패키지들이었다. 마치 명품관 쇼윈도처럼 형형색색의 틴케이스와 리본으로 치장된 진열대는 나에게 강렬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토록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선물하는 걸까?"

​파네토네는 천연 효모로 장시간 발효시켜 돔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른 빵으로, 유럽인들이 겨울 내내 두고 먹는 '크리스마스 소울 푸드'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연말 식탁에서 즐기는 그 '진짜 맛'이 궁금했다. 과연 이 화려한 겉모습만큼이나 속도 특별할까? 그 기대감을 안고 세 가지 파네토네를 골라보았다.


나의 첫 번째 선택이자 기대 이상의 맛은 소박한 나무 바구니(Wood Basket)에 담긴 녀석이었다.

'플라미니(Flamigni)'라는 브랜드의 이 제품은 얇은 나무를 엮어 만든 통에 빨간 체크무늬 천을 덧대어 따뜻한 시골 마을의 느낌을 주었다.

화려함보다는 투박함이 매력적이었는데, 맛을 본 순간 "아, 이래서 파네토네를 먹는구나" 싶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서 구름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움, 그리고 뒤이어 밀려오는 진하고 깊은 버터의 풍미가 압권이었다. '노르망디 가염 버터'의 고소함이 빵 결마다 살아있어, 유럽의 크리스마스 아침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맛본 파네토네는 강렬한 빨간색 원통형 박스의 파네토네로 마치 병정들의 북을 연상시키는 '베르가니(Vergani)'의 패키지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탐이 날 정도로 이뻤다.

이 녀석은 빵 자체도 부드러웠지만, 맛의 포인트가 달랐다. 간혹 씹히는 오렌지 껍질(필)과 쫀득한 건포도가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빵 맛을 상큼하게 잡아주었다. 달콤함 속에 숨겨진 과일의 산뜻함이 입맛을 계속 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호기심의 정점을 찍었던 건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의 틴케이스였다. 시칠리아의 명품 제과 '피아스코나로'와 패션 브랜드가 협업한 이 제품은 예술 작품 같아서 맛에 대한 기대치도 가장 높았다.


하지만 맛은 명성에 비해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고른 '사과와 시나몬' 맛은 틴케이스를 열 때의 설렘만큼 향이 강렬하지 않았다. 은은하다 못해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사과와 계피 향이 화려한 외관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눈은 가장 즐거웠지만, 유럽의 진한 맛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파네토네의 순위는 맛본 순서대로였다.



2. ​카나리아의 자부심, 뚜론(Turrón)

​유럽의 맛을 찾아 파네토네를 샀다면, 스페인에 왔으니 이곳의 터줏대감 '뚜론'도 빠질 수 없다. 카나리아 제도의 자부심이 담긴 '메데로스(Mederos)' 브랜드의 수제 뚜론을 집어 들었다.

내가 집어든 뚜론은 노란색 포장지의 뚜론

​'카나리아 장인 뚜론'이라고 적힌 투박한 포장지 아래에는 볶은 아몬드의 고소함이 꽉 차 있다. 꿀과 아몬드를 뭉쳐 만든 이 간식은 한국의 엿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크리미 하고 견과류의 풍미가 진하다.


단, 달콤함이 아주 강렬하기 때문에 그냥 먹기보다는 진한 블랙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하는 것을 추천한다. 쌉싸름한 커피 한 모금이 입안의 단맛을 깔끔하게 잡아주어, 질리지 않고 계속 들어가는 환상의 궁합을 경험할 수 있다.



3. ​단맛을 완성하는 짭짤한 마침표, 하몽(Jamón)

​달콤한 빵과 과자로 입안이 얼얼해질 때쯤, 균형을 잡아줄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미식의 정점, '이베리코 베요타 100%(Paleta de Bellota 100% Ibérica)' 하몽이다.


​하몽을 고를 때 팁이 있다면 '순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이베리코 함량이 50% 정도인 제품은 사람에 따라 특유의 비릿한 향을 느낄 수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고른 이 100% 순종 베요타 등급은 그런 걱정 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잡내 하나 없이 고소한 풍미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접시에 담아 잠시 상온에 두면 지방이 투명하게 녹아내리는데, 입에 넣으면 짭조름한 맛 뒤로 견과류 같은 고소한 기름맛이 혀를 감싼다.




​낯선 미식이 이방인에게 건네는 위로

​단순히 화려한 포장에 이끌려 시작된 쇼핑이었지만, 그 끝에는 뜻밖의 깊은 울림이 있었다. 유럽 사람들이 일 년을 기다려 즐긴다는 이 맛들을 하나씩 음미하며, 나는 비로소 낯선 이국땅의 크리스마스 풍경 속에 진짜로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진한 버터 향의 파네토네가 주는 풍요로움, 혀끝을 감도는 뚜론의 달콤함, 그리고 고급스러운 짠맛의 여운을 주는 하몽까지.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유럽의 미식'이 내 입안에서 생생한 '현실'이 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짜릿한 즐거움이 되는 순간이다.


​눈으로만 구경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의 식탁을 공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맛본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방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이고도 맛있는 선물이 아닐까.


라스팔마스12월의 기분 좋은 서늘함과 입안 가득 채워진 다채로운 풍미로, 나의 스페인 겨울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