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90년대 초 히트했던 가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댄스곡이라 그 당시 나이트에서 댄스 타임에 많이 나오곤 했다. 어떻게 아냐고? 그때 그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춰 봤으니까.
처음 나이트에 갔던 기억을 더듬어보자. 대학 방송국에서 성우부로 활동했던 나는 생일이 빨라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대학생이 되었어도 나이트에 갈 수 없는 나이였다. 1학년 때 방송국 행사였던 방송제 뒤풀이였나? 아무튼 행사 뒤풀이에 단체로 간 나이트에 선배들 틈에 끼어 쭈뼛쭈뼛 들어갔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아주 꼼꼼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던 시절이 아니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진짜’ 성인이 되어 이제 떳떳하게 나이트를 들어갈 수 있었을 때 춤추는 걸 좋아했던 친구와 둘이 나이트를 갔었다. 오로지 댄스 타임에 춤만 추러.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와 내 친구는 나이트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사 가방에 넣고 가서 열심히 춤만 추다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 나이트 민폐 캐릭터.
그때 댄스 타임에 단골로 나오던 곡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봄날, 산 아래 물이 고인 농수로나 물이 고인 습지 주변을 걷다 보면 자연의 치열함을 목격하게 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번식을 위한 짝 찾기 경쟁이 그러하다. 찬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제 곧 봄이 오려나 싶은 겨울 끝자락에 제일 먼저 산개구리 종류들이 알을 낳는다.
내가 자주 다니는 습지에는 ‘한국산개구리’가 산다. 입 가장자리에 흰 줄이 특징인 한국산개구리는 2월 말쯤 주먹만 한 알덩이를 낳는다. 크기가 작아 품을 수 있는 알도 적어 알덩이도 작다.
3월 초에는 두꺼비를 볼 수 있다. 모든 개구리의 짝짓기가 그러하겠지만 덩치가 커서인지 두꺼비의 짝짓기 경쟁은 더 치열하게 보인다. 암컷 한 마리에 수컷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 서로 떼어내려 뒷발길질을 해댄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그러다 운이 좋게 경쟁에서 이긴 녀석은 암컷 등에 올라타 암컷 배를 힘껏 껴안아 “얜 내꺼야” 찜을 하고 양 앞발을 이용해 열심히 암컷의 배를 눌러 알 낳는 걸 돕는다. 그리고 암컷이 낳은 알에 정액을 뿌려 종족 번식의 숭고한 임무를 완수한다.
암컷 등에 올라탄 수컷을 보면 마치 엄마 등에 업힌 아기 같아 보인다. 암수의 덩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임신부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라’고 덕담을 하지만 실제로 ‘떡두꺼비’ 느낌의 생김새는 암컷이다.
짝짓기 시기에 서식지가 겹치는 양서류들에게 만나지 말아야 할 짝을 만나는 어이없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도롱뇽을 끌어안은 큰산개구리(산개구리 종류 중 크기가 가장 큰 개구리)나 황소개구리를 끌어안은 두꺼비가 관찰되기도 한다.
황소개구리는 1970년대 식용으로 사육하여 농가소득을 올릴 목적으로 수입했지만, 수익성이 없어 사육하던 것을 무단 방생해 전국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났고 워낙 포식성이 좋아 토종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됐다.
한때 두꺼비 덕에 개체 수가 줄었다고 근거 없는 이야기가 나돈 것은 황소개구리 등에 올라타 ‘빠떼루( 파테르, 레슬링에서 벌칙 받은 선수가 엎드리고 공격하는 선수가 위에서 공격하는 자세 ) 자세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하는 결연한 표정의 두꺼비 목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나 단단하게 붙잡는지 수컷 두꺼비에게 간택된 황소개구리는 결국 번식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어떤 경우 죽기도 한다.
금개구리는 등에 있는 금색의 융기선 두 줄이 특징인 개구리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다. 4월쯤 습지에서 황소개구리 등에 올라탄 금개구리가 간혹 보인다. 황소개구리는 이름 그대로 황소 울음소리와 같이 우렁찬 울음소리를 낼 만큼 덩치가 크다. 금개구리는 작은 개구리에 속한다. 게다가 수컷은 더 작다. 어떤 경우는 암컷과 비슷한 크기의 어린 황소개구리를 고른 녀석도 있지만 자기 몸의 몇 배나 큰 황소개구리 등에 올라가 멍청히 앉아있는 녀석도 가끔 보인다. 황소개구리 처지에서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금개구리가 올라앉은 게 얼마나 어이가 없을 것인가?
나는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며 혼자 중얼거린다.
“ 아이고 이 녀석아~~ 생태계교란종과 멸종위기종의 만남이라니. 짝을 찾아도 한참 잘 못 찾았어~~~”
봄날, 번식본능에 눈이 먼 개구리에게 일어나는 ‘잘못된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