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 안 올라도 ‘숲세권’이 좋은 이유
결혼해서 처음 살던 아파트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다들 뿔뿔이 흩어져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갔다. 누구는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누구는 터미널이 가까운 곳으로. 대부분 ‘입지가 좋다’고 말하는 곳으로 이사할 때 나는 이 집을 선택했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산이 보이는 게 좋아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지만 봄이 오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두색 새잎이 돋고, 군데군데 피는 벚나무꽃과 연보라색 오동나무꽃을 보면서 특별히 어디 가지 않아도 거실에 앉아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풍광이 좋았다.
산에 가면 다양한 새들을 볼 수도 있었다. 까만 넥타이를 맨 박새, 뒤통수에 짧은 꽁지머리를 단 진박새, 까만 베레모를 쓴 쇠박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인상적인 동고비, 턱과 정수리의 노란색 깃이 멋진 노랑턱멧새, 도토리를 여기저기 숨겨놓는 어치, 땅콩을 손에 놓고 기다리면 포르르 날아와 물고가는 귀염둥이 곤줄박이.
드르르르~ 드르르르~ 칼질에 능숙한 중식 대가의 칼질 소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밴드부의 드럼연주자가 드럼을 신나게 두드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할까? 존재를 소리로 드러내는 딱따구리들도 산다. 딱따구리 중에 제일 작은 쇠딱다구리, 등에 흰색 V를 장착한 오색딱다구리, 배에 줄무늬가 특징인 큰오색딱다구리, 깃털이 올리브색인 청딱다구리.
아파트로 둘러싸인, 사람들이 산책 겸 운동 삼아 오르는 야트막한 작은 산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 여름이 되면 천연기념물인 소쩍새나 솔부엉이 소리도 들린다.
소쩍소쩍~
저녁 무렵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데 앞산에서 소쩍새 소리가 났다. 소쩍새는 봄에 찾아와 번식하고 가을에 돌아가는 여름 철새다. 봄이 되면 매년 앞산에서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3월 말쯤 되면 소쩍새 소리가 들리는지 주의를 기울인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주로 나무에서 쉬고 조용한 밤에 먹이활동을 하는 녀석이라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에 아직 날이 밝아 소리를 쫓아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카메라와 쌍안경을 챙겨 나갔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을 헤치고 다니며 두리번두리번 나무 위쪽을 쌍안경으로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소쩍새는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 계속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다녔더니 슬슬 목도 아프고 날도 어두워져서 그만 포기하고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이었다.
산 아래엔 사람이 살지 않는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한옥이 있다. 지붕은 기왓장도 없이 서까래가 다 드러나고 흙벽도 무너져버린 옛날 집. 집 뒤엔 대나무밭이 있어 바람 불 때마다 흔들려 부스스 소리를 냈다. 마당 한쪽엔 오래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감나무 아래엔 기다란 줄기에 하트모양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냉이가 무성했다.
그때였다. 무성한 냉이 사이로 뭔가 움직임이 보였다.
‘와우~~~’ 나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호랑지빠귀’였다.
몇 년 전 산에서 예쁜 새소리에 섞여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쇠끼리 긁혀 끼~익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근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소리가 ‘호랑지빠귀’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소리의 주인공을 안 뒤에도 실물을 보지 못했는데 드디어 만난 것이다. 그다지 예쁜 소리도 아니고 심지어 밤에 들으면 뭔가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소리를 내는 ‘전설의 고향’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리의 주인공.
호랑지빠귀는 예뻤다. 몸은 황갈색이었고 날개깃을 빼고 몸 전체에 초승달 모양의 검은색 무늬가 있었다. 검은 무늬 때문에 얼룩덜룩 한 게 그래서 호랑지빠귀라고 했구나 싶었다.
자칫 날아갈까 나는 숨죽이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그 녀석은 마당과 주변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땅속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가끔 잠깐씩 힐끔거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지척에 있는 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새 사진을 잘 찍기 어려운 건 식물이나 다른 동물에 비해 거리를 가까이 주지도 않지만 마주쳤을 때 앗! 하고 카메라를 드는 순간 예민해서 포르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를 찍는 사람들이 먼 거리를 당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줌렌즈를 장착한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위장막으로 잠복을 하는 이유이다. 그래야 깃털 한올 한올, 홍채 색까지 선명한 살아있는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나는 보급용 카메라로 관찰 기록용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런 분들의 사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데 이렇게 가까이 거리를 주고 나를 신경 안 쓴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실컷 사진을 찍으라는 듯이 내 주위를 맴돌며 열심히 먹이활동 삼매경에 빠진 호랑지빠귀.
나는 조심조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일부러 찾지 않은 우연한 만남은 몇 배의 큰 기쁨을 준다. 소쩍새를 만났어도 좋았겠지만, 소쩍새 덕분에 우연히 만난 호랑지빠귀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
지금 우리 집으로 이사한 후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던 한 지인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기는 학교도 멀고 터미널도, 마트에 가기도 애매한 위치인데 왜 여기로 이사 왔어?
입지가 별로라 집값도 잘 안 오를 것 같은데.”
집값은 정말 잘 안 올랐다. 지금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아파트 같은 평수에 비하면 집값이 싼 편이다. 하지만 ‘숲세권’ 우리 집을 고른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PS. 이날 찍은 호랑지빠귀 사진은 국립생태원의 탁상용 달력에 실리는 영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