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난임 storY#2
내가 난임이라는 충격에 잠시 멍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임이란 건 시간의 제한 속에서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게 슬펐다. 여자의 그날은 한 달에 한 번 뿐이며, 나의 난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기에...
집으로 돌아온 후 병원에서 보내준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 설명 URL에 들어가서 열심히 보았다. 사실 본다고 해도 그때는 60%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며칠 고민 끝에 남편과 시험관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인공수정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보다 확률 높은 방법으로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관도 성공확률이 100%는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였고 나는 난저이기 때문에 보다 확률적으로 높은 시험관 시술을 병원에서 권했다는 것도 이해했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에게 아이가 오는 건 삼신할매의 뜻이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길을 만드는 건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최소한 후회는 하지 말자'
라는 생각에 결정했다. 나이가 들어 만약에라도 우리 둘이 오붓이 노년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래, 그때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봤지'라고 위로할 수 있을 테니.
일단 시험관은 역시 예상대로 그리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은 병원에 가야 했고, 영화에서만 보던 배 주사를 직접 놓아야만 했다. 주사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차마 직접 주사를 놓을 수 없던 나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주사 놓기 체질이었나 보다. 극난저였던 나는 일단 과배란 주사 용량을 MAX 용량으로 처방받고 열심히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최소 주 2~3일을 먹던 술도 줄이고, 운동이라면 치를 떨었던 나는 가끔 뒷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최애였던 콜라도 줄이고 밥순이였던 나는 탄수화물도 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대한 멘탈 관리에 신경 썼다. 초반에 맘카페 등 난임 관련 글만 찾아보던 나는 정보성 내용 이외에는 최대한 찾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시험관 1차, 2차, 그리고.. n차의 시도에도 아이가 오지 않을 수 있는 케이스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점차 커졌기 때문이다. 일단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생각하지 말고 병원 원장님 말대로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난임이라는 게 주변에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지만 몇몇의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나의 난임 얘기를 듣고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해주던 친구들에게 말했다.
"난임이라는 게 혼자 끙끙대며 심각하게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지만,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해. 내가 너희들에게 털어놓는다면 그저 그런 나의 고민 중의 하나가 될 거 같았어."라고.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 인해 나의 걱정과 불안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위로가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네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야.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할 필요도,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어. 아이는 올 때가 되면 그때 올 거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분명... 뒤에서 걱정을 한 바가지 하실 거라는 걸 알기에 나 또한 너무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나의 일상생활을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난자가 몇 개 있는지 초음파로 확인하는 날. 나는 처음으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