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오래 멈추다가 재개하게 되었다. 살면서 올해처럼 문화적 경험이 많았던 때가 없는데, 그만큼 여러 작업들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것이 계속해서 숙제로 느껴졌는데, 오늘 강한 동력을 받았으므로 정진해보려고 한다.
민족 대명절이라는데 나는 이 긴 연휴를 홀로, 그리고 온전히 휴식하지 못하면서 보내고 있다. 휴일의 한복판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얕은 정도의 자유와 해방감이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에 속해있지 않고, 그렇다고 대안적인 의미의 가족에 속해있지도 않으며 학생이라고도 노동자라고도 완전히 규정할 수 없고, 특별한 삶의 방향이나 뚜렷한 원동력이 없는 지금의 상태. 나는 계속해서 헤매고 있다. 헤매는 것에 너무 질려서 한 번씩 남들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알게 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되는'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규정된 성취를 현실에서 재현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만 했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보고 왔다. 그것들은 편하게 '지도'로 칭해졌지만, 이미 정해진 구획으로 설명될 길이 없던 사람들이 기존의 세계에 편입되려는 목적으로 만든 자기본위적 이름 붙이기였을 것이다. 자기만의 '지도'를 완성한 사람들은 소기의 목적과는 다르게, 기존의 세계란 방자하고 얄팍하기 그지없으며, 굳이 그곳에 들어가 구성원인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었다.
테레사 학경 차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찾아간 전시였다. <mouth to mouth>, 어떤 글자를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하는 입모양이 반복되었고 mother tongue로 번역되는, '내가 타고난 입모양', 그러니까 모국어라는 관념 자체를 이미지로 보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뜻하지 않게 새로운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는데, '쉔신'이라는 작가의 <지구는 푸르네>라는 작품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거의 40분에 육박하는 영상물을 한 장면 한 장면 유심히 관찰하고, 모든 자막을 이해하고 맥락을 따라가고자 노력했다. <지구는 푸르네>는 한 편의 (티베트어로 된) 시를 읽으며 동시에 작가가 티베트 모국어 화자와 문답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낭송되는 시도 아름다웠지만, 티베트어의 형성과 원리가 충실하며 비유적이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숨기고 있던 아름다움의 비기를 하나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티베트어는 마치 자연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아름답다. 순수하고 정직하게 '관찰'된 사실과 '감각'된 느낌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언어로서 '표상'되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무가 오래 자라면서 서로의 꼭대기를 양보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충실히 생존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모습을 표상하지만 거대한 숲 속을 걸을 때 우리는 올려다보이는 나무의 꼭대기가 서로 떨어져 있는 사실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성이 결합했다는 특징도 설명할 수 있겠다. 감각되는 것들은 과거형으로 표현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향이 났다'. 티베트어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향을 맡는 건 이미 그 공간이 향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슬픈 것은 '슬펐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자유로운 것은 이미 '자유로웠기' 때문인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감정도, 심지어 자유 자체도, 해방도, 나를 구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충만함에 가까워질 것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시기를 넘어,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나를 '알 수 없음'의 나인 상태로 충만하게 만들 것이다.
달도 구름에 가려져 희미했던 오늘, 내가 사는 시절을 교차한 얼굴 모르는 망명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된 일은 절묘한 우연이다. 나는 오늘 미래를 고민하다가, 남들이 가는 길을 몰래 따라가 보기도 하다가, 처음 들어보는 언어에 감동받아 그곳에서 적어도 일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길게 살아볼 계획도 세웠다. 희미한 추상은 조금 뒤에 빠져들 깊은 잠에 희석되어 아예 없던 일이 되거나, 나도 모르는 새 강한 뿌리로 변모할 것이다. 씨앗을 흩뿌려놓으면 어떤 것은 싹을 틔우고 어떤 것은 남몰래 사라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