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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특별히 기렸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위인이지만, 우리 지역과는 연관성이 깊은 인물이라 공원에는 이순신 동상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난 날짜를 기념하여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대회를 열었고, 시내에서는 매년 이순신 축제를 열었다.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말이 들어간 행사는, 그해의 가장 큰 행사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열던 대회는 '충무공 이순신 그림 그리기 대회'였는데, 명칭은 정확하지 않지만 '충무공 이순신'과 우리 지역을 모두 연상할 수 있는 그림을 뽑는 대회였다는 것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고유한 지역적 특색과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리는 이미지를 한 폭의 도화지 속에 조화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주제는 한정되었는데 소재는 매년 색달라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이었던 어느 해에도 어김없이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그때 우리 지역에 있는 광활한(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무척 광활했다) 호수를 표현하기 위해 우선 버드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이파리와 휘영청 늘어진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그려내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고, 그때 내가 쓰고 있던 수채 물감의 배색이 유난히 아름답게 표현되어서 버드나무를 떠올린 것이 꽤나 잘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아마 그 그림은 입상했을 것이다. 동상이나 은상, 어쩌면 금상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가장 뚜렷한 것은 휘어지는 이파리의 이미지였다. 버드나무 잎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상.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는 버드나무를 보면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렸고, 내가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나의 고향을 떠올렸고, 내가 나온 초등학교의 넓은 모래 운동장, 대리석 복도, 석유난로 따위를 떠올렸다. 자연히 복도에서 뛰다가 걸려서 혼나던 순간의 수치심과 같은 방과 후 동아리 후배와의 친분을 친구 앞에서 자랑할 때의 의기양양함 같은 감정도 상기되었다. 식물을 잘 구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버드나무의 이미지가 나에게 유독 특별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렸던 그림 외에 버드나무를 특별히 접할 일이 없어서 '내 어린 시절의 나무'로 의미가 굳어진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 학교 과제를 하다가 버드나무 이파리를 묘사한 문장을 읽게 되었다. 맞아, 내가 아는 버드나무도 이렇게 생겼지, 하고 읽다가, 내가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전까지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드나무가 내게 주었던 강력한 인상은 이미 희미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버드나무와 얽힌 기억을 신경 써서 채굴하였고, 아마 앞으로도 '신경 써서' 꺼내보지 않는 이상 버드나무는 특별한 상징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는 버드나무가 언급된 문장을 들어도, 버드나무 이파리의 생김새를 보아도 내 어린 시절은 함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어린 시절을 아예 까먹은 것은 아닐 테지만. 그것은 이제 구분될 것이다.
버드나무를 그려서 상을 받은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분리되지 않았던 기억이,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 떨어졌다. 버드나무가 내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게 된 세월 동안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새로운 기억이 퇴적되며 이전의 기억을 더 과거로 밀어버린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지금의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의 질은 아주 높고, 내 일상을 긍정한다. 내가 한 밥으로 나를 먹이고, 내가 청소한 집에서 살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삶을 영위한다. 많은 것들이 내 통제 속에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또한 아주 중요하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원하지 않는 능력도 생겼다. 산발적으로 정리되는 나를 하나로 표현해 보자.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삶을 꿈꾼 적도 없다. 내가 사는 삶은 그때그때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고, 나의 선택은 언제나 '선택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버드나무를 떠올리고 기뻐하던 시절의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범위에서 지금의 나는 살아가고 있다. 망명하는 사람으로서.
버드나무가 예상치 못하게 시절의 간극을 상기하는 순간, 또 다른 '버드나무'가 예상치도 못하게 몰랐던 간극을 알려주는 순간에 나는 코끝에 서리는 시린 기운을 감지하고 재빨리 내 삶을 해명할 도구를 찾는다. 요즘은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말하기 때문에 해명은 강력하다. 바르게 살아왔는가? 떳떳하게 살아왔다. 그것은 내 유난스러운 뻔뻔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순간을 버티려면 꼭 필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