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의 단상은 늘 변했던 것 같다. 2022년 11월 현재는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완충도 된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견디고 있지만, 작년 이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생각해보면 모든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를 입었으면, 응당 그 사람을 내 관계망에서 끊어내야 마땅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에 대한 기준은 분명했다. 내가 가진 성격적 결함 중 가정사로부터 비롯된 것을 지적하면 나는 정말 깊이 상처를 입었고, 그 말을 한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 정도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상처’를 주면. 그런 말을 하면.
그렇게 멀어진 친구들이 몇 명 있다. 남이 내게 입히는 상처를 저울질하고 또 혼자가 되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그다음에는 함부로 무슨 말을 ‘상처되는 말’로 규정하는 것도 망설이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관계를 유지해왔다.
한 번씩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멀어진 친구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사실 자주 생각난다. 같이 걷던 교정을 걸을 때 생각나고, 같이 밥을 먹었던 식당을 갈 때 생각난다. 그래서 둘이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한때를 즐겼던 곳은 잘 찾아가지 않는다. 친구가 좋아했었던, 혹은 좋아할 만한 것을 보면 아무 일 없이 ‘사다 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핑계로 먼저 연락했던 적은 없다.
오늘은 달이 무척 크게 떴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데, 사실 나는 그런 것을 불특정 다수와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개인 문자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냥 SNS에 올리거나 하는 식이다. 오늘은 문득 멀어진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우리가 만났을 때 우리는 항상 서로의 눈에 집중했다. 같이 먹는 음식에 집중하거나. 그 친구는 음식에 열중하는 나를 보며 항상 즐거워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깊고, 실없거나, 즐겁거나, 이상하고 우울했다. 그렇게 2022년이 되기를 바랐는데. 어쨌든 아주 크게 뜬 달을 보고 그 친구를 생각했다. 사람 한 명을 떠올리는데 연상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난 조금 지쳐서 잠시 길거리에 서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거나, 친구와 겹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친구 생각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원래 가려던 길을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로. 혼자 가면 늘 앉는 자리가 오늘도 비어 있었다. 새로운 메뉴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친구 생각은 희미해졌다. 희미해져 가네. 이 생각을 하면서 멀어져 가던 친구 생각을 다시 붙잡아 왔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