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9월 중순쯤부터 나는 1인 가구 가장이 아니게 되었다. '1인 가구'의 틀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인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정상 세 달 정도 서울에서 지내야 하는 친구 r과 우리 집을 공유하게 되었다. 말이 공유지만 사실 올해 이사한 집은 너무 좁아서 정확히는 서로 잘 자리만 마련해두고 살고 있다.
r과 지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 특징 중 하나는, 내가 정말 불편한 상황을 못 견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먼저 종결하거나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하다못해 '먼저 잘게' 같은 말도 못 한다. 그간 내가 스스로 얼마간 강단 있고 씩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큼 타인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인간관계가 특별히 넓지 않고, 친구를 자주 만나는 편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차분한 관계를 맺는다. 친구와 길게 지내본 적이 없다. 캠프나 기숙사 룸메이트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주 길어봤자 1박 2일 여행 정도가 전부다.
다니는 병원에서 상담 선생님과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그것에 대해 다루고 있고, 다음 주 내원 때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요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황을 불편하게 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말은 절대, 절대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크게 받는다. 그리고 정당하게 말하지 못하니 그것을 내가 느끼기에 치졸하고 비겁한 방법으로 해소한다.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종국에 난 내가 정말 한심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r이 쓰레기를 제때 버려줬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말하면 너무 과한 요구가 될까 봐 입을 꾹 닫고 있다가 자기 전 '요새 쓰레기 진짜 많이 나와, 신경 쓰여' 하고 언급하는 것. r이 자기 때문이냐고 물어보면 '모르겠지만 둘이 사는데 어쩔 수 없지'라고 대답하는 것. r도 불편할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지속 가능한 관계 맺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할 말은 해야 한다. 내가 말하지 못해 괴로웠던 것들은 대부분 선생님의 음성으로 들어보니 생각보다 해도 되겠는데, 싶은 말들이었다. r이 내 요구를 모두 들어줄 필요도 없고, 내가 r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필요도 없다. 그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어떤 관계에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이해하는 데 에너지가 덜 드는 상대도 있을 것이다. 대신 그 관계에서는 상대가 더 감내하고 있을 것이라는 유구한 믿음이 있다. 난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 남을 많이 생각한다. 그만큼 나도 이해받고 싶고. 그런데 그만한 에너지가 부족하다. 관계 에너지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이해받으려면 그것을 정당하게 요구해야 하는데. 상대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적당히 포장된 말과 호의적인 표정과 수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그건 정말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에너지가 계속 바닥나는 것은 아마 혼자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현저히 떨어져서 그런 것 같은데.
난 쉽게 관계의 종말을 생각한다. 아무 에너지도 쓰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민망하지 않고 가장 손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비겁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는 원할 때 연결하고 원치 않을 때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야지, 다짐하면서 오늘도 무진 애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