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 해파리로 살기

가장 완전한 1인 가구 가장 되기

by 성당

나는 매일매일 친구들을 떠올린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도 떠올리고, 가장 미운 친구들도 떠올리고, 별 생각이 안 드는 친구들도 차례로 떠올린다. 친구가 많지 않아 샤워하고 옷을 입는 동안에도 순식간에 모두 떠올릴 수 있다.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여도 괜찮을 수 있는 힘보다, 우선 혼자가 아닐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올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묵직한 그리움이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보일러를 돌리니까 발부터 전달되는 따뜻한 기운에 마음이 시렸다.

작년 이맘때는 잠시 '1인 가구'로서의 정체성을 버렸다. 타인과 같이 '지내는' 것을, 그리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처음으로 길게 해 보았다. 밤만 되면 각자 찬바람을 묻히고 들어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재잘대던 설렘을 내 기억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종일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몇 개월은 지내던 삶이 종식되고, 매일매일 무언가를 '발화'할 수 있다는 것이 꾸준하게 즐거웠다. 그때를 자주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행운을 생각한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병을 진단받았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쭉 질병을 관리하며 살아오고 있다. 올해는 크게 호전되어서, 여러 증상이 거의 사라지거나 약해졌다. 적어도 일상에 말썽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이어가기에 충분한 기운을 느끼고, 씻고, 주변을 정돈하고, 즐거운 일에 즐거워하고 힘든 일에 힘겨움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구체적인 병명을 (적어도 이 글에서만큼은) 밝히지 않는 이유는, 내 질병이 작년까지의 삶을 변호하는 근거로 쓰이지 않길 바라서이다. 원래 질병은 질병이고, 변명은 변명이다. 내가 일상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너무나 명확히 내가 겪은 질병에서 기인했지만, 명쾌하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고 싶지 않다. 그때 나는 같이 지냈던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간접적으로, 혹은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보고 느껴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나의 삶은 그 애에게 새롭게 힘들었을 것이니까. 예시로 친구 한 명을 들었지만, 내 엄마도 매 순간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질병 때문에. 작년까지는 너무 심각하게 아팠으니까.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들추고자 한다.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 '질병 때문에'라는 베일로 가려둔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내가 심각하게 아플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 때문에' 미안한 것이었고, 나는 많이 아픈 상태니까, 내가 문제가 아니고 질병이 문제니까, '나 때문에' 미안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나 때문에'도, '질병 때문에'도 아니고, 그냥 그 시절 함께였던 순간이 미안하다. 약해진 시기에 교차하던 순간이 미안하다.

나는 내가 왜 씻기 힘들었는지 몰랐다. 왜 누워만 있고 싶은지, 학교에 가려다가 왜 다시 집에 돌아와 누웠는지. 매일 있는 일정이 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서 '갈 수 없는 것'이 되었는지. 왜 책상에 놓인 쓰레기를 쌓아두고 치울 수가 없는지, 왜 옷을 단정하게 갤 수 없는지. 왜, 그 모든 것들, 그러니까, 지금도 이유를 알 수는 없고 '아팠으니까'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애초에 나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아팠는지 정확히 이유를 댈 수 없다. 왜 아파야 했는지. 그러니까 주변에서도 나를 왜 아프냐고 몰아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픈 데 이유가 있을까. 그렇지만 내가 치우지 않은 쓰레기를 대신 치워주고, 내가 불참한 약속에 대신 양해를 구해주고, 내가 대충 집어넣은 옷가지를 꺼내어 정갈하게 개어주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멀쩡해 보이는 얼굴로 가만히 누워있는 나를 보고 화가 치밀었을 수도 있지만, 여러 번 참았을 것이다. '아프니까.'

그러다가 한 번씩은 참을 수 없는 재채기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 조각난 진심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넌 뭐가 문제냐고. 너 왜 이렇게 사냐고. 나는 그 말에 상처를 입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래 슬퍼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방을 정돈하는 것이 누구 몫이었는지 잊은 채. 무책임하게.

나는 이 글이 '내가 받은 상처를 고발하겠어요'라는 의미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 글을 아주 잘못 독해한 것이다. 나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질병 때문이었을지라도,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것을 속상해하고 있다. 내게 질병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책임은 없지만, 가까웠던 사람들과 서로 힘겹게 교차한 지점들을 슬퍼하는 마음을 느낀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팠던 사람이 특별히 심각하게 아팠던 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과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꾸리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진실로 나는 그 시절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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