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공감정치와 국가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by 와와우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싶다!

정치권력의 정당성 회복


국민 공감정치와 국가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민심은 천심이다!” 중국 고대의 정치를 기록한 오경 중 하나인 ‘서경’의 주서(周書)에서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은 백성이 보고 듣는 그 자체이다”라는 말과 “백성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는 말에 근거해 전해져 오고 있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가 한비자가 군왕에게 고하는 글에서 "잘못은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옳은 이치라도 법을 이길 수는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하늘 즉 민심을 이길 수 있는 권력은 없다."고 하였다. 조선왕조 정치철학인 성리학의 민본사상에서도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 했다.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나라 또는 조정)은 다음이며, 국왕은 가볍다."고 했다.


그러나 천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의 정치적 성향이나 방향성 혹은 논리를 보면 마치 앵무새처럼 누군가에게서 배워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고전정치학에서 유래되어 현재 자신의 인식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젊은이의 민심(民心)보다는 '지혜로운 노인'들의 민심이 천심(天心)에 더 가깝다고 억지스런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 특정한 권력집단에 의해 운영되어져 왔다. 이러한 정치사상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백성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었다. 최소한 민주주의의 이상은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아직도 마키아벨리의 ’국주론’이나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을 손에 들고서 그들의 사상적 고뇌를 뒤로하고 단편적 지배방식만을 터득하려는 자가 있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와 일본의 자민당 독점정치체제는 과거의 고전정치학에서 유래된 백성을 다스린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정치에서는 천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대중민주주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정치의 기본적인 하나의 원칙을 만들고 있지만 소수의견의 존중이라는 또 하나의 기본 원칙을 만들었다. 이러한 양립할 수 있는 생각을 하나로 만들려면 민주주의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소수의 의견이 다수가 될 수 있고 다수의 의견이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공감의 정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국정홍보와 여론몰이를 통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충분한 설득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국민이 이해하고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선출되고 난 후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요식행위에 불과한 수준에 머물게 된다. 국민의 소리에 귀기우려야 한다는 원칙이 형식적 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의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한 것이고 지방자치를 발전시키는 것은 필연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국민의 정치행위를 기술적으로 접근하여 선행적으로 이를 적극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직접민주주의의 발전과 지방자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이미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의 폐쇄적 구조를 허문다는 것은 이 시대의 요청이고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민주주의를 구체화한다는 것은 정치권이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통해 실현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이유는 청원형식에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를 단지 정치적 보여주기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그치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상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정치적 명분을 갖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결국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과정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국민의 소리를 듣고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민청원이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하고 국민의 다른 소리도 조작 없이 투명하게 게시될 수 있어야 하며 정부의 일방적인 선택적 정치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의 공감은 결국 절대 다수의 지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형식이나 결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100%가 찬성하는 정치행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공론의 장은 시간을 통해 통합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과반의 의한 일반적인 정책결정 역시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시적인 여론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명분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행위도 지양되어야 한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대중의 절대적 지지는 옳은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은 옳았다. 과거 같았으면 정변을 통해 연루된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일어났을 법한 사건이었다. 현대 민주사회는 국민의 의지만으로도 오랜 시간 집단화한 패거리 정치집단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국민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은 결국 탄핵을 반대하는 세력조차 탄핵의 정당성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개인에 대한 형사상의 책임이 과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음도 주목할 필요는 있다. 현 집권세력은 지난 정부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도 하듯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탄핵이란 여론을 이용하였다. 당시에 상황이었으면 과장된 가정일 수 있지만 프랑스혁명 때 루이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세웠듯 박근혜를 사형 집행하는 행위조차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법부의 독립적 존재여부에 있다. 그러므로 사법부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여론에 의해 흔들림이 없는 균형 있는 헌법정신의 마지막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부부나 가족 사이에도 경제공동체라는 법적용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가치이다. 이는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개개인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생명권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최순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계와 제3자 뇌물에 대한 적용은 헌법의 기본질서를 위배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정치적 행위에 대한 책임만을 묻는 탄핵만으로도 국민에게는 충분한 처사였다. 어찌되었든 전두환 군사정부와는 달리 국민의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었고 그의 국정과오에 대한 탄핵은 정치적 사형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되어야 했다. 국민의 공감은 공론을 만들기 위한 시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의 일시적인 국민의 우위적 요구가 반드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기회로 권력을 쥔 패거리집단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지만 국민의 공감능력은 다시 그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독립이 확고해야 하는 사법부의 독립이 스스로 확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검찰과 법원의 권력지향적인 정치적 성향은 이 정권이 들어서며 더욱더 노골화되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역설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형식을 만들고 이를 명분으로 정치적 이용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는 권력의 개방성과 투명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권력기관의 상호견제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개방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스스로의 자정기능을 확고히 하는 것이 개혁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공정성을 이루는 기본이 된다. 스스로의 자정기능을 확고히 하는 것은 그 집단의 개방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현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기관별 전문성을 육성하며 해양수산, 문화재, 산림, 보건의료, 국토개발, 국세, 국방, 해양경찰, 문화예술 등 많은 관피아의 종류를 양산하였다. 이러한 국가기관의 폐쇄성은 특정 학교출신과 전문직종과의 이해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과 법원, 검찰, 경찰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란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기 쉽다. 공감의 기준이 각자의 처한 상황이나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는 공론의 장을 확대하고 통합하는 제도적 장치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론이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되고 왜곡되는 현상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독점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정치권력 역시 마찬가지지만 언론 역시 권력과 연결되면 사회 전체의 부패를 가져올 수 있다. 다양성의 확보와 통합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개방성과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인 실천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모든 독점 권력은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국민에게 공감을 얻고자 한다면 가능한 모든 것은 공개되어야 한다. 비밀주의를 타파하고 공개행정을 원칙으로 하는 부단한 노력이 계속하여 필요한 것이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 것이고 이러한 국민의 통합된 공론이 결국은 바른 방향으로 통합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할 따름이다. 국민이 주변의 일시적인 여론이나 정치인의 선동적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공감에는 지속적 이유가 필요하다.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특이성보다 보편성을 따르게 마련이다. 개인이 갖는 이해보다 모두가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지속성을 갖는 공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비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