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주의 노사문화 정착

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by 와와우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싶다!

사회 통합의 필연성


공동체주의 노사문화 정착


노동의 개념은 더 이상 전통적인 육체노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용과 피고용의 반자본주의적 사고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운동의 목적과 페러다임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주의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은 기업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생산원가의 절감을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하였고 노동력을 싸게 구입하여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자의 복리증진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노동자들의 상호 부조 성격의 공제노력인 동시에 자신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본가에 대하여 고용안정·노동조건개선·임금인상·복리증진 등을 위해 전개하는 자위적 활동이었고 노동자의 권익신장이 노동운동의 주된 목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공산주의를 탄생시키는 명분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의 생산성 저하는 모든 정치적 명분을 무력화 시켰다. 1970년대 말 계획경제체제의 한계는 동유럽 전체를 통하여 뚜렷이 나타났다. 1980년에는 폴란드의 그다인스크 조선소에서 레흐 바웬사가 1만 7,000여 명의 노동자를 이끌고 파업을 주도하였고 이는 동유럽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폴란드에 대한 소련군의 개입가능성이 낮아진 이유는 소비에트 연방 내 여러 문제와 최고지도부의 불안정이었다. 1982년 브레주네프가 통치하던 오랜 침체기가 끝나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연이어 단명하며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국가 원수가 된 것이다. 그가 야심을 가지고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는 3년 만에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서방세계의 견제는 소비에트연방과 동구권을 몰락시켰다. 이는 서구세력과의 정치적 상황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문제가 공산권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폴란드 학자 예세크 콜라코프스키의 해석은 그대로 타당할 수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역사를 조감하는 시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지성의 발달에 공헌한 역사적 유물론의 가치를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는 집권층에 의하여 민족주의, 인종주의 혹은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변질되어왔으며, 정치·경제 체제로서의 공산주의 실험은 '금세기 최대의 환상'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지금도 우리사회의 노동운동에 대한 과거의 미련을 지속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19세기 말엽부터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노동쟁의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개항장에서 발생한 부두노동자와 전국 각지의 광산지대에서 형성된 광산노동자 등 임금노동자의 출현과 함께한 것이다. 그 뒤 운송·제조 부문의 순서로 각 산업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요 산업의 노동자수는 1918년에 14만 6000명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의 노동운동이 특이한 점은 독립운동과의 연계성을 갖고 있다. 3·1운동 이전에 이미 약 30여 개의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이 있었으며 3·1운동을 통하여 경제투쟁과 더불어 정치 투쟁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후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그들의 단결된 조직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물론 사회혁명과 민족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부터 전국적인 노동조직이 본격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와 노동대회의 창립을 시작으로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이 조직된 것이다. 이 시기에 노동운동을 지도하였던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은 노동 계몽운동과 노동야학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의식을 일깨우고 노동운동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해방 이후 혼란한 정치상황에서 노동계는 정치적으로 이용만을 당하는 수준에 분열되어 6·25를 맞이하였다.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민주노조가 이 시기 노동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 민주노조는 주로 파업과 시위, 그리고 농성을 통하여 정부와 기업의 탄압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노조를 결성하였다. 청계피복·동일방직·삼원·반도·원풍·YH노조 등을 들 수 있다. 한편으로 종교단체와 지식인들이 노동운동에 깊이 참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것은 노동자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에 대한 투쟁의 일환이 되었다. 1979년의 10·26사태로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정치적 공백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억눌렸던 욕구를 일시에 분출시키면서 과격한 폭력적인 사북탄광노동쟁의가 일어났고 뒤이어 인천제철, 동국제강 등이 연속하여 일어났다. 1980년 5월초 대학생 중심의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시위가 일어나자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두환 정권을 출범시키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1987년 6·29 민주화선언 이후 1980년대 전반기에 위축되었던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1997년 말의 IMF구제금융을 계기로 이에 따라 단행된 구조개혁은 대량의 정리해고를 양산했고 전반적인 경제후퇴를 초래하였다. 대량실업과 고용불안이라는 사태를 반영하여 고용안정 대신 임금삭감 및 임금동결, 그리고 노사화합선언이 정치경제적인 외적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 셈이다.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1998년 8월 24일 일어났던 현대자동차노사분쟁이 공권력개입에 따른 후유증 없이 마무리되었고 같은 해 9월 29일의 금융노동자총파업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결되었다. 정부는 1998년 1월 15일 당면한 경제위기를 사회적 합의와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국민적 합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공동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2월 6일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라 할 수 있는 ‘경제위기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노사정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렇듯 한국 노동운동의 성과는 세계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성공을 이룬 역사였다. 그러나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증가와 그들의 조직화는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요구내용을 제시받게 되었다. 이에 대응한 노동운동은 종전보다 전문성, 유연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만큼 질적 성숙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쟁의가 종전보다는 적법절차에 따른 합법성을 지니고 있음도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성과이다.


현대의 노동운동은 그간에 갖던 정치적 성향과 역사성의 요구가 다시 재정립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투쟁적 대상이나 사회혁명의 대상이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 왔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오랜 시간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자했던 많은 요구가 현재의 법질서 안에 녹아 살아 숨을 쉬고 있으며 이는 특정 노동단체의 요구가 아닌 국민의 공통된 요구가 되어 필요에 의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성공적 결과를 만들었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많음에도 완벽히 민주화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거론하여 그 연장선을 말하게 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계급혁명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제 노동운동은 국민운동의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고 있다. 특정 단체의 독점적 개념을 넘어서고 있는 보편주의적 사상이 된 것이다. 노동운동은 국민 70%의 노동가능인구 전체가 당사자인 것이고 국민의 집단지성의 힘에 의해 지속되어야 할 문제가 되었다. 노동운동은 상업사회의 발전성숙과 노동계층의 성숙에 대응하여 전문성을 지니고 정책대응을 하는 유연성 있는 운동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은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녀 한 나라 사회경제발전에 공헌할 사회통합성을 보여줄 운동으로 커나가야 한다.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동의 가치 실현에 있다. 현대사회는 노동의 형태도 다양한 모양새를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개미와 배짱이’로 표현되던 이솝우화의 노동의 기준도 배짱이의 일상이 하나의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많은 일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으나 또 다른 일자리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의 잉여이익에 대한 이익배분도 새롭게 재편되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독점적 지위도 개혁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핵심이었던 양대 노총은 이제 그 지위를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업종별 단체나 광범위해진 노동의 가치를 대변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분화하는 산업별 노조 역시 그 특수성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대정부 투쟁이나 사업주에 대한 투쟁만으로 존재하기에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기득권적 노조의 행태에 오히려 비난하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노총의 모습은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노사문제는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해마다 시기만 되면 벌어지는 투쟁을 위한 투쟁의 상투적인 모습은 사라져야 하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야 한다.


전제는 있다. 노사협력체계의 변화이다. 공동체 노사협력체계는 기업의 활동이 단순한 이익창출에 그치지 않고 공유경제의 이념 안에 새로운 기업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피고용의 개념을 넘어 기업의 자산으로 인식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자본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도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자본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는 사업자 수준의 책임의식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최우선이 고용이 되어야 하고 이는 개방적 구조와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업이익에 대한 분배가 적정한 합의를 기반으로 제도화될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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