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중심, 사법기관의 균형과
견제기능 강화

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by 와와우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싶다!

정치와 권력의 정당성 회복


국민중심, 사법기관의 균형과 견제기능 강화


국가 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 사회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법집행의 공정성과 일관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법체계는 일제의 악랄했던 식민지정책을 근간으로 하였고 친일청산도 없이 견고한 성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간과될 수 없는 것이었다. 세대를 거치고 정치적 환경이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형식적인 모습만을 바뀌었을 뿐 패쇄적 조직의 관습적 행태는 여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시녀 역할’에 충실했다는 사실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절대 가치로 자리 잡은 ‘삼권 분립’의 최후보루인 대법원의 위상 역시 다르지 않다. 이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라 하여도 이를 부정하기 쉽지 않다. 단지 형식의 가면을 쓰고 오래된 조직의 관성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법 권력이 분명히 과거와 비교하여 변화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해방이후의 격변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부 권력의 다양한 변화에 순응하며 변화되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적 사법구성원이 반공에 편승하여 생존하였고 군사독재의 적극적인 협력자로 생존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직구성원이 자연적인 세대교체로 이어졌으나 일부의 정권교체에 따른 인위적인 퇴직 후에도 정계와 법조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며 존재하였다. 정계진출의 일 순위가 법조계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도 법조계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법정의를 부르짖으며 권력을 지향하는 편협한 자기변신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국민의 실망으로 정치 불신을 가중시켜온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권력이 집단화하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은 정당의 공천권에 있다. 정치권은 국민공천을 민주화 이후 계속하여 천명하고 있지만 실현될 수 없는 이유는 중앙당의 권력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정치권과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독립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이유에는 사법체계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정치적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이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는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식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정치권 역시 항상 느리게 반응하지만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이 주어지고 변화하였다. 사법부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엘리트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조직의 집단주의다. 국민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찰 권력은 국민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경찰의 민원실을 찾으면 경찰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찰 권력의 핵심은 정치권력과 내부 줄서기의 극장을 보여준다. 사회발전에 따른 새로운 범죄에 대응하고 국민안전을 위하여 민생에 집중해야 할 힘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안전을 위한 선제적 대응이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 되어 있다. 아직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피싱과 인터넷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고도로 발전하는 특정경제사범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문제화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경찰의 수사권의 독립은 당연한 요구이다. 경찰이 마치 검찰의 하부기관처럼 인식되게 하는 이러한 사법체계는 사라져야 한다. 과거 해방기에 여의도에서 달리기를 시켜 경찰을 뽑던 시절이 아니다. 사건조서를 쓰며 한자는 고사하고 맞춤법도 틀려 검찰에서 조서를 일일이 수정하여 다시 써야 하는 시절도 이제는 지나갔다. 이제 경찰은 우수한 인력으로 방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야할 이유는 없다. 주요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 유지와 검찰의 필요한 인지수사는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은 행안부 소속의 정부산하기관이며 이를 관할하고 있는 이유로 검찰과 경찰의 상호 견제는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막강한 검찰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경찰 수사권의 독립만으로도 강력한 견제가 될 수 있다.


경찰조직은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현재 경찰인력은 9만여 명의 경찰관과 6만여 명의 전·의경, 8,000여 명의 보조 인력을 포함하면 15만 7,000여 명이다. 정부 산하의 이러한 조직에 수사권이 주어지는 것은 권력이 집중되어질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정부는 2021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 각 시도에 자치경찰을 설치하여 자치경찰위원회를 두어 경찰 권력의 분산을 꽤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서장을 비롯한 총경 이상의 인사권이 경찰청장에게 집중되어 있고 시도의 자치경찰위원회의 경정이하 인사에 부분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구조는 방대한 경찰 권력의 독점을 막을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자치경찰청 기준의 완전한 독립적 운영이 가능하여야 한다. 중앙경찰과 지방자치경찰의 완전한 독립이 필요한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존재여부는 결국 운영방식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 권력에 대한 상호견제가 전제된다면 바람직한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공수처의 독립성이 완전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공수처는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보장할 수 없다. 공수처장의 임명이 다수당의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임명될 수 있는 제도가 바꿔져야 한다. 국회의 과반이 아닌 소수당의 의견이 적극 반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법원과 검찰은 그동안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구성원이 사실상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국가의 최고 권력집단으로 막후 역할을 하여 왔다. 1963년 시작되어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50여 년 동안 2만 명 이상의 법조인을 배출하였다. 2009년 출범한 로스쿨 제도는 매년 2,000 명 정도가 입학하고 있다. 법조계가 갖고 있는 특권적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서 또는 법적 영역이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의 직업적 영역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로스쿨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대학의 각 전문대학원 과정에서의 비싼 교육비가 사회특권층과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어 계층화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 적극적인 국가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민간차원에서는 대한민국 사회의 발달된 장학기금이 적극 지원되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소득분위 하위 50%에 대한 적극적인 금융지원과 청년 지원정책을 병행하여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법체계는 의미가 없다. 사법체계의 전문화는 이 시대의 요구이다. 안정된 급여생활을 하고 더욱이 국가권력을 대행하는 사법구조 안에서 국민의 실생활을 이해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실상 판사, 검사, 경찰 등에서 무식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경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판단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문외한이 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전통적 윤리의식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법적지식이 사회의 고도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대형로펌의 출범은 사법체제의 전문화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법원, 검찰,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기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3심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사법제도가 ‘심리불속행기각’에 의해 대법원에서 심리도 못하고 기각되는 사건이 70%에 이른다. 민사사건의 경우 하나의 사건에 2-3년이 걸리는 경우는 기본이고 검사의 기소장이나 판사의 판결문이 공신력 있는 문서로 법적지위를 갖지 못하는 수준인 경우도 허다하다. 검사나 판사의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고 법률적 해석이 일관성이 없다면 국민은 우리나라의 사법체계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억울하지만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검찰과 법원은 전문적 영역을 확대하여 조직되어야 한다.


형사사건에 대한 구속수사와 별건수사는 제한되어야 한다. 사기사건이 아닌 경제사범인 경우 인신구속으로 인한 개인의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으며 종국엔 인권문제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검찰이 주요사건에서 벗어나 별건 수사를 통해 가중처벌을 유도하고 정치권력에 부합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행태도 없어져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 스스로도 우리나라 사법적 체계의 수사방식과 법원의 판단방식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생겼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 국정논단 사건이나 조국사건에 대하여 사실여부를 떠나 검찰의 관행적인 자신의 수사방식에 대하여 무리가 있었음을 시인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윤총장 자신에 대한 무리한 수사방식과 판단이 가능한 것이 현재의 검찰 권력이고 사법부의 판결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법치주의 국가의 최후의 보루이다. 이제 법원은 나라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존재해야 한다. 정부 독점 권력의 위협과 외압에 의해 법관의 지위와 신념이 흔들리던 시절이 더 이상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 정당성을 해치고 법질서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이는 전적으로 법관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개방적 구조를 이루는 것에 있다. 그리고 형식이 아닌 민주적 조직체계 구축이다. 사실상 내부적으로 권위주의와 비민주적인 폐쇄성을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은 기수문화의 관습적 전통을 벗어야 하고 인사제도의 개방적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새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동체주의 노사문화 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