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해방이후 한반도에 진주했던 소련군과 미군이 해방군이냐 점령군이냐는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소모적인 이유는 역사의 진실은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시각도 다양성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실질적인 이념전쟁은 시작되었다. 한반도가 미·소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 역사적 진실이며 당시 일본과 한반도는 사회주의 광풍으로 공산화를 통해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협상을 통한 한반도의 점령과 분단을 결정한 것이다. 사실상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점령군이었다.
우리의 분단은 본질적으로 강대국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약소민족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당시의 세계에 몰아치던 이념의 광풍은 우리를 분열시켰고 그 흔적을 지금까지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과론적이지만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할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의 책임은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그들의 이해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6·25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전하게 된 이유는 일본이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과 중국이란 강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미국은 항상 1차방어선이 한국이었고 최후방어선은 일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고 외교적으로도 일본이 항상 한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더욱이 6·25 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은 당시 세계 최고의 빈국이었다. 해방이후의 혼란과 독재국가로의 당시의 변모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공산주의로부터 일본을 방어하는 소모적 수단으로 판단하였어도 무방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일말의 기대도 없었던 대한민국은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현재의 선진국가로 도약하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사회는 대한민국을 다시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과정에 놓이게 하였다.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은 애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국제관계가 첨예한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때는 좀 과했지? 그래도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는 감정으로 바라보아야 맞을 법하다. 이제는 진정으로 대등한 독립적 외교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미군이 해방군이냐 점령군이냐를 논쟁하는 과거로의 퇴행은 의미가 없다. 미국은 현재 우리의 최고의 동맹이고 앞으로도 그러한 관계가 유지되길 희망해야 한다. 그것은 미래를 지향하는 인류애가 기반이 되는 진정한 평화적 연맹체의 개념을 희망하는 것이다.
사실상 6·25전쟁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겨준 전쟁이었지만 세계사적으로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전쟁과 함께 명분도 없는 양극화 시대의 소모적 전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류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소 양국의 패권 경쟁에 많은 나라들이 이념의 노예가 되어 치룬 미국이나 러시아 자신에게도 잊혀진 전쟁으로 묻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이 남긴 상처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상과 인간이 파괴한 모든 황폐함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피로 매져진 인연에 대한 기억이다. 계기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많은 나라들의 도움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고 그들의 젊은 피가 뿌려진 이 땅에서 선진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하였다. 보잘 것 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싸운 가치가 이제 와서 다시 하나의 의미로 살아나고 있음은 이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70년이 지나 이 나라를 찾은 노병의 눈에서 그들의 감격과 감회를 느낄 수 있음은 우리가 해야 될 또 다른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잊혀진 전쟁을 감사함으로 보답한다는 보은외교는 외교정책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영국,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필리핀, 터키, 태국,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6개국의 참전국과 의료지원국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인도 등 6개국을 모두 합하여 22개국 1,957,733 명이 파견돼 우리와의 인연을 맺게 하였다. 이들 중에는 아직도 개발도상국인 나라들이 있으며 소수 민족으로 고통을 받거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회 빈민층으로 추락한 이들도 있다.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하여 국제기구를 통해 자원봉사를 자원하여 우리의 국가재건에 헌신한 이들도 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도전받는 과제가 되었다. 우리가 이룬 사회발전과 민주주의 사회질서는 그 자체로 낙후된 개발도상국 국민의 표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태국과 필리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남아공, 남미의 콜롬비아, 중동의 쿠르드족, 북미의 나바호인디안 등이 우리와 혈맹을 맺은 나라들과 종족들이다. 저소득 국가를 지원하는 방법은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주에 주둔했던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우리에게 국제지원방식의 하나의 모델을 만든 것이었다.
정부가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해 쓰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2022년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선다. ODA의 효율적 운영은 국민의 관심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선 이처럼 우리와 연관된 6·25참전국가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참전용사들의 가족과 자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해당 국가의 협조를 통해 ‘코리아 타운’의 형태로 집단화하여 경제자립과 보건·복지·교육의 중심지를 만들어 현지화 된 새마을 운동을 보급하는 등 국내의 국제봉사단체와 연계하는 체계적인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
서구 유럽의 참전용사에 대해서는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전문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들의 자손과의 연대도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복지제도가 완비되지 못한 미국의 경우 저소득층 빈민 참전용사 가족에 대한 발굴 지원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감사를 잊지 않는 우리의 정서를 외교적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500만이 넘는 세계 4위 수준의 해외교포와 200만에 가까운 이러한 인연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수용될 수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인류공영과 함께하는 외교적 성과를 만드는 큰 힘으로 작용될 것이다. 해마다 유엔 참전용사와 가족을 초청하고 그들의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며 코로나 사태 초기 의료키트를 전 세계에 보내어 이러한 인연에 감사를 표한 것은 대한민국다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행사나 조그만 감사를 표하는 수준에서 그 범위와 접근을 국가적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 세계는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며 통합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세계의 모든 정보가 통합을 지향하는 세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며 존재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인류공영에 대한 명분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반드시 도래한다. 이것이 인류의 발전이고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다. 이는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과 삶이 우선되고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나 이념적인 이유와 집단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고 개인을 억압하는 나라들은 반드시 사라지는 날이 온다. 그렇게 인류는 진보하리라는 생각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믿음을 선도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사회를 통합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