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민주주의 하면 그리스•로마시대를 연상하게 한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를 이룬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는 이후 로마공화정을 완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그의 사후 이루어진 그리스문화의 전파, 로마제국이 대제국을 이루고 이후 천 년 이상을 정치문화로 자리 잡게 한 요인이 되었다. 중세 암흑기를 거친 유럽대륙은 이러한 고대의 유산을 새롭게 발견하고 르네상스 문예 부흥기를 거치며 산업혁명과 종교개혁, 시민혁명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제도를 기초한다.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대립하였고 오늘날 인류는 절묘한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이다.
위대한 제국의 뒤에는 자발적인 백성이 있었다. 로마제국의 군사력은 중장보병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로마 제국의 모든 백성은 대부분 농업을 기반으로 하였고 신분에 상관없이 스스로 병장기를 구비해야 했으며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로마인의 신분은 식민지 백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이전 시대 제국을 만들었고 로마의 오랜 경쟁자였던 페르시아제국의 이민족에 대한 관용정책에 영향을 받았다. 로마는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최고의 경쟁자인 북아프리카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로마의 멸망 직전에 나라를 구하고 지중해 전체를 로마의 호수라 불리웠던 로마의 대제국 완성에 헌신했던 스키피오는 자신의 군대를 원로원에 복원시키고 고향에 내려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후 기원전 작은 도시국가의 연맹체로 출발한 로마는 15세기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기까지 2천년을 존속한 세계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로마의 2천년은 공화정에 기반 한 국가였다. 로마의 공화정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던 스키피오를 낙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갈리아원정에서 얻은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한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너 스스로 로마의 종신독재관이 되었고 권력을 독점한 그는 양아들 부르투스에게 암살을 당해 그의 제국의 꿈을 접게 만들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당시의 모든 로마의 불문법과 행정을 재정립하였으며 훗날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로마대법전은 오늘날 서구의 법률적 기초가 된 것이다.
한편 유목민족과 해양민족은 약탈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특정한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기반으로 하였고 필요에 의해 집단화된 군대는 광범위한 지역을 휩쓸며 약탈하였다. 그들의 기원은 로마나 그리스의 기원보다 앞선다. 그러나 그들이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경제가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역사적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문화는 인류문명 안에 녹아들어 발전하여 왔다. 특히 유목민족은 사실상 광대한 영토를 오랫동안 지배하였다. 해양민족의 흔적은 미비하지만 유목민족의 역사는 그 흔적을 뚜렷이 남기고 있다. 아리안족의 대이동(기원전 20세기), 스키타이족의 활약(기원전9~4세기), 흉노와 훈족의 대이동(기원전4세기~기원후5세기), 고트족의 침략(3~4세기), 돌궐(6~8세기), 바이킹의 침략과 노르만족의 대이동(8~12세기), 셀주크투르크(10~13세기), 징키스칸 제국(13~14세기), 오스만 투르크(13~20세기) 등이 인류 역사에 활약한 대표적인 민족과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동서양이 지리적으로 분리된 고대부터 동서양을 넘나들고 있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해양문명은 이에 비견되는 대제국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백제는 농경문화와 해양문화를 융합한 최초의 고대문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유목민족의 특징 중 하나가 신분제의 개방적 운영이다. 그들은 발달된 경제체제를 만들고 있었고 그들의 신분은 성과와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에 의해 화폐경제를 도입하고 수에 대한 개념이 그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인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유목민족에게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혹독한 겨울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로운 삶의 전통을 지키며 생존을 위한 인간의 욕망을 위해 정복전쟁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근세 유럽국가들이 약탈적 제국주의의 팽창과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은 결국 역사의 반복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인도와 중국문명은 동양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동양문명이 위대했던 것은 인간의 삶과 백성의 가치를 정치철학으로 기원전부터 고민하여 왔다는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인도의 이러한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으며 공자의 인본주의와 실용주의는 중국대륙뿐만 아니라 동양의 정치근간을 이루게 하였다. 모택동의 사회주의 봉기는 이러한 중국인을 기반으로 성공한 것이며 인도는 간디를 이은 네루에 의해서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플로레타리아 독재는 허구라는 사실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소련의 스탈린은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독재를 주장하였었다. 그러면 중국의 공산당은 지금도 이를 다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이 허구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인간의 본능적인 발로이고 인위적인 수단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국수적이며 극단적인 국가민족주의가 먼 옛날의 약탈경제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행위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은 유목민족을 기반으로 농경문화를 수용하여 정착한 민족이다. 고조선의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건국을 기원전 2,300년대로 규정한다. 이러한 기년은 우리 선인들이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는 각 시기의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역사서에서의 한민족의 등장은 기원전 5세기경 중국 전국시대가 시작된 무렵이다.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의 일족인 부여의 존재도 함께 드러난다. 이를 토대로 한다면 그 이전까지 정치세력화한 한민족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많은 나라와 문명은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처럼 건국의 정치이념을 분명히 하고 후대의 왕조가 수천 년 동안 이를 반복하여 서술하며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우는 우리민족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이러한 정치철학은 자유민주주의가 실현해야 하는 인류 최고의 가치이다. 인류의 역사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일지라도 인류가 발전한다는 생각은 바른 것이고 그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류가 낳은 위대한 유산인 자유민주주의는 지속하여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지속성을 가지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재창조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