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품격이란?

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인간에게 품격이란?


‘사람이 품격 있다’는 말은 참으로 멋있는 말이다. 나에게만 그런 것일까? 생각보다 이러한 말에 대해 오히려 냉소적인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산업사회를 거치며 계층이 급속한 교체가 이루어지고 졸부들이 득세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하나의 병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품격이라는 말이 고상하다거나 귀족적이다라는 의미와 혼용되어진 탓이다. 오히려 서민적이다거나 진솔하다는 이미지가 대중의 요구가 되고 인간의 품격을 나타내는 동일한 의미임에도 상대적 의미로 쓰이게 된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류층이란 사람들의 모습에 환멸감을 갖고 있다. 있는 척, 지적인 척, 도덕적인 척, 명예로운 척, 노력하는 척 등 사람이 고상을 떠는 꼴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다. 그러나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 국민이 각자가 주장하는데로 본다면 90%이상의 조상은 양반가문이다. 유수한 종친회에 속한 사람들의 수를 합하여 보면 그렇다. 조선시대에 2% 남짓한 양반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조상이 양인이나 천민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이러한 이중적 사고의 덫에 놓여있는 셈이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일반 서민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선비정신은 고대 한국인의 정서를 이어받은 것이었고 그리스 로마의 노블리스 오블리쥬가 동양에서 재현된 정신이다. 선비는 한자어의 사(士)와 같은 뜻을 갖는다. 어원적으로 보면 우리말에서 선비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선’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선’의 ‘선’은 몽골어의 ‘어질다’는 말인 ‘sait’의 변형인 ‘sain’과 연관되고 ‘비’는 몽고어 및 만주어에서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박시’의 변형인 ‘이’에서 온 말이다.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몽골의 언어가 고조선의 언어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고대 한국인의 문화적 인식과 함께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사’는 사회 기능적 의미에서 독서로 학문을 연마하여 관료가 될 수 있는 신분이다. ‘사’는 일반의 생산 활동인 농업·공업·상업에 종사하는 사람과도 병칭되어 사·농·공·상의 이른바 사민(四民) 속에서 첫머리에 놓였다. 그러나 선비는 백성과 결합하여 사민(士民)으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서인들과 결합하여 사서인(士庶人)으로 일컬어지고 있었던 사실은 선비가 지배계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대중들과 함께 피지배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수림왕 때 고구려에 태학이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삼국에 각각 태학 또는 국학이 세워졌다. 태학에서는 유교이념을 교육하여 선비를 양성하였으며 박사(博士)를 두어 인재를 가르쳤다. 백제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은 역사를 기록·편찬하였고 신라의 진흥왕은 널리 문사를 찾아서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7세기에 활동하던 신라의 인물인 강수와 설총은 선비로서의 활동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고려시대는 선비들의 공직활동도 뚜렷하게 확대되었고 교육기관을 통한 선비의 양성도 확장되었다. 국자감을 중심으로 하는 관학이 쇠퇴할 때는 12공도의 사학이 융성하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들 선비가 서민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그만큼 영향력도 컸다. 선비는 도학의 이념을 담당하는 계층이므로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지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였고 의리의 신념을 사회 속에 제시하고 실천해야 했다. 이와 더불어 유교적 도덕규범들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서 대중들을 교화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었다. 선비는 학문을 통해 지식의 양적인 축적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를 확신하고 실천하는 인격적 성취에 목표를 두었다. 조선시대 석학인 이황은 선비를 세력과 지위에 굴하지 않는 존재라고 하였다. 신라의 화랑들이 무사에 가까웠지만 그들의 정신에서는 선비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신라와 백제의 최후의 전장인 황산벌에서 김흠춘이 아들 반굴에게 이르길 “위급한 때를 당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충성과 효도를 아울러 이룰 수 있다.”고 결연하게 훈계하는 모습에서 의리의 실천을 보여주기도 한다.


선비는 주로 문사(文士)를 말하지만 무사(武士) 또한 ‘사’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곧 선비의 의리정신과 더불어 그 실천에서 생명조차 버릴 수 있는 신념의 용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효도와 충성에 더하여 의리가 요구되어 학행이 갖추어질 때 ‘여사(女士)’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선비들의 의리정신은 타민족의 침략을 당할 경우에 침략자를 불의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의리에 따라 이에 항거하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비들의 항전을 의병으로 인식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선비문화의 중요한 특징인 규범체계는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확보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이 규범들이 선비의 계층적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강화될 때 특히 의례는 형식화하기 시작하였다. 의례를 매우 섬세하게 조직하고 의례의 완벽한 집행자가 아니면 신분적인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경직된 사회구조를 만든 것이다.

현대사회가 발전하며 이러한 선비의 모습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형식주의는 대중의 비웃음이 되고 시대에 뒤처지는 중요한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껍데기를 벗어내고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들을 들어내면 인간이 살아가며 갖추어야 하는 품위가 드러난다.


사람이 품격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나온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포용하려는 자세에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이 있다. 남을 함부로 비평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려고도 한다. 사물에 대한 판단에 중용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고 자신의 정당함만을 주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변명에 스스로가 빠져들지 않는 자세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을 평하려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비판에 냉정해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보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거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골몰하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관심 밖의 문제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하물며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방어적인 자세만을 취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거나 자신이 말하는 얘기에만 취하여 골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의 자기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스스로 그 가치를 갖고자 한다. 인간의 품격은 삶과 함께한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기본적인 본성이 인간의 품격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은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일상의 흔한 말 속에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품격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품격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셈이다. 품격을 잃으면 인간이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면 지나친 과장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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