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직감

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직관과 직감

https://www.youtube.com/watch?v=C0yiRLdfdGg


흔히 사람들은 직관과 직감을 혼동하여 사용한다. 철학적 사고와 인식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축복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직감는 감각적 경험의 산물인 반면 직관은 사유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가 태생적으로 생각을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무수한 생각들이 잡념으로 잠을 설치게 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도 인간에게는 운명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철학적 사고로 전환시키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스스로를 거부하고 싶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이 숨을 쉬는 것과 같아서 우리가 섭취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이러한 뇌의 활동에 70%이상이 끝임 없이 소모되고 있다. 우리의 생각에는 식욕, 성욕, 권력욕, 금전욕, 분노, 시기심, 슬픔 등 부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행복, 기쁨과 같이 인간의 모든 감정을 충족시키는 많은 것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과함이나 부족함이 없는 중용의 상태를 벗어나는 순간 인간에게 병적 상태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직관은 감각이 아니라 사유능력이다. 직감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나타나는 오감 외에 제3의 말초적 감각을 뜻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를 더하여 직관은 사유를 통해 경험하고 축적된 지적, 심리적 데이터 등이 자신이 알아야 할 바른 방향을 찾아 바로 알게 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어느 순간 절벽에 마주한 듯 암담한 마음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혜안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직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통찰력이나 지혜로움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직관은 사고의 과정이 워낙 빨라서 미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판단한다. 즉, 과거의 경험과 지식, 분석, 추론의 경험이 어우러져 발현되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이 중력과 운동법칙을 직관으로 알아내었던 것처럼 모든 과학적 사고 역시 이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도 “인간의 직관력은 지능보다 강력하다“고 말을 하지만 직감과 직관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의 직감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도구라고 주장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조차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간의 유일한 것은 바로 직감이다“라고 말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직감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고 그러므로 직감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마치 우리에게 즉각적인 위험 또는 실현되지 않은 기회를 경고하는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 것이다. 이처럼 직감은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인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의 사고에 휘둘리는, 그런 교리에 얽매이지 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이 내는 소음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침묵시키지 않도록 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과 직감을 따르면서,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 아이슈타인의 말을 감각적인 측면에서만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단순히 인간의 육감만을 의지하게 하여 직관과 직감을 혼용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자신의 감각에만 의지하게 하는 인간의 오만을 자극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의 직감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대부분은 우리의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직감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이런 이유로 자기 자신의 본능만을 따르려고도 한다. 또는 바람직한 의사 결정을 위해 두 가지 정보를 하나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때 직감과 이성만이 상대적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직감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의 세계를 말하고 이성은 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현명한 사람을 존경한다. 그들의 자유로움, 자신감, 그리고 이 요소들이 그들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에 감탄하곤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러한 이들의 판단력을 가지려 하고 따라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행동에서 직감과 직관의 혼용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로 인해 인간으로 하여금 오히려 현자들의 경우를 들어 스스로를 과신하게 하는 이유를 만든다. 단순한 감각적 인식은 인간의 오만을 낳는 비극을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현명하다는 것은 직관의 산물이고 결과이다. 그러므로 직관은 직감을 넘어선 또 다른 노력의 산물이다.




직관의 세계는 사유를 통한 경험에서 열린다. 직관적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인도는 깨달음을 향한 긴 수행의 기억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있었다. 흔히 철학의 뿌리를 말할 때 그리스철학을 거론하지만 역사와 사유의 폭을 가늠해 보면 인도에 비견할 수는 없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철학적 사유의 싹은 인도에서는 이미 기원전 16세기 이전부터 시작 되었다. 그들은 수행과 실천이 중심이 되어 종교와 철학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개념적 분석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현대에 와서 철학의 영역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록문화보다는 구전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가 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어쩌면 문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고의 정형화를 경계한 연유이다. 서양 학문의 지식 중심적 경향과 달리하여 호흡하는 인간의 삶과 함께 이어온 실천과 수행의 철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는 철학의 수단으로 충분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또한 인간의 언어가 철학적 사유를 제한시키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관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경우를 인도철학에서 엿볼 수 있다. 인도철학이 형성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인도의 자연환경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도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관한 것이다. 먼저 자연환경에 대해서 살펴보면 인도 대륙은 높은 산맥과 광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아열대 지역에 매우 무더운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적 특성으로 인해 정적이며 사색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과 그 자연현상의 근원으로서의 우주적 믿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도철학의 관념적 인식은 인간의 삶과 함께 이어온 실천과 수행에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도철학에서 ‘다르마’와 ‘카르마’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보편적 법칙과 정의,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의무, 행위의 규칙을 의미한다. ‘부’와 같은 물질적 수단과 재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리와 욕망은 반드시 다르마에 의해 조화되고 절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탈’은 가장 중요한 그들의 목표가 된다. 해탈은 생의 유한성과 근본적 무지로부터의 해방과 무한한 삶과 완전한 자유다. 인도인들은 정신적 삶과 물질적 삶의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적 이상과 사회적 의무 모두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우리의 본능과 그로부터 시작된 직감을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의 직감이 반영하도록 할 수 있을까? 내적인 생각에 생명을 주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또는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직관적 경험의 반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가슴과 눈을 크게 뜨고서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과 연결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도 깊이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직관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예술가, 정치인 및 과학자 등이 매우 직관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본능에서 영감을 얻은 창의력을 통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직관력에 기반 한 독창성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유용한 방법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직관적 경험을 통해 인간의 직감을 키워갔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의 본능이 논리적인 사고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본능이 직관적 경험과 사유를 통해서 그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논리적으로 행동하거나 직감으로 느끼는 본능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직관적 지능은 감정을 이해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직관은 경험과 육감을 정서적 세계와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감정은 직관의 핵심이다. 걱정거리, 좌절, 분노 또는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의 경험은 직감적인 인간의 본능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승화의 결과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거나, 특정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힘들어한다. 진정한 직관은 자신감에서 온다. 일상에서 직관적 지능을 활용하려면 자신과 자기감정에 관해 균형 잡힌 감각을 가져야 한다. 본인의 예감을 신뢰하는 것은 사유의 결과다. 그러면 무의식의 목소리로 결단을 내려야하는 구체적인 순간에 빠른 답을 얻게 된다. 과거의 직관적 경험, 성격, 감정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직관이 충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직관력을 갖는다는 것은 객관적이 되어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직관적인 사람은 아주 객관적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직관과 더불어 명확함을 주는 느낌이나 자극을 신뢰한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안다. 고독은 자아와 연결되는 필요성을 충족하고 오직 이 시간 동안에 자기 생각을 분석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직관적인 지능이 있는 사람은 자주 명상을 통해 내적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고독에 대한 시간을 즐기게 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다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외부의 신호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최적의 시기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거짓말이나 자신이 행동해야 할 때 또는 인간 사이의 관계나 책임을 끝내야 할 때의 외부 신호를 본능적으로 감지하여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신호를 직관적으로 따르는 것은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이전의 직관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자신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큰 궁극의 행복을 위해 용기 있게 삶의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맞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직관도 학습하여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 또한 습득하여 그 기술을 학습하고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그 의미를 같이하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