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반둥은 좁은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그 도로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들이 연결되어 있다. 겨우 한사람정도 다닐만한 작은 골목을 들어가면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진다.
분명히 작은 골목을 지났을 뿐인데 그 골목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들의 집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벽이나 기둥으로 삼고 집들이 지어져 있다. 마치 힘든 삶의 여정을 서로 기대며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반둥의 골목길을 스케치하다 by AI
물른 집들만 연결된 것이 아니다. 인근 지하수나 산에서 내려오는 물도 PVC 파이프에 연결되어 생명수처럼 각집으로 연결 되어 목을 축이고 삶의 끈들을 연결한다. 마치 목마른 삶의 여정에서 서로에게 생수가 되어 삶의 끈을 이어주는 통로처럼 느껴진다.그런데 길가 쪽으로 설치된 낡은 PVC 파이프는 열대지역의 강한 햇살과 사람들에 발길에 치여 물이 새어 나와 땅을 적시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곤 한다.
이 집들을 지나면 마을 중앙에 그리 크지않은 공터가 있고 이 마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머스짓mesjid (이슬람 성전)이 자리한다.
집 과 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끈끈한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ALUN ALUN 이라 불리는 공터와 머스짓이 의미하는 것은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말해준다.
시간을 돌이켜 몇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어느날 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여느때 처럼 제자들이 살고 있는 한 마을(kampung) 을 찾았다.
이 무슬림 마을의 공터에 들어서자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배드민터을 치기위한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기둥에는 한 소녀가 줄에 묶인채 공터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제자인 Adinda 였다
작고 예쁜 이 소녀를 만나기 위해 이 골목에 들어섰는데 뜻밖의 광경을 맞이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 소녀를 기둥에서 풀기위해 다가섰을 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 중 몇몇이 나를 제지하였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의문을 품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이런 ???"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었고 나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
또래의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Adinda에게 다가가 컵에든 물을 머리에 붓고 알아들을 수 없는 순다 말로 소녀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독특한 나라이다.
공영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마을에 들어가면 종족 언어를 사용하여, 외부인을 구별하고 종족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단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슬림들은 아랍어를 통해서는 종교와 그에 따른 문화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18년을 인도네시아에 살며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제자들을 가르치지만 여전히 외부인이고 때론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 친절하지만 낯선 침입자"로 여겨지기도한다.
30여분 쯤 흘러을까 ....
한 무리의 소년 소녀들이 Adinda를 둘러싸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였고 그 의식의 끝자락에 한 소년이 손을 올리고 기도를 시작하자 주변의 사람들 또한 손을 올리며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후 아이들은 Adinda를 묶은 끈을 풀어주고 그녀를 일으킨 후 서로 돌아가며 포옹을하였다.
그렇게 의식이 끝이나고 난 Adinda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Adinda의 생일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는 생일이면 생일 당사자를 ALUN ALUN이라 불리는 공터에 묶은 후 가까운 가족이나 사람들이 생일자의 머리에 물을 붓고 축하 인사와 더불어 생일자에게 1년동안 섭섭한 감정이나 오해 그리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었다.
여기에 머리에 물을 붓는 행위는 생일자를 정결케 하는 의식이었고, 마지막 기도는 축복과 하나됨의 정점을 찍는 마침표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티part 와 세레머니ceremony 로 자기 과시와 즐거움이라는 한정된 의미속에서 생일자에게만 집중되어 치루어지는 오늘날 생일축하 형식에 익숙한 나에게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이들에게 생일의식은 단순한 한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생일축하 의식은 생일자를 향한 축하뿐만이 아니였다
새로운 탄생 그리고 서로의 벽을 허물고 ,오해를 씻어내리고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 의식이었다.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고 이기주의를 포장한 개인주의로 살아가던 나에게 이 마을에서 본 의식은 "함께 살아가는 의미와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였다.
18년을 인도네시아 땅에서 살아오면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지만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였고
마을의 내밀한 의식과 행사에선 나는 "낯선 침입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영화속 장면 같은 의식을 뒤로하고 마을 골목 길을 빠져 나왔다.
잠시 뒤돌아 그 골목을 보았다.
그 골목길은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드나드는 입구였고, 나의 현실 세계에는 없는 마을이였고 나는 이방인이자 낯선 침입자 일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