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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Jan 19. 2022

내 엄마와 사는 법

자유로워지기

“지금 어디냐? 나 동대문에서 지하철 갈아탔다.” 뚝. 전화기 목소리가 끊어지며 내 마음도 뚝 끊어진다. 올 해 78세로 귀가 어둡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친정엄마는 경동시장에 다녀오는 길이다. 다리가 아파서 집에까지 못 걸어오니 지하철로 데리러 오라는 거다. ‘에효, 택시 좀 타지’라는 소리가 정수리에서 코를 통과해 목구멍으로 올라와 입으로 나오려다 들어가버린다.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 앉아 있다. 나는 지금 온라인 줌으로 동네 아줌마들과 책을 읽고 있다. 윤독 모임이라 한 장 읽고 책 내용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는데, 친정엄마의 부름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흥도 깨버렸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들 뭐냐고 하는데 우리 중 맏언니는 어머니 잘 모시고 오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내 걸음으로 7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 길이가 달라져서 걸을 때 힘들다고 노상 이야기하는 엄마는 중간 중간 쉬어야 하니까 15분, 차로 가면 3분. 날씨도 춥고 경동시장에서 오니 짐도 있고 해서 차로 모시러 가는 게 맞긴 하다. 

날씨 추우니 시동 걸고 차도 잠 깨라고 잠시 기다린다. ‘날씨 추울 때는 시동 켜고 그냥 출발하면 안 됩니다. 골목 두 개는 천천히 지날 시간이 흐르고 나서 차를 움직여 줘야 합니다’라는 강사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렸다. 십 몇 년 전에 차를 새로 뽑고 차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들은 수업인데, 내 머릿속에는 딱 두 문장만 남아 있다. 강의를 들었을 때가 겨울이라 그랬는지 항상 바쁘게 다녀서인지 ‘차도 얼어 있으니 급하게 가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차가 한숨 돌릴 때 움직여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마음에도 머리에도 박혔었다.

주차를 해 놓은 골목에서 좌회전으로 1분, 우회전으로 1분 59초, 다시 우회전 1초, 지하철과 도로 사이 위험 방지턱 위로 쪼그려 앉은 엄마가 보인다. 다리 아픈 노인네의 모습이다.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부르니 깜작 놀라 반가워하며 얼른 일어난다. 꽤 무거워 보이는 큼지막한 검정 봉다리 하나가 뒷좌석 오른쪽 바닥에 떨어지는 사이, 얼른 왼쪽 뒷좌석 바닥에 놓여 있던 작은 박스를 보조석 바닥으로 옮겼다. 아니나다를까, 뭔가 물 흐르는 검은 봉지를 들고 올라탄다. 검은 봉지 안의 물체는 아마도 꿈틀거리는 낙지일 테다. 아니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꽃게 혹은 꽁꽁 언 놈이거나. 차에 올라타며 바닥에 놓인 박스를 보며 좋아한다. 천만년 만에 듣는 칭찬이다. 나는 차 바닥에 비릿한 물이 배지 않게 조치를 취한 것이고, 내 엄마는 먼지 바닥에서 자신의 귀한 보물을 지킬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은 거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 지하철 무료, 난 노인복지 정책 중 지하철 무료인 상황을 버스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만 무료이니 내 엄마가 버스를 타지 않는다. 택시는 돈이 있어도 안 탄다. 꽁짜인 지하철인 있는데 왜 돈 쓰냐고. 내 엄마와 서울대 병원 암센터를 갈 때도 나는 버스를, 엄마는 지하철을 탄다. 서울대 병원 암센터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라서 자동차보다도 더 편하다.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암센터까지 걸어간다. 처음에는 효도한답시고 지하철로 몇 번 따라갔지만 이제는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내 멋대로 버스 타고 가서 병원 로비에서 엄마를 만났을 때, 묘하게도 비슷한 시각에 도착했다. 그래서 알려줬다, 버스비 아끼지 말라고. 그래서 그날은 진료가 끝나고 “엄마는 지하철 타고 오세요, 저는 바빠서 버스 타고 갈게요” 하고는 먼저 와 버렸다. 이 노인네는 절대 딸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이 고집불통 친정엄마, 당신은 주머니 아꼈겠지만 나는 내 귀한 시간을 빼앗겼다. 경동시장에서 물건 잔뜩 사고 택시타면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데 왜 지하철을 타고 그리 오는지 답답할 뿐이다. 물론 경동시장까지 같이 가자고 안 해서 고맙긴 하다. 거긴 주차장이 유료라서 나를 데리고 가면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 나를 데려가지는 못한다. 그리고 내가 따라가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천천히 볼 수 없으니 그때는 내가 불청객인 것이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손이 얼었다며 이불 밑으로 넣는다. 그 사이 귀찮지만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가져다 드린다. 외출하고 들어오시면 항상 드시는 단맛 나는 오렌지주스다. 손을 녹인 엄마가 다음에 하는 건, 장을 본 목록을 주욱 적고 그 옆으로 가격을 일일이 적어 놓는다. 그리고 본인 지갑 열어 돈을 맞춰본다. 요새는 온누리 상품권을 쓰는데, 남은 장수가 맞는지도 확인한다. 지난번에는 활활 살아 움직이는 꽃게 한 보따리를 놓고 와서 펄쩍 뛴 적이 있다. 다행히 다음 날 가서 잘 찾아오긴 했다. 단골로 다니니 그런다고, 주인 칭찬을 며칠을 해댔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연필을 손에 쥐고 열심히 적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줌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화면 속 아줌마들은 효도 하고 왔냐며, 날 추운데 딸 밖에 없다고 한 마디씩 한다. 내가 없는 사이 그냥 대화들 나누었다며 다시 책 읽기는 계속된다. 

2층 보일러가 멈췄다. 엄마는 수리 기사를 불렀다가 10년이 넘은 보일러가 부품이 없으니 새로 사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불러 가격이 어떻고 린나이가 어떻고 귀뚜라미가 어떻고 구청에 전화해보니 10만원 지원받는 이야기까지 줄줄 늘어놓는다. 나는 딱 한마디만 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세요”. 엄마는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본다. “엄마가 내 말 듣나요? 엄마가 좋은 대로 하세요.”라고, 엄마가 서운할지 모르지만 일일이 설명해서 최상의 방안을 내놓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귀뚜라미를 하든 린나이를 하든 방만 따뜻하면 되는 거다. 

보일러 기사가 온 날, 나는 외출해야한 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에게 나갔다온다고 이야기했더니 사람 없어도 된단다. 집으로 곧장 오려다 그냥 4.19국립묘지거리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지인 한 명을 불러서. 커피숍 창 밖으로 까치가 집을 지은 나무가 보인다. 그 옆으로 나란히 겨울 하늘로 죽 뻗은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은 참 시원시원해보인다. 엄마에게는 딱 한번 전화가 왔다. 손전등이 필요하다고. 그냥 듣기만 했다. 그렇게 보일러 기사가 집을 떠났을 즈음 귀가를 했는데, 엄마의 표정이 밝다. 보일러 기사가 주방 수도도 손봐주고 갔단다. 옥상 방수까지 마음에 들게 견적도 받았는데, 보일러 기사와는 추위가 가시고 따뜻해질 4월쯤 통화하자고 했단다. 나는 엄마를 가장 부드럽게, 기분 좋은 마음을 담아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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