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일기엔딩
첫 브런치 북의 이야기는 이 글이 마지막이다.
처음으로 제목도 정하고 목차도 설정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정해놓고 글을 쓴 것도 처음이라, 종종 삼천포로 빠진듯한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덕분에 처음으로 나도 내가 왜 시작했고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 닿았는지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 조금은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타의로 시작해 자의로 나아가 다양한 경험을 했고, 해외생활의 버거움과 한계에 부딪혀 비교적 편안한 한국에 돌아와 학원도 차려보고 침수도 겪어보고.
학원은 물에 빠졌을지언정 꿈은 그 물의 파도에 몸을 싣고 여전히 나아가는 중이다.
올해도 기획공연을 준비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알아차림은,
새삼 요즘 생각의 시선은, 관객은 무엇을 원하나?라는 것이 더욱 강해졌다는 측면이다.
나는 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댄서이자 안무가로서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무엇인가가 더 강하고 또렷했다.
요즘은 아무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두 번째 생각/옵션이 된 것 같아서 이 생각의 회로와 감정상태를 알아차리며 은근히 놀라기도 했다.
창작자로서도 기획자로서도 무대에서는 댄서로서도 객석의 입장은 분명히 고려해야 하지만, 직업적 소임과 위치에 따른 그 비중에 차이는 꽤 큰 부분인 것은 맞다.
능력이, 재정적 후원이 받쳐줘서 각 자리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하고 각자의 프로패션이 돋보이는 작업을 서로 함께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충당하는 비용의 한계는 분명하기에,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그것이 부족한 역량임 또한 맞다.
조금 더 크면 전문 기획과 연출을 도와주실 분들을 모실 수 있을 테지! 또 얼마나 재밌고 좋을까?
조금씩 나아져 왔듯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스스로 그럴 수 있다고 믿어줄 것이다.
춤추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 춤추는 게 사실 대부분인 내 일상은: 연습실-집 (ft- 짐/요가원/마트)
수업하고 연습하고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요가수련을 하고. (온통 스스로를 위한 시간들 뿐인데, 마음은 영 스스로를 위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할애하는 시간의 많은 부분은 춤을 추거나, 춤을 생각하거나, 춤을 위한 음악을 듣거나, 수업준비를 하거나, 안무를 하거나, 의상에 대해 고민하거나 또 sns로도 매일 마주하는 스타 댄서들과 나를 비교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훅 낮아져 모든 게 버거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sns는 잘 지우기도 한다. 또 이틀 전에 sns를 지웠다. 다만 일에 필요한 메시지 답장들은 해야 해서 랩탑으로 체크는 한다.)
또 근래 컨디션 탓인지 30대의 영향인지, 몸을 움직이는 모든 활동이 맘에 들지 않기도 하다.
운동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수련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춤도 맘에 안 들고, 결국 다 움직임, 보이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데 본질이 결코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정말로 딜레마에 빠진다.
특히나 요가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는 요가동작 즉 아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모토가 맘에 들어서도 한 몫하는데 사실 표면 없이는 현재 내 상태나 위치를 알아차리거나 가능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
또 증명이라 하니, 요즘은 정말 증명 도파민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한다.
새삼스럽게 과도한 인정욕구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인정이 아닌 외부적인 인정으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요즘 아주 만족하는 마음의 값이다.
왜?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주 간단한 답인데.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잘한다고,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은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가 한 인정이나 칭찬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외부인이 하는 칭찬에는 기뻐서 감정 널뛰기를 하면서 어째서 되려 단단히 믿어야 마땅한 스스로의 이야기는 그토록 외면하는 것일까?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아무렴, 내 마음이 가장 다루기 어려움이다.
춤추는 게 전부가 아니긴 하지만,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은 춤과 연관되어 이루어져 있고 그러므로 춤추는 요즘이 어떤가에 따라 내 상태는 달라진다.
한국에 돌아오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절대 춤추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춤과 별개의 것이라는 것.
나=춤, 아니고 나=나 (다양한 나)
춤추는 일 하나가 잠시 어렵거나 잘되지 않거나 또 영영 실패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춤이지 내 전부가 절대 아니라고. 잘 안돼도 하늘 안 무너진다고 :)
나뿐만 아닌 어려서부터 한 가지 일만을 알고 그것만을 탐구해 온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 거라고 예상하지만,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나=춤, 아니고
나=나 / 나= 김연수, Bonnie Kim ,بوني كيم, 金娟粹 언어로만 써내려도 같은 이름이 다 다른 모습이듯, 살아가는 시시각각의 많은 일들을 대하는 많은 모습 전부가 '나'이며 어떤 공간에서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나를 확장시키고 또 '나'라는 규범을 너무 명확하게 그려놓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는 나라고 생각하면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나= 의 경계는 넓고 유연하게,
요즘 브런치는 잘 안 본다지만, 글 쓰는 내내 누가 보던 그렇지 않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내 주어 고마웠고 쓰다 보니 마주한 여러 추억과 감정은 마음의 기반을 다잡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매해 마지막이라고 거짓말하는 기획공연은 정말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아마도 아니)
언제까지 춤추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약속되지 않았으며,
살다가 그토록 되고 싶은 스타댄서가 될 수 있을지도 영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주어진 시간 하고 싶은 표현을 마음껏, 하도록.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셀프)스타댄서로 살아가도록.
만들어내는 작품에도 공연에도 만족은 없겠지만, 작고 크게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엔 무척 만족할 만한 기억이 될 것임은 굳건히 믿는다.
끝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의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에게.
매일 최선일 수는 없어, 모든 게 최선일 수는 없어.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 또는 내가 어떤 자격이 없다는 이제 그만 놓아줘,
그럴 자격이 되니 세상이 너에게 준, 또 스스로 얻은 기회.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찾아오지 않은 일들은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 만나면 반갑게 마주하기를.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그리고 지금은, 돌아오지 않아.
2025년의 인생목표
“나를 최우선으로, 욕심부리지 말고, 쫓지 말고 선택하는 기회를.”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한 삶.
이 말 자체가 버겁고 또 질리도록 한 말이라 한 편으로 여태 그러지 못한 것이 맘에 자꾸만 걸리지만,
그 뾰족하게 걸려 날이 선 부분들이 닳고 닳아 동글동글, 마음을 편안히 굴러다닐 때 까지 주문을 외우자!
나를 위한 삶을 위해, 나를 위한 하루, 나를 위한 하루를 위한, 나를 위한 순간, 나를 위한 순간을 위해, 나를 위한 모든 선택.
순간은 언제나 흐르고, 무한한 우주속에 유한한 나의 시간.
그리고 사랑의 필요. 무엇보다 나를 향한 사랑과 절대적인 믿음.